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시대는 노무현의 꿈이었다" 돌아온 '盧의 남자' 변양균 [주정완의 직격인터뷰]

주정완 입력 2022. 9. 30. 01:00 수정 2022. 9. 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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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돌아온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윤석열 대통령 경제고문)이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변 고문은 다음 달 6일부터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김경록 기자


주정완 논설위원

‘노무현의 남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돌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를 받으며 국정 운영의 중심축을 맡았던 변양균(73) 전 청와대 정책실장(전 기획예산처 장관)이다. 2007년 신정아 사건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지 15년 만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기획원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 변 고문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선 주요 개혁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최전선에서 앞장섰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내가 만나본 관료 가운데 가장 관료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2017년에 펴낸 『경제철학의 전환』이란 책은 윤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관계와 경제계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다음 달 6일부터는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일화를 중심으로 경제·재정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한 경험을 전달한다. 연재에 앞서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와 함께 변 고문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변양균(가운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경기도 과천 자택에서 이정재(오른쪽)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주정완(왼쪽)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대담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노무현의 남자'로 개혁 정책 주도


이번엔 윤 대통령 경제고문 맡아

-윤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맡았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난 대선 때부터 이런저런 요청을 받았다. 당시 윤 후보 캠프에서 외연 확대에 나섰던 시기였다. 나는 정치도 잘 모르고 선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될 거라고 사양했다. 그랬더니 윤 후보와 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도 제안을 사양하면서 캠프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자문에는 응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 책(『경제철학의 전환』)을 두 번이나 줄을 쳐가면서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재명 후보 캠프나 더불어민주당에선 연락이 없었나.
“없었다. 그쪽에선 『경제철학의 전환』이 보수적 관점에서 쓴 책이라고 본 듯하다. 나로선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쓴 책인데 이념을 따지는 사람들에겐 부담이 된 것 같다.”(※『경제철학의 전환』은 케인스주의 확장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선 이후에는 어떻게 됐나.
“한덕수 총리가 후보자 시절에 몇 차례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지난 6월 중순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를 마칠 때쯤 경제고문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통령과는 무슨 얘기를 했나.
“경제 정책의 원칙을 두 가지로 구분해 말씀드렸다. 하나는 자율·경쟁·개방을 기본으로 하는 시장경제, 다른 하나는 국민의 주거·의료·교육 등 기본수요를 충족하는 사회정책이다. 현재 경제가 어렵지만 국민에겐 항상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중장기적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른 얘기는 없었나.
“미국인 학자(R 태가트 머피)가 쓴 『일본의 굴레』라는 책을 전해드렸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어떻게 보나.
“아직 평가는 이르다. 현 정부는 경제 정책의 주류에 있던 사람들로 경제팀을 구성했다. 문재인 정부와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다만 경제 정책에서 고유의 브랜드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경제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건 시스템이지 목표가 될 순 없다.”

-경제 정책의 브랜드는 어떤 게 좋을까.
“예를 들어 중산층의 복원과 확대를 생각할 수 있다. 양극화를 다른 말로 바꾸면 중산층이 위축했다는 뜻이다. 중산층을 넓히는 건 재정·금융·복지 등 경제 정책의 전반을 포괄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중산층이다’란 인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국민의 행복도는 낮아지고 불행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변양균(오른쪽) 경제고문 위촉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선 전부터 정책 자문 요청 받아


슘페터식 혁신, 중산층 복원 제안"

-현재 경제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종합 처방이 필요해 보이는데.
“이번에 겪는 경제위기는 여태까지 없던 방식이다. 신냉전 시대에 들어가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어긋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국제 정세 변화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 공급망 문제의 정교한 해결도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구조개혁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강력한 경제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디까지나 경제부총리가 야전 사령관이다.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토론을 벌이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경제부총리가 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게 맞다. 대국민 메시지를 낼 때 너무 위기만 강조하는 건 좋지 않다. 우리가 모두 고통을 분담하면 위기를 극복하고 더 좋아질 것이란 희망적인 말도 해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 통과가 쉽지 않다.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됐다면 국민은 법안 통과를 막은 쪽을 나쁘게 본다. 반대로 노력한 쪽은 좋게 봐줄 거다. 여소야대라고 지레 포기하면 안 된다. 때로는 과정이 결과 이상으로 중요하다.”

-현 정부 경제고문을 맡은 것에 대해 문 전 대통령 쪽에선 반응이 어땠나.
“문 전 대통령께는 사전에 전화로 말씀드렸다. 정확한 직함이 뭐냐고 물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권양숙 여사께도 전화를 드렸더니 당연히 찬성이라면서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란 말씀을 주셨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
“용산 시대는 ‘노무현의 꿈’이었다. 그걸 잘 아는 내 입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구상에 100% 맞는 건 아니지만 비슷하게 가고 있다.”

