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질문의 여왕
친구는 질문에 일가견이 있다. 내가 어릴 때 몸이 약했다고 하면 “몸이 약했다는 게 어떤 정도를 말하는 거지? 예를 들어봐” 한다. 누가 싫다고 하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질문도 많고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하는 편이라 피곤할 때도 있지만 덕분에 과거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앞집에 놀러가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우리 집에 달려가 내 숟가락을 가져온 적이 있는 어린이였다. 밤늦게 일을 마치는 아빠가 사오는 간식을 먹으려고 자정까지 버티기를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엔 엄마 아빠가 번갈아 수십 번을 깨워야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질문은 대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내가 이랬지, 돌아보는 일이 새삼 즐거웠다. 그에 비하면 나의 질문은 빈약했다. 실컷 내 얘기를 늘어놓은 다음, “너는 어땠어?” 하는 정도다. 친구는 부모님이 바쁘셔서 소풍날 친구들의 김밥을 부러워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아침 7시에는 가족 모두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우리 집과는 딴 세상에서 산 것 같지만 나의 질문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가 나를 아는 만큼 나는 친구를 알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풍성한 대화는 관계를 깊어지게 한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 생각하면 별 얘기를 다했네 싶으면서도 그만큼 날 이해해줄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누구도 묻지 않은 것들을 물음으로써 친구는 누구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를 처음 만난 날 서로의 직업이나 나이를 알기도 전에, 나는 첫사랑에 대해 털어놓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주책이었다. 통성명만 하고 지나치거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타인에서 친구가 됐고, 확실히 질문의 힘이 컸다.
슬슬 나도 질문에 욕심이 났다. 나만 털릴 수 있나 하는 심정일 때도 있고, 나보다 박식한 친구로부터 주워듣는 상식도 달콤해서 묻기 시작했다. 내가 용기를 내서 곤란할 것 같은 질문을 하면 친구는 오히려 “질문 좋은데?”라며 칭찬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나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질문을 하면 솔직하다고 북돋아 준다. 내가 때로 친구에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한테 계속 질문하다가 머리끄덩이 잡힌 거 알지”라고 말하는 것과는 수준 차이가 난다. 의문의 일패 후 나는 좋은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좋은 질문이 어떤 질문인지에는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구체적이면 좋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대화는 작은 사례와 비유들로 채워지며 쉽고 재미있고 명확해진다. 질문이 “그 책 어땠어?”를 넘어서면 대답도 “괜찮았어. 재밌었어” 이상이 된다. “클라라와 태양 읽었댔잖아. 네가 조시 엄마라면 딸이랑 똑같은 AI를 만들 것 같아?” “그건 딸을 사랑하는 걸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 “클라라는 AI인데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나오잖아. 인간의 감정도 학습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대화는 더욱 재미가 없어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다.
질문을 잘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거나 무언가에 대해 알고 싶으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수영을 잘하려면 연습을 해야 하듯이 질문을 잘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질문을 고민하고, 대답을 경청하면, 모르는 부분까지 알게 되고, 공감하고, 교감하게 된다. 내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친구가 안부를 물었다. “몸은 어때?” “이제 괜찮아”라고 대답하자 친구는 질문을 수정했다. “질문을 바꿔볼게. 코로나 안 걸렸을 때 몸 상태가 100이라면 지금은?” 나도 친구에게 배운 칭찬을 써먹었다. “오, 똑똑한 질문인데? 90! 거의 회복됐어.”
죽음에 대해 얘기하던 어느 날 친구에게 물었다. “묘비명에 뭐라고 적고 싶어?” “질문을 했던 사람.” 친구는 질문하는 일에 진심이었다. “인정, 딱 어울린다”라고 말하고 덧붙여 생각했다. 넌 질문의 여왕으로 기록돼야 마땅해.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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