[세대를잇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마루 2022. 10.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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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국회의원과 봄알람 이두루 대표가 지치지 않고 성평등에 대해 말하는 이유

interviewee 권인숙

1964년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21대 하반기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서울대 의류학과 졸업 후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1986년 체포돼 성고문을 당했다. 그의 용감한 폭로는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앞당겼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여성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여성학 교수로 재직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3번을 배정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블라우스는 Maisonmarais.

interviewer 이두루

1988년생. 출판사 봄알람 대표.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이후 이야기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2016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동료들과 처음으로 기획한 책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의 성공은 출판사 봄알람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2020년에는 〈김지은입니다〉를 펴내며 사회에 파동을 일으켰다. 임금 성차별, 임신중지, 대리모, 퀴어, 성매매 등 현실 의제를 빠르게 포착하는 책을 만든다.

Q : 이두루 22세이던 대학시절 부천경찰서에서 있었던 성고문 사건을 폭로하며 80년대 역사의 한 장면을 만드셨습니다. 이후 인권과 노동운동을 하셨고,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한 뒤 여성학자이자 교육자로 계셨죠. 현재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당) 21대 국회의원이고요. 의원님 언어로 스스로를 소개한다면

A : 권인숙 어쩌다 보니 역사적 무게에 의해 규정된 삶을 살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에게는 가볍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싶기도 해요. 오랫동안 인권과 젠더, 사회적 소수자 이슈 등 어떻게 보면 폐쇄성 강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선택을 해왔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한 헌신성이 큰 사람처럼 비춰지는데, 개인적으로 지나친 명분 중심의 삶과는 거리를 두려 합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훨씬 더 그날그날의 의제 중심으로 대응하며 살아야 하다 보니 쉽지 않네요.

Q : 이두루 젊을 때도 정계 진출 권유가 있었다고요. 이전에는 거절하시다가 2년 전 의정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을까요. 국회의원 일은 적성에 맞는지(웃음)

A : 권인숙 돈과 권력, 명예 셋 중 뭐 하나가 많으면 불행해진다는 강한 원칙이 있어서 이런 세계에 들어올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어느 순간 더 이상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의미 규정을 하지 않고, 쓰일 곳이 있다면 쓰이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정계는 욕망이 치열하고 체력이 좋아야 하는 곳이라 다 잘 맞는다고 하긴 어렵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감당할 것은 감당할 수 있게 됐어요. 국회는 권력이 집중된 곳인 만큼 명확한 우선순위가 있고 일 처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플러스’가 되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요즘 좌우명이 ‘플러스로 가야 된다’일 정도예요. 기존에 제가 갖고 있던, 어떻게 보면 결벽적인 기준에 맞추려면 여기서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슷한 의견들이 있으면 그 힘을 모아서 해결을 향해 가려고 하죠. 재밌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해야 되니까 하는 거예요.

이두루가 입은 재킷은 Maisonmarais. 팬츠는 H&M. 권인숙이 입은 재킷과 와이드 벨트, 이너 셔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랩스커트는 H&M.

Q : 이두루 국회 최초 여성학 학자이자 여성정책 전문가입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의정활동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 집중하고 있는 사안을 소개해 준다면

A : 권인숙 1호 법안으로 추진한 게 ‘아동 청소년 대상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입니다. 미성년 여성을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유인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어요. 이를 위해 위장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특례규정을 포함했는데, 이게 기적에 가까워요. 마약 관련 수사 정도를 제외하면 통과된 적이 없는데 거의 광기로, 죽어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지요. 지금은 새 임신중지법 제정을 숙제로 갖고 있고, 또 차별금지법을 21대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목표예요.

Q : 이두루 어느덧 반년이 흘렀지만 지난 2022년 대선 쟁점에 ‘젠더 이슈’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0대 이하 여성 58%가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졌죠. 40대를 제외하면 더민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세대층은 이들이 유일한데요. 대선 이후 젊은 여성들의 정치적 결집을 어떻게 지켜봤는지 궁금합니다. 당 내부에서 소통하며 직접 느낀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 권인숙 계속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여성들은 결국 온다. 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제가 이재명 현 당대표에게 썼던 편지가 책 한 권은 될 것 같은데, 당장 통계에 잡히지 않더라도 여성들을 믿고 가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는 과정은 절절했습니다. 여성들 커뮤니티에 글을 쓰자는 제안도 직접 했습니다. 어떻게 분석해 봐도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에게는 위험한 현실이었기 때문이에요.

Q : 이두루 여성정책 전문가라는 전문성 때문에 국회에서 느낀 한계나 피로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성 문제가 하위 카테고리,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니까요

A : 권인숙 국회 전반에도 여성 의제, 성평등 의제에 대해 백래시가 있어요. 불편해하고, 힘들어하고. 과거의 여성정책을 ‘약자에 대한 지원’ 정도로 이해해 오던 수준에서 더 나아가 변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실 정치에서 소화하기가 쉽지 않죠. 당 내부 사람들과 지지자들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합의의 질을 높여나가기가 어려운 와중에 선거는 또 계속 불어닥치니까요. 이 또한 중요 의제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너무 소수화돼 있어서 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는 데 가까웠으니까요.

