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탁의 시선] 정치 싸움에 말려들면 진짜 '개·돼지' 될 수도

김성탁 2022. 9. 30. 00: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탁 논설위원

최근 저녁 자리에서 가슴 아픈 얘기를 들었다. 스타트업 기업이 생명줄과 같은 개발자들을 내보내고 있다고 했다. 월급을 주기 어려울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져서다. 투자가 뚝 끊기면서 대출을 받아 메워왔는데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다. 규모가 훨씬 큰 기업들도 희망 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비상 경영’에 돌입한 기업들이 많으니 인력 구조조정 칼바람이 몰아칠까 우려된다.

중국에서 제품을 수입하는 소규모 업체 관계자는 원화가치 하락으로 가만히 앉아 매일 수천만 원씩 손해를 본다고 하소연했다. 아파트 중도금을 내야 하는 한 가장은 “주식에 넣은 돈이 반 토막 났다. 손해 보고 팔 수도 없어 돈 빌릴 곳을 수소문 중”이라고 했다. 최근 손님이 좀 늘었다는 자영업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이 올라 부담인데, 요즘은 종업원들이 최저 임금 받고는 일을 안 하려 해요. 상추 한 상자가 10만원인데 음식 가격을 올릴 수 없어 집에 가져가는 게 없습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내년에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란 경고음이 요란하다. 겨울, 그것도 혹한이 다가오고 있다.

「 대량 실직 등 내년 ‘경제 혹한’
비속어 논란에 위기 대응 묻혀
국민이 정쟁 정치에 냉담해져야

위기 징조가 뚜렷한데도 요즘 정치권에서 들리는 소식은 온통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중 비속어 사용 논란이다. 대통령의 해외 행사 과정에서 나온 발언은 당연히 검증과 평가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여야가 열흘 가까이 싸우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조작 보도’라며 열을 올린다. 마치 이 문제를 빼면 시급한 다른 현안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나라든 여야가 대립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국내 정당들은 집권당이냐 아니냐의 위치만 바뀔 뿐 정쟁 이슈에 과도하게 몰입한다. ‘비속어 논란’이 벌어지기 전인 지난 19일부터 국회에서 첫 대정부 질문이 열렸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은 텅 비어 있었다. 질의하는 의원들을 빼면 여야 나머지 의원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사진 MBC 캡처


정치권이 편을 나눠 정쟁을 벌이면 다른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번에도 발언 논란이 커지면서 해외 순방에서 국익을 위한 소득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관심 밖으로 밀렸다. 여야 정쟁을 지켜보는 당국자들은 어쩌면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지 모르겠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시장의 불확실성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심각한 무역적자 대응책 등도 제대로 평가받지 않고 있다.

자극적 이슈로 정쟁을 벌이는데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은 지지층을 자극하기 쉬워서다. 실제 SNS나 온라인 댓글에는 비속어 발언 논란이 촉발된 이후 편으로 갈린 갑론을박이 가득하다. 대통령의 언어와 외교는 대중의 관심 사항이지만, 국내에선 삶의 문제와 관련된 정책보다 유독 여야 대립 사안에 이목이 집중된다. 정치권이 상대 진영을 향한 공격을 내놓으면 극렬 지지층이 반응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치권이 이런 이슈에 집착하는 것은 1년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도 무관치 않다. 0.73%포인트 차이로 갈린 지난 대선 결과에서 보듯 유권자의 표심은 갈려 있다. 협치나 상생은 관심 없고 어떻든 상대 진영에 흠집을 내야 승산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정당 내부 밥그릇 싸움도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 지도부 자리를 놓고 지루한 내분을 겪는 것은 차기 총선 공천권을 누가 행사하느냐를 둘러싼 갈등이기도 하다. 공천을 받으려면 본회의장에서 대정부 질문을 경청하는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한 전위대가 되는 게 유리하다. 이를 보여주려 여당 의원들은 MBC 앞에 몰려가 마이크를 잡고 보도를 규탄하고,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대출 문화방송 편파방송조작 진상규명위원장, 박성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 보도와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래서 유권자가 중요하다. 정치권이 먹거리처럼 던져주는 싸움판을 덥석 물면 곤란하다. 정말 물고 늘어져 따져야 할 게 뭔지 판단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정당을 불문하고 후보들이 내놓은 ‘퍼주기 공약’에 차이가 있었던가. 누가 당선되든지 한정된 재원으로 가능이나 했던 건가. 정치권 싸움만 쳐다보고 편 갈라 응원하다가는 다가오는 추위를 맨몸으로 맞아야 할 수 있다.

당장 가장이나 자녀가 실직하면 통닭집을 차릴 것인가, 튀길 것인가, 배달할 것인가. 경제 위기로 통닭집 영업 자체가 불가능해지면 어쩔 것인가.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뭣 하러 신경을 씁니까.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정치인들이 벌이는 싸움판을 변별하자.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처럼 개·돼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김성탁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