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팝니다"..'팝업'의 경영학
비용은 저렴, 효과는 확실 '리테일테인먼트'
팝업스토어(Pop-up store).
짧은 기간 동안 운영하다 접는 ‘임시 매장’을 일컫는 단어다. 인터넷 웹페이지에서 ‘잠깐’ 떴다 사라지는 ‘팝업창’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동안은 단시간 내 ‘반짝’ 홍보가 필요한 기업과 브랜드에서 팝업스토어를 자주 열었다. 예를 들면 신제품을 내놓을 때 소비자 관심을 집중시키고 출품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팝업스토어가 갖는 위상은 과거와 천양지차다. 단순히 ‘임시’ 매장을 넘어 ‘주력’ 판매·마케팅 채널로 맹활약하는 모습이다. 여길 봐도 팝업, 저길 봐도 팝업일 정도로 팝업스토어 빈도 자체가 현격히 늘어났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하는 목적도 달라졌다. 과거 제품 홍보를 위한 목적이 강했다면, 요새는 제품 판매 없이 브랜드 자체를 홍보하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늘려가는 양상이다. 명품 브랜드나 대기업은 물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무명의 신생 브랜드, 기업이 아니라 연예인과 지방자치단체까지도 팝업스토어에 뛰어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세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른 ‘팝업스토어’의 세계를 분석해본다.
▶명품 넘어 아이돌·지자체까지
▷스니커즈-BTS, 원소주-리니지 협업
무엇보다 팝업스토어를 여는 기업 분야가 다양해졌다는 점이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이다.
예전에는 패션·뷰티 업계에서 팝업 마케팅을 주로 활용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무장한 ‘힙’한 공간은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고 바이럴 마케팅에도 제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팝업스토어를 연다. 지난 8월 입생로랑은 압구정로데오에서, 지난 9월 샤넬은 제주도에서 팝업 부티크 매장을 열었다. 올 9월부터 10월까지 루이비통이 운영하는 팝업 레스토랑 ‘알랭 파사르 at 루이비통’은 사전 예약이 1시간 만에 조기 마감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패션·뷰티에서 다른 업종으로까지 팝업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식품·금융·애플리케이션 등 업종을 불문하고 팝업 러시가 이어진다.
식음료 업계가 특히 적극적이다. 올해 8~9월에만 수십 개 기업과 브랜드가 팝업 행사를 진행했다.
CJ제일제당 비비고는 지난 8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주옥’과 손잡고 원테이블 팝업 레스토랑 ‘따뜻한식당’을 운영했다. 신창호 셰프가 비비고 제품을 활용한 스페셜 레시피를 대접하는 방식으로 경쟁률이 160 대 1에 달할 정도로 치열한 예약전이 펼쳐졌다. 한국마즈의 초콜릿 제과 브랜드 ‘스니커즈’는 BTS와 손을 잡았다. 스니커즈 BTS 스페셜 에디션 출시를 기념해 성수동 에스팩토리에 ‘BTS × 스니커즈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BTS 고유 컬러인 ‘보라색’으로 꾸며진 팝업 내부에서는 포토존, 이벤트 행사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해놨다. 이 밖에도 BBQ치킨이 지난 8월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창립 이래 처음으로 팝업스토어를 열었는가 하면, 지난 9월 몽고식품은 장류 업계 최초로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보수적인 이미지로 유명한 ‘금융’ 업계도 팝업스토어로 반전을 꾀하는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9월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40주년’을 기념해 KBO 대표 선수의 야구 용품과 40주년 기념 굿즈를 만나볼 수 있는 팝업 전시회를 열었다. ‘조인혁 작가’의 일러스트 디자인을 활용해 제작한 기념 굿즈와 KBO리그 대표 선수들의 사인 굿즈 등이 전시됐다. 우리은행은 무신사와 손잡고 무신사 테라스 홍대에 팝업 점포 ‘원 레코드’를 선보였다. 음악 감상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금융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기획된 팝업스토어로, 한강과 여의도가 내려다보이는 LP 청취부스, ATM 형태의 포토부스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기업뿐 아니다. 이제는 아이돌도 팝업스토어를 연다. 신인 걸그룹 ‘뉴진스’는 지난 8월 데뷔 기념 팝업스토어를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운영했다. 뉴진스 멤버별 솔로 버전 음원과 미공개 영상을 공개했는데, 20일 동안 2만명에 달하는 팬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성수동에 자리 잡은 피치스 도원에는 남자 아이돌 그룹 ‘NCT 127’의 팝업스토어가 들어선 적이 있다.
하다하다 ‘지자체’까지 팝업을 운영한다. 충북 괴산군은 지역 홍보를 위해 서울 이태원에 이어 종로구 서촌에서 지난 9월 팝업스토어 ‘괴산상회’를 선보였다. 괴산의 관광지를 홍보하고, 농특산물과 지역 활동가들이 생산한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방식이다.
▶팝업스토어 전문 기업도 등장
▷기획·디자인·마케팅…공간 중개도
팝업스토어 수요가 급격히 커지면서 팝업을 위한 ‘공간 중개 플랫폼’, 또 팝업 기획과 컨설팅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프로젝트렌트’는 팝업스토어 기획 전문 기업이다. 강남에 이은 새로운 ‘팝업 성지’로 부상한 서울 성수동을 중심으로 8개 지점을 갖고 있다. 프로젝트렌트 매장은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다. 해당 공간을 팝업스토어를 원하는 브랜드에 단기 임대해주는 방식이다.
