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 후 정말 '그 사람'이 됐다.. 가능한 일?​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 2022. 9. 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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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기억설'의 진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심장 이식을 받은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알고 보니 기증자 성격이….” 장기 이식 수혜자가 이식 후 기증자의 성격·습관 등을 닮게 됐다는 ‘세포기억설’ 이야기다. 이전처럼 드라마·영화 소재로 자주 다뤄지진 않고 있으나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방송, 외신 등을 통해 사례가 소개된다. 들어보면 꽤 그럴싸한 사연이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냉소적이다.

◇“장기 속 세포가 기억한다”… 70여개 사례 확인
세포기억설은 장기 이식 수혜자가 이식 후 기증자의 성격, 습관 등을 그대로 닮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미국 심리학자 게리 슈왈츠 박사(애리조나대학 교수)가 처음 주장했으며 ‘셀룰러 메모리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게리 슈왈츠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기억은 뇌뿐 아니라 장기 속 세포에도 저장된다. 누군가의 장기를 이식 받으면 장기 속 기억 기능을 가진 세포가 함께 이식되고, 이로 인해 수혜자에게 기증자의 여러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는 실제 장기 이식 수혜자를 관찰하면서 이 같은 사례를 70건 이상 확인했다. 그가 본 사람들은 기증자의 성격을 닮는 것은 물론, 생활습관, 관심 분야 등이 기증자와 비슷하게 바뀌고 무의식적으로 기증자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심장 이식을 받은 소녀가 수술 후 꿈에서 본 살인자의 몽타주를 그려 기증자를 살해한 범인을 잡았다는 일화는 그가 주장하는 세포기억설의 대표적 사례기도 하다.

◇ 전문가들 “의학적 근거 없어”
세포기억설은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소설 소재로도 곧잘 활용돼왔다.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 기증자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흥미로운 주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론의 과학적 신빙성은 ‘0’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게리 슈왈츠를 비롯한 일부 심리학자들이 진행한 연구들은 모두 사례를 기반으로 한 관찰 연구다. 사실관계를 입증할 만한 과학적·의학적 근거가 없으며, 이론의 핵심인 ‘장기 세포의 기억 기능’ 역시 이론일 뿐 실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특정 장기 속 세포가 기억 기능을 가졌다고 해도, 이로 인해 기증자의 성격·습관을 닮거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성격·습관이 형성되고 기억이 생성·저장되는 것은 모두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또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가천대 길병원 외과 박연호 교수는 “의학적으론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며 “사물을 보거나 경험하고 기억하는 일들은 모두 뇌의 역할로, 의학적인 관점에서 신체 개별기관이 기억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유영동 교수 또한 “외부에서 입력된 정보를 다루는 뇌 영역이나 기억 관련 중추들이 따로 있다”며 “다른 장기를 이식했을 때 성격이 변하고 기억이 전달되는 것은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세포기억설과 별개로 피부에서는 드물게 비슷한 현상이 확인되기도 한다. 피부 재건 등을 위해 다른 부위 피부를 이식한 후, 해당 부위에서 이식 전 부위의 피부와 같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손가락에 배, 엉덩이 등의 피부를 이식했는데, 체중이 늘면서 피부를 이식 받은 손가락만 함께 살이 찌는 식이다. 다만 이는 세포가 자신의 고유 정보를 기억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는 등 고차원적 인지 기능과는 연관이 없다.

◇이식 수술 후 심경 변화, ‘성격 변화’로 이어질 수도
그럼에도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장기 이식을 받는 수혜자는 대부분 최후의 방법으로 장기 이식을 받는다. 이때 ‘새 삶을 살겠다’거나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등 심경 변화를 겪으면 극단적으로 성격이 변할 수 있다. 원칙적으론 불가능하지만 드물게 기증자에 대한 정보를 직·간접적으로 들을 경우 기증자와 비슷한 성격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 역시 성격 변화에 한해 가능한 설명이다. 수술 후 마음가짐 변화만으로 기증자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능력을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림대 심리학과 최훈 교수는 “수술과 같이 삶의 큰 변곡점이 생기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성격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먼 미래의 일이지만 뇌 이식이 가능해진다면 세포기억설과 같은 현상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역시 죽지 않은 상태의 뇌를 온전히 이식하게 됐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뇌의 전체 또는 특정 부위 이식 여부에 따라서는 기억이나 습관, 성격 등이 그대로 보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최훈 교수는 “전통적인 이론으로는 뇌를 바꾸면 이전 사람의 기억 또한 살아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따로 있고, 기억 유형별로도 담당 영역과 기억하는 부분, 기억하는 방식 등이 달라져, 모든 기억이 그대로 전달된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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