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해임 건의안, 받지 않겠다"..강공법 택한 尹의 계산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야당이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가결한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날 저녁 언론 공지에서 “오늘 인사혁신처를 통해 ‘헌법 63조에 따라 박진 장관의 해임을 건의한다’는 국회의 해임 건의문이 대통령실에 통지됐다”며 “윤 대통령은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회의 해임 건의안 가결 전날인 29일 도어스테핑(door steppingㆍ약식 회견)에서 “박진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갖추신 분으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국민께서 자명하게 아시리라 생각한다”며 불수용 의사를 내비친 윤 대통령이 본회의 가결 이튿날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애초 대통령실은 김은혜 수석이나 이재명 부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중 문답 등을 통해 불수용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히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날 저녁 “윤 대통령이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단정적인 문장으로 정면 돌파를 택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강공을 택한 것은 애초 민주당의 박 장관 해임건의안 의결 움직임이 감지될 때부터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주 5박 7일간의 영국ㆍ미국ㆍ캐나다 순방을 통해 적잖은 외교적 성과를 거뒀음에도, 야당과 일부 언론이 이를 폄훼하고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기본 인식"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약식회견 날 오후 김대기 비서실장은 북한의 핵 사용 법제화와 동해에서의 한ㆍ미 연합훈련, 금융시장의 불안정한 움직임 등을 열거하며 “지금 어느 때보다 미국과의 협력이 절실할 때로, 총칼 없는ㆍ 외교전쟁의 선두에 있는 장수의 목을 친다는 건 시기적으로나 여러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는 이번 일이 윤 대통령의 순방 중 비속어 논란의 출구가 될 거란 계산도 깔려 있다. 결과적으로 거야(巨野)의 국회 독주가 부각돼 여러 논란으로 이탈해 있는 여권 지지층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야당이 박 장관 해임 건의안을 밀어붙인 건 자신의 지지층만을 겨냥한 무리수로, 여권에선 ‘하려면 해 보라’는 기류가 있었다”며 “불리한 여론 흐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발표 이후 여야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제라도 민생을 도외시한 정쟁을 멈추고, 정기국회를 협치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해임 결의안을 밀어붙인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내고 “윤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즉각 거부한 것은 여론과 국회를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외교 대참사의 진상규명과 대통령 사과, 책임자 문책이 이뤄질 때까지 강력히 저항하겠다”고 주장했다.
권호 기자 kw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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