Q : 이두루 저는 7년째 페미니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은 48쇄를 찍었고 일본에서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여성들의 인식과 언어가 변화하는 것을 가까이서 겪고 느꼈지만 동시에 페미니즘 같은 논의가 좀처럼 사회 전반의 상식으로 확대되지 않는 지점, 기존 권력 앞에서 소모적으로 미끄러지는 지점을 보게 되는데요. 이 사회를 오래 지켜본 학자이자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 권인숙 여성 문제가 이만큼 화두가 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분명한 변화이지요. 그런데 노동 영역에서 성별 격차, 교육 현실 속 난제들을 사회가 다루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소화하지 못합니다. 공감대가 여성 대상 폭력 이슈에 집중되면서 다른 이슈가 같이 올라오지 못하는 한계도 있습니다. 정부의 퇴행도 큰 문제고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문화적 영역에서의 변화는 이미 어마어마해요. 20~30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방식도 굉장히 바뀌었고요.

Q : 이두루 미디어에서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이 눈에 띄게 다양해진 것을 비롯해 변화가 있다는 데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여성들의 삶이 생각보다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A : 권인숙 정말 변화가 안 일어나는 부분은 노동시장이죠. 우리처럼 교육의 질과 기반을 가진 사회가 여성 임금이나 여성 경제활동 참가 등에서 이만한 성별 격차를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에요. 현실은 정말 잘 안 바뀌어요. 이걸 해결하겠다고 온 사회가 의지를 모아야 바뀔 수 있어요.

Q : 이두루 이 문제의식을 어떻게 사회 전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성평등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A : 권인숙 저는 성평등 사회로 갔을 때 평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기준이 바뀐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이주민이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사회에서는 그 다음 계층에 있는 다른 사람의 임금 평균까지 끌어내려지는 것과 마찬가지죠. 사회 전반에 불평등이나 계급과 분배의 문제가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평등의 경험과 가치관을 가장 기본적인 관계에서 쌓아나가게 하는 것이 성평등이에요. 여성 노동자의 불평등 문제가 곧 남성 노동자의 불평등 문제이고, 여성 저임금 해결이 곧 전체 임금이 올라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Q : 이두루 최근 펴낸 책 〈감옥으로부터의 소영〉은 의원님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냈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자라면서 배운 민주화와 정치의 역사에는 여성이 잘 보이지 않았고 당시의 시대상을 재현한 영화나 드라마 속 여성의 모습에도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에 이 책을 꼭 내고 싶었어요. 앞서서 투쟁한 여성들 자신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더 많이 듣고 싶고요. 지금도 한국 정치는 특히 여성 비율이 적은 분야이기도 한데 비슷한 세대의 활동가이자 현 초선의원으로서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A : 권인숙 돌아보면 70~80년대의 한국은 확실히 봉건적이었어요. 대학은 남성의 공간이었고, 뭘 하려고 하면 남성 흉내를 내야 했지요. 특히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여성들은 가족 속 역할 분담에 짓눌려 압도당해 있었어요. 사회에서 여성 대표성은 더더욱 없고요. 하지만 70년대부터 정치운동을 했던 여성들이 여성단체를 만들고 여성 정치운동의 싹을 틔워왔습니다. 80년대에는 한국여성민우회를 만들고 90년대에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하고 성폭력, 가정폭력법을 만들며 싸웠지요. 그런 노력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고요. 지금도 사회적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내거나 힘을 보태는 건 당시 여성운동을 했던 그들이에요. 안 하는 사람은 한 마디도 안 해요. 남성들은 일절 관심도 없이 아예 이와 무관한 삶을 살아요. 그런데도 결정은 다 그 남성들이 내리죠. 이런 상황에서, 젠더 이슈에 헌신했던 역사성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만이 여전히 여성의 권리를 대변해요. 아무리 비난받아도 지금 책임감을 갖고 한 마디라도 하려는 사람들은 그들뿐이에요.

Q : 이두루 책임감을 갖고 함께 발언하며 변화에 이르려면 여성 각자가 전략적으로 뭉쳐 ‘플러스’를 만들겠다는 정치의식을 갖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죠. 계속 문제 삼으며 예민하거나 혹은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것도 피곤한 일이고요. 여성학을 전공하기 전 활동가로서 계실 때 의원님은 어땠나요

A : 권인숙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면서 결혼도 했었죠. 당시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주변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여성에게 극단적인 희생과 인내가 요구되는데 그 부당함을 지적하면 조직분열주의자, 개인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문화 지형이었어요. 내게는 일상의 모든 게 문제로 보이는데 거기에 문제 제기를 하는 내가 조화롭지 못한 인간이 되고, 심지어 부도덕하다는 낙인을 찍더라고요. 매일매일 머릿속이 지글지글 끓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두루가 입은 코듀로이 재킷과 팬츠는 Delle Lana. 권인숙이 입은 원피스는 Maisonmarais. 러플 블라우스는 H&M.

