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MBC의 진실 추구 노력?

고정애 2022. 9. 3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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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발언에 없는 '(미국)' 자막
'미 의회·대통령 모욕' 프레임 강화
내부서도 "한쪽만 비난한다" 질타
고정애 논설위원

7년 전 영국 런던에서 경제 전문가와 인터뷰할 때의 경험이다. 그리스에서 급진 좌파연합이 집권해 유로존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던 시기였다. 그에게 “그리스가 부채 탕감을 요구할 텐데 메르켈 총리가 수용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부채 탕감 조건에 의미 있을 정도론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중요한 행위자가 아니다.”

웬 미국? 그러다 깨달았다. 한국식으로 발음한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아메르켈’이라고 했을 리 없건만, 그는 ‘아메리카’로 인식했다. 몇 차례 말이 오간 후에야 ‘그녀(메르켈)’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어·한국어라서?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국회 프레스센터 내 중앙일보 부스엔 속기해 주는 분이 있었다. 타자 속도는 월등했다. 속기의 질까지 그랬던 건 아니다. 특히 근무 초기엔 오기(誤記)가 제법 있었다. 익숙지 않은 내용이어서다.

왜 이 얘기를 하는지 알 것이다. MBC가 “(미국)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란 자막을 달아 보도한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hot Mic)이 여전히 논란이다. 많은 이가 들어봤겠지만 다른 부분과 달리 ‘바이든은’ 대목은 덜 선명하다.

영상기자단에선 다수가 ‘바이든’으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당시 상황으론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행사에서 나오는 길이었으니 ‘바이든’이 기준점 역할을 했을 수 있다. 기자 한두 명이 ‘바이든’이라고 하자 나머지에도 그리 들렸을 것이다. 대통령실 사람이 ‘날리면’이라고 했다지만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이게 일반인들에게 바이든으로 ‘사전 각인’돼 정보의 폭포처럼 흘렀고 말이다. 진정 중요한 건 화자(話者)의 발언 맥락이었을 텐데, 기자단이 제대로 확인하려고 노력했을까. 글쎄다.

더 의아한 건 MBC가 ‘국회’ 앞에 왜 ‘(미국)’을 넣었느냐다. 국회는 우리 의회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그런데도 MBC는 (미국)을 통해 미 의회인 양 전달했고, 그 결과 ‘동맹 모욕’이란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제 코가 석 자’인 사람은 윤 대통령이다. 원내 소수파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확보해야 해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 발언 직후 “내용을 잘 설명해 예산이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말한 국회가 진짜 국회일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가 안 해주면 부끄러워지는 주체도 윤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설령 우리 국회가 통과를 안 시켜준다 한들 바이든이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론 ‘국회가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린다’는 성립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안 했다고 말한다.

22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을 다룬 화면. MBC 유튜브 캡처

MBC는 국회를 미 의회로 못박아서 논리적 모순을 회피했다.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이란 부제를 단 『노이즈』에서 “우리는 빠르게 인상을 형성하고 그것을 고수한다. 심지어 상충하는 정보가 들어와도 첫인상을 바꾸지 않는다. 과도한 일관성”이라고 지적한 경우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어 습관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실의 어설픈 대응 또한 마찬가지다. 여러 곳에서 하고 있으니 여기선 생략한다.

MBC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 자막을 다는 과정 등을 보면, 공영방송으로서 합당한 신중함·책임감·불편부당함을 보였는지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워서다. MBC의 한 구성원은 “MBC는 이해찬 전 대표의 ‘✕✕자식’ 발언이나 이재명 대표의 형수 욕설을 틀지 않았다.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발언은 소극적으로 다뤘다. 반면에 김건희 여사의 녹취파일은 틀었다. 항상 한쪽의 얘기엔 귀 닫고 한쪽엔 청진기를 들이대고 있다”고 했다. 과도한 비난인가. MBC의 “진실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란 항변에 썩 동의가 안 돼서 하는 말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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