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44>] 음주와 국가

데스크 2022. 9. 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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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44화 음주와 국가


하지만 이철백의 생각은 달랐다. 술은 기호식품으로서 음주는 개인의 선택인데 그걸 국가가 통제하고 계도하다 못해 알코올중독자가 생기면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는 게 영 마뜩찮아 보였다. 그건 개인의 잘못을 국가에 책임 전가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심어주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마약은 왜 통제하나. 마약중독자는 국가가 나서서 치료해 주고 있지 않냐?”


김석규의 반론이었다.



“마약이야 폭력성과 공격성, 반사회적 행위를 유발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술은 그럼 폭력성, 공격성, 반사회적 행위랑 무관하냐?”


“술이 마약만큼은 위험하지 않으니까. 술이 마약은 아니니까.”


“술도 마약의 일종이야.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관습처럼 널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마약으로 지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술을 마약으로 지정할 경우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찮고 말이야.”


“어떤 부작용?”


“대표적인 게 세수의 감소와 사회적 혼란이지. 술과 관련된 산업, 업종, 그리고 수많은 애주가들, 얼마나 혼란스럽겠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주방임정책을 취해선 안 돼. 국가가 강제적으로 술을 통제하진 못하더라도 금주나 절주 같은 사회분위기 조성엔 팔을 걷어붙여 줘야지.”


김석규가 상당히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이철백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그 대신 개인은 국가에 대하여 최소한의 요구를 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이철백은 굽힐 수 없었다.


편집망상에 시달릴 때의 김석규와 현재의 김석규가 내세우는 주장은 취중과 맑은 정신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했다. 편집망상일 때는 국가를 위하여 술을 섬멸해야 한다는 애국주의를 설파하더니 현재는 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복지주의를 주창하고 있었다. 애국주의는 국가가 국민에게 주입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국민의 의무’를 강요하는 반면 복지주의는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 모색하는 ‘국가의 의무’와 함께 국민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었다.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지만 김석규의 담론을 관통하는 키워드에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국가였다.


하지만 이철백은 평소 자신의 지론을 펼 때 국가와 사회, 민족 등을 거론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철백이 주창하는 담론은 철저한 개인주의였다. 그렇다고 개인이 국가보다 위대하다는 그런 류의 담론이 아닌, 공동체보다는 개인, 국가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에 가까웠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철백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은 공동체주의가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낳고, 그리하여 결국 국민의 고혈을 짜내는 병폐가 독재주의, 공산주의 국가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개인이 국가보다 위대하다는 김석규의 생각은 그가 편집증을 앓기 전부터 견지하고 있었다. 국가보다는 개인을 위하는 사회가 진정 제대로 된 사회라고 김석규는 변함없이 주창해 왔었다. 개인 없는 국가는 불가능하지만 국가 없는 개인은 가능하고, 결국 개인이 국가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과 가정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음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김석규는 생각했다.

이철백은 고민하면 할수록 골치가 아프고 지끈거렸다. 김석규와는 생각이나 관점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음주조차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면 나중엔 개인의 성생활까지도 국가가 개입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간다면 결국 중세 암흑기 같은 전체주의로 회귀할 것이고, 따라서 인간은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일개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이철백은 가슴이 아주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고 택시 창문을 활짝 열었다.


“니기미, 국가에 책임 전가할 지경이면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이철백은 자정을 넘기기가 무섭게 택시를 몰고 회사로 복귀했다.


이튿날 이철백은 맥주와 음료수를 사들고 임봉식의 집으로 찾아갔다. 한종탁에게 연락을 해볼까 했으나 잠수 중인 친구를 건드리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3층짜리 빌라 1층에 사는 임봉식은 현관이며 베란다까지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젖힌 상태였다. 임봉식은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에어컨도 틀지 않고 오로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며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공부에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몰라.”


“방해가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


임봉식은 앉은뱅이 탁자를 책상으로 쓰고 있었다. 이철백이 탁자를 깨끗이 치우고 그 위에 맥주와 음료수를 올려놓았다.


“맥주 한잔 줄까?”


“아니, 난 음료수 한잔이면 돼.”


이철백이 종이컵에 음료수를 부어주며 임봉식에게 물었다. 공부는 잘 돼가나? 이번엔 임봉식이 종이컵에 맥주를 따르며 대답했다. 공부가 재미있네, 재미있어. 진작 공부할걸 그랬나 봐. 이철백과 임봉식은 종이컵을 묵음으로 부딪치며 맥주와 음료수를 각각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둘은 다시 처음처럼 서로의 종이컵을 채워주며 먼저 임봉식이 묻고 다음으로 이철백이 대답했다.


“석규는 퇴원했다며?”


“퇴원해서 미천(美川) 골짜기에 요양 차 들어갔어.”


“한번 다녀왔냐?”


“아니, 당분간은 사람 만나는 걸 피해야 된대. 그래야 금주를 유지한대나 어쩐대나.”


아무래도 술을 피하려면 먼저 사람을 피하고 봐야지. 임봉식이 혼잣말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며 되뇌었다.


“그런데 봉식이 넌 개인이 술을 마시는 것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보냐?”


“그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석규는, 국가에서 금주나 절주 같은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서 개인이 술을 안 마시도록 계도하고, 그럼에도 알코올중독이 되면 전적으로 국가 부담으로 치료해야 한다는데, 그런 식으로 가다간 막말로 개인의 성생활까지 국가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냐?”


“술을 국가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현재 개인의 성생활은 국가에서 관리해 주고 있지 않냐? 간통이라든지 성매매라든지 죄다 금지시키고 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술 마시는 건 개인의 선택이잖아. 따라서 알코올중독이 된다한들 그건 개인의 문제지 어째 국가의 책임일 수 있냐 이거야.”


“몰라. 국가의 책임까지는 모르겠고, 알코올중독자를 국가가 치료해 주면 그건 고마운 일이지.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는 일도 되면서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예측 가능한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고.”

임봉식이 대답을 하고는 음료수를 시원하게 쭉 비웠다. 이철백은 종이컵에 다시 음료수를 채워주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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