Q : 이두루 저도 그 ‘지글지글’ 들끓는 마음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스물다섯 살 때 출판사에 취업해서 출판노동조합 활동을 했지만, 그러는 동안 굳이 내가 지금 온 정신을 다해야 할 일이 있다면 페미니즘이겠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의원님이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 여성학을 전공한 것이라고 쓴 걸 봤어요. 앞으로 뭘 이루고 싶은지 몰라도 ‘여성학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욕구’가 밑바닥에 있었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했고요. 여성학을 함으로써 삶을 지배하던 가장 큰 욕구에 답한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배움으로 그 ‘지글지글’이 좀 해결됐을까요

A : 권인숙 운동권 안의 극심한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가 축적된 상태에서 유학을 갔어요. “왜 여성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을 이렇게 미워하지? 자기가 겪은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데 왜 이렇게 ‘나쁘다’ ‘이기적이다’라고 얘기하지?”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에서 건강하지 못하다며 냉소받는 경험이 쌓여가는데 그걸 또 주변 여성 운동가들과 얘기할 수 없더라고요. 노동운동을 하는 여성 동료가 여성학 하는 사람 너무 싫다길래 “너, 여성학 하는 사람 본 적 있니?” 했더니 본 적 없다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문제가 백만 가진데 그런 얘길 하면 어리석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는 현실을 풀어보고 싶었고, 그게 유학생활의 화두였어요. 운동권의 집단주의와 군사주의. 우리나라는 여성 활동가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기점으로 분리되는 게 서구에 비해 굉장히 늦었어요. 이걸 이렇게 느리게 만든 힘이 뭘까 분석해 보고 싶었어요. 논문까지 쓰고 나서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됐던 것 같아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한 느낌이었죠.

Q : 이두루 많은 것이 변하긴 했습니다. 성차별이 현실인 한 페미니즘은 평등주의이고 필수적 앎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성평등이라는 단어 자체를 적대시하고 급기야 다시 안티페미를 외치는 모습은 여전합니다. 이 현실에서 우리가 지치지 않고 지향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 권인숙 성평등 의제를 다면화하면서 세상의 동의를 구하고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힘을 합쳐나갈 만한 의제로서 뚜렷하게 서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다수가 평등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고 설득해야 해요.

Q : 이두루 지금 정치인의 관점에서 답해 주셨는데 좀 더 개인적 차원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이걸 지켰더니 내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더라’ 정도의 가벼운 회고도 좋습니다

A : 권인숙 각자 삶의 이슈에 얼마나 정직하게 다가갈 수 있는가, 얼마나 자기객관화가 되는가에 따라 스스로를 감당하며 주변 삶과 조화를 만들 수 있기에 ‘어떻게 살아라’ 같은 말은 정말 못 하겠어요. 제가 보기엔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거든요(웃음). 굳이 하나를 말하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놀라는 내 특성이, 나는 뭐가 옳다 싶으면 겁이 하나도 안 나요. 옳다고 믿는 일이라면 주변의 판단이나 가족의 염려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가 없어요. 그냥 해요. 그러고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아요. 세상에 내 계산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지만, 자기 판단에는 믿음을 갖고 선택하는 일. 이건 스스로에게 해주고 살아야 해요.

Q : 이두루 사적으로 좋아하는 것, 최근 재미를 느끼는 일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책이나 최근 가장 즐거웠던 읽기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A : 권인숙 박완서 작가의 책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책은 열 번씩 읽는 편이라 그분 책은 그렇게 읽었어요. 박경리의 〈토지〉도 좋아하고요. 요즘 넷플릭스에 밀려 책을 훨씬 덜 보게 되는데…. 출판업자를 만났는데 미안하네요(웃음). 아이돌 문화에도 관심 많은데 여성 아이돌 그룹이 엄청나게 눈에 띄어서 재밌게 보고 있어요. 또 오디오 클립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에서 케이팝에 대해 쫙 정리해 주는 거 듣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요. 강의하고 직접 학생을 만날 때에 비하면 국회의원 되고는 훨씬 못 보긴 합니다. 최근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는 유튜브 채널 ‘숏박스’의 ‘장기연애’ 시리즈를 보면서 엄청 웃었고요. 딸과 와인 마시는 시간도 즐겁네요.

Q : 이두루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건 뭘까요? 정치인으로서 현실적 목표도 좋고, 가벼운 버킷 리스트도 좋습니다

A : 권인숙 지금 가장 큰 목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죠. 딱히 버킷리스트 같은 건 없어요. 저처럼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해보고 싶은 게 별로 없어서 문제예요

Q : 이두루 그렇다면 소망은

A : 권인숙 성평등이 통치 원리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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