단순히 공간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팝업스토어 기획과 인테리어, 콘텐츠 제작, 마케팅까지 팝업스토어를 열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도맡는다. 예컨대 롯데제과와 협업으로 진행했던 팝업스토어 ‘가나초콜릿하우스’의 경우, 팝업스토어 내·외관 디자인과 공사는 물론 초콜릿을 활용한 음료·디저트 메뉴 개발과 원데이 쿠킹 클래스 강사 섭외까지 프로젝트렌트가 총괄했다. 8개 지점별로 면적이나 카페형·매장형 등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브랜드는 원하는 팝업스토어의 방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그간 가나초콜릿하우스를 비롯해 ‘성수당’ ‘평양슈퍼마케트’ 등 톡톡 튀는 팝업스토어를 여럿 탄생시켰다.
팝업스토어를 할 만한 유휴 공간과 공실을 발굴해 브랜드와 중개해주는 기업도 눈길을 끈다. ‘스위트스팟’은 팝업스토어를 할 수 있는 대형 상업시설이나 오피스 건물 내 자투리 공간, 주요 상권 건물의 공실 등을 찾아 팝업스토어를 원하는 기업과 이어주는 플랫폼 사업을 한다. 올해 1~9월 동안 스위트스팟을 통해 개최된 팝업스토어 수만 1400개에 달한다.
‘가치공간’도 스위트스팟과 비슷한 팝업스토어 중개 서비스를 한다. 가치공간의 ‘매물’은 주로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의 매장이다. 신세계, 현대, 롯데 등 주요 백화점의 공실을 중개한다. 가치공간을 통해 개최된 누적 팝업스토어의 수는 3100여개에 달한다.
▶팝업스토어, 왜 난리일까
▷브랜드 경험 전달, 오프라인 갈증 해소
최근, 유독 너 나 할 것 없이 팝업 마케팅에 뛰어드는 무엇일까.
신규 브랜드와 기존 브랜드 사이 요구가 조금 다르다.
신생 브랜드는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고객 인지도를 높이기에 좋다. 핵심 상권 유동인구를 대상으로 브랜드와 제품을 테스트해보기 제격이다. 값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정식 매장을 운영하는 데는 리스크가 있지만, 한 달 미만 단기 임대료는 작은 기업도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 최근 성수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던 한 브랜드 관계자는 “팝업은 정규 매장에 비해 운영 시기와 장소 등을 유연하게 정할 수 있고, 보증금·임차료·인테리어비 등이 한결 저렴하다. 특히 성수동이나 강남 등 유동인구가 많지만 임대료도 비싼 지역에서 더욱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기존 브랜드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팝업스토어를 활용한다. 팝업스토어 공간 디자인 기업인 ‘스튜디오빈드’ 김은영 디자이너는 “팝업스토어는 제품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목적보다는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기존 브랜드나 기업 이미지와 상반되는 콘셉트로 꾸민 ‘반전 매력’의 팝업스토어가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데도 유용하다. 특히 최근 부족한 ‘오프라인 경험’을 줄 수 있는 팝업스토어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팝업스토어에 노출되는 소비자 수가 온라인이나 TV 광고보다 적을지언정, 오감으로 브랜드를 경험하는 만큼 브랜드가 각인되는 정도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는 “브랜드 경험 극대화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못 따라가고, 판매의 편리함은 오프라인이 온라인을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팝업스토어를 통한 오프라인에서의 좋은 브랜드 경험은 장기적으로 온라인에서의 판매 확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온라인 마케팅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점도 팝업 수요를 높이는 요인이다. 기업 오프라인 마케팅 수단이 제한적인데, 팝업스토어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스위트스팟 관계자는 “온라인에는 제품과 서비스가 넘쳐난다. 이제 온라인만으로는 원하는 고객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 오프라인 경험을 원하는 고객에게 팝업스토어는 훌륭한 체험 공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엔데믹을 맞아 커진 ‘리테일테인먼트(유통과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 트렌드가 팝업스토어 선호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코로나19로 억눌려온 오프라인에 대한 갈증으로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재미’에 대한 욕구가 훨씬 커지면서 팝업스토어에 소구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엔데믹 이후 오프라인에서의 엔터테인먼트, 즉 재미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높아졌다. 똑같은 상권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한 달, 두 달마다 새로운 팝업스토어가 생기는 것 자체가 재미 요소로 다가온다”면서 “팝업스토어 콘텐츠도 다양해지면서 재미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소비자를 몰입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
팝업 시장 과잉…‘묻지마 팝업’은 오히려 독
Q 팝업스토어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A 브랜드 이해도를 바탕으로 경험을 복합적으로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가나초콜릿은 이미 가장 대중적인 초콜릿 브랜드기 때문에 인지도를 더 넓히는 방향은 비효율적이라고 봤고 ‘초콜릿’ 자체에 집중했다. 한국인이 1년에 초콜릿을 세 번 산다고 하는데, 이보다 더 자주 생각나게 하고 싶었다. 초콜릿을 활용한 음료나 디저트, 파인다이닝 같은 메뉴부터, 유명 도넛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을 개발해 판매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Q 팝업스토어를 기획할 때 주의할 점은.
A 굿즈 몇 개 두고 ‘시늉’만 해선 안 된다. 실제 고객 피드백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굿즈만 몇 개 두는 팝업스토어인 줄 알았는데, 팝업스토어에 진심인 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나쁜 팝업스토어’를 바로 인지한다. 이는 향후 다른 팝업스토어를 인식할 때도 영향을 끼친다.
Q 최근 팝업스토어가 수없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A 지금 다소 과잉 상태다. 팝업스토어의 목적이나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여는 경우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팝업스토어는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프로젝트렌트가 이익 극대화가 아닌 체험 극대화를 지향하는 이유기도 하다.
팝업스토어를 여는 공간과 기획하는 기업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방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약 40%가 ‘프로젝트렌트를 믿고 방문했다’고 답했다. 팝업 기획 공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브랜드와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