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 작가" 이기호가 쓴 지방 청년들 이야기

김남중 2022. 9. 29. 18: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다가 맨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고 처음부터 다시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나는 지방에서 태어났고, 지방에서 성장했으며, 지금도 지방에서 살고 있다. 그건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내 감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나는 그거 하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청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방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지방 청년들은 작가 이기호(50)의 과거 모습이자 현재의 이웃, 그리고 제자들이기도 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과 길] 눈감지 마라
이기호 지음
마음산책, 320쪽, 1만5000원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다가 맨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고 처음부터 다시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나는 지방에서 태어났고, 지방에서 성장했으며, 지금도 지방에서 살고 있다. 그건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내 감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나는 그거 하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지방에서 글을 쓰고 활동하는 ‘지방작가’들은 많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자기 문학의 정체성을 지방이라고 선언한 작가는 드물다. 그러자 소설이 새로 보였다. 청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방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지방 청년들은 작가 이기호(50)의 과거 모습이자 현재의 이웃, 그리고 제자들이기도 하다. 강원도 원주 출신인 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기호의 이 짧은 소설 연작은 가벼운 농담처럼 보이지만 실은 묵직한 리얼리즘이었던 것이다.

소설을 끌고 가는 두 청년 박정용과 전진만은 지방 청년들이다.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두 사람은 원룸을 월세로 얻어 함께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나간다. 작가는 두 청년의 생활을 가벼운 필치로, 때론 코믹하게 그려나간다.

다니던 대학은 학생들은 보기 어렵고 멧돼지가 출몰하는 곳이었다. “무슨 학교에 학생은 없고, 멧돼지 가족만 있냐….”

그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채무자가 되었다. 학자금 대출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무슨 경마장을 다닌 것도 아니고….”

번듯한 취직은 꿈도 못 꾸고, 아르바이트 노동은 그 어감과 달리 고되다. 최저임금조차 다 안 주려고 하고, 간신히 지키고 있는 자존심이 짓밟히기도 한다. 도움 받을 가족은 없고 도움을 줘야 할 가족들만 있다.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일자리도 없고, 자본도 없고, 사람도 없다. “진로니 꿈이니 그런 것도 다 돈 걱정이 없어야 생각할 수 있죠”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형…. 자꾸 술하고 얘기하는 거 같아요”, 이런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왔다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다른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기호는 두 청년들을 따라가며 에피소드들을 수집한다. 그렇게 스케치하듯 써낸 마흔아홉 개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으니 이 시대 청년들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눈감지 마라’ 속 청년들은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떠들썩하게 논의해온 ‘청년 문제’의 그 청년들과는 다르다. MZ세대론이나 공정 담론, 영끌족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다. ‘청년’이라는 말이 대변하지 못하는 지방 청년들이 있다. 이기호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