변양균(왼쪽)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았던 2005년 4월 21일 업무보고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청와대 회의실로 들어가는 모습. 중앙포토


-청와대에서 너무 급하게 나온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는 서양 영주의 성처럼 높은 곳에서 백성을 내려다보는 자리다. 거기서 나와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간 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프랑스 출신 석학 기 소르망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대부분 도시 중심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며 용산 이전을 높이 평가했다. 예전에 고종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구중궁궐인 경복궁에서 나와 덕수궁으로 옮기지 않았나. 청와대도 구중궁궐이나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이 구상한 용산은 뭐였나.
“기본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이 주둔하느냐는 시각이었다. 그게 우방국 군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굴욕의 역사를 빨리 청산하고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더 멋진 공원을 만들려고 했다. 미군 시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가고 공원 지상에는 건물을 전혀 두지 않는 게 기본 개념이었다.”

-문재인 정부엔 왜 참여하지 않았나.
“초기에는 사람을 추천하기도 했다. 경기지사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어느 순간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감시 대상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물으니 내 이름을 팔아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감시한다는 얘기였다.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후 모든 정책 조언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경제철학의 전환』이란 책을 냈다. 슘페터식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경제 정책을 운영하는 데 반영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나.
“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 책의 초고를 보내드렸다. 경제 정책에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말고 중도를 가라는 뜻이었다. 얼마 뒤 캠프 관계자가 연락을 해왔다. 선거 운동에 방해가 되니까 선거가 끝나고 책을 내달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했다. 이후 청와대를 시민단체 출신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그중 한두 명은 내 책을 굉장히 배척했다는 말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노무현노믹스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양쪽의 지지자들이 겹치기는 하지만 경제 정책의 접근 방식은 달랐다. 노무현 정신을 경제 쪽에서 보면 굉장히 실용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지자들의 뜻에 벗어나는 건 하나도 안 했다.”

-이유가 뭘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붙은 2012년 대선에서 문 전 대통령은 이기는 승부라고 봤는데 졌다. 이후 4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정치는 세력이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국 세력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아예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시민단체 출신을 쓰더라도 일부만 해도 되는데 쫙 깔아놓으니 옴짝달싹 못 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히는 게 부동산 정책이다.
“문 전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부동산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더니 이제는 공급 대책도 착실히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공급보다 훨씬 큰 문제가 있는데, 그건 부동산 정책이 이념화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부유세로 불리는 종합부동산세는 사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종부세 도입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고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를 국제 기준에서 보면 워낙 낮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국세로 종부세를 부과해 저소득층 지원에 쓰는 건 타당하다고 봤다. 이후 종부세가 부자들에게 징벌적인 세금을 매기는 것처럼 변질했다. 상위 1%였던 종부세 대상도 점점 늘어나 서울 강남권에선 수십%가 됐다. 이러면 부동산 정책이 이념화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분야의 경제 정책은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의 절반 이상을 코로나19와의 싸움으로 보냈다. 코로나19 대응만 얘기하면 잘했다고 본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코로나19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과 맞먹는 위기였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맞아 반독점 규제, 사회보장 도입 등 수많은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코로나19 위기는 국민의 뜻을 한 곳으로 모아 개혁하기 좋은 기회였는데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7월 4일 청와대에서 변양균(앞줄 오른쪽)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이 경제 망쳤다는 건 오해


기본에 충실한 정책, 후반에 성과"

-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린 지 14년이 지났다. 지금 다시 노무현을 얘기하려는 이유는.
“노무현 정부는 인위적 경기부양을 하지 않은 게 경제를 망친 것처럼 낙인이 찍혀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고 싶다. 일부 부족한 점은 있지만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경제 정책을 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성과를 냈다. 반면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정부를 보면 초기에는 확장 정책을 폈다가 임기 말에는 모두 좋지 않았다.”

-일부에선 ‘노무현을 보수화시킨 관료’라고 평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을 보수화시켰다기보다는 그분 덕분에 내 뜻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념에 찌든 분이 아니다. 내가 건의한 정책 중에는 진보 진영이 싫어할 만한 것도 많았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지도자는 드물다. 그분도 나를 선택했지만 나도 노무현의 위대함을 선택했다. 춘추전국시대에 비유하면 좋은 군주를 만난 셈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전 2030’을 내놨다. 당시엔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비전 2030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기 재원배분 계획이다. 단순히 전망이나 비전이 아니고 국가계획을 수립한 거다. 2020년에는 2005년의 일본 정도는 간다. 2030년이 되면 2005년의 스위스를 따라잡는다. 이게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2020년엔 일본을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서 뒤집었다. 각 분야의 구조개혁 계획도 100가지 정도 들어 있었다. 이런 개혁이 없으면 갈수록 재정부담만 커지고 선진국으로 진입도 못 하고 파탄이 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엔 재원조달 계획을 두고 비판이 많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론 때문에 도저히 증세를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제일 아쉬운 점이다.”

-신정아 사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가정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인생에 대해 많이 깨달았다. 다 지나간 얘기다.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2012년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이란 책에선 “법원이 신정아씨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건 세상과 나의 문제일 뿐”이라며 “그로 인해 대통령과 국정 운영에 누를 끼쳤고 참회조차 못 한 채 그분을 떠나보냈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이정재 전 칼럼니스트,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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