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법정통화 1년 엘살바도르의 탄식 소리

2022. 9. 2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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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엘살바도르, 가상화폐 법정통화 채택 부작용 커져
'저가 매수 물타기' 우려..검증 안 된 정책 실험 위험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인 2021년 9월, 엘살바도르는 가상화폐를 법정통화로 채택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미 2001년 자국 화폐를 포기할 정도로 무절제한 통화 정책, 이로 인한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전철이 있어 ‘검증되지 않은’ 정책 실험 선언이 놀랍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1인당 국내총생산(GDP) 4000달러 안팎의 빈곤 국가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큰 비용이 발생해 안타까운 상황이다.

엘살바도르가 가상화폐를 법정통화로 채택하던 지난해 9월 초, 미화 5만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올 9월 2만달러까지 폭락했다. 법정화폐로 사용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사들였다면 그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뜻이다. 아무리 국가 지도자가 가상화폐에 호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가치가 폭락하는 자산을 국민이 적극 사용하고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엘살바도르 정부 주장과 달리 비트코인은 실질적인 거래대금 지급이나 가치 보존 같은 화폐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했다.

엘살바도르는 경제성장률 같은 지표도 악화돼 경제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가상화폐의 법정화폐 채택, 비트코인 기반 채권 도입 등의 정책이 추진된 것은 사실상 재정 관리가 건전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뜻이기에 위험한 상황이다. 경상수지 악화도 심각해 달러 외환 확보도 당분간 쉽지 않다.

문제가 커지자 국제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은 엘살바도르 신용등급을 기존 CCC에서 두 등급 낮은 CC로 강등한다고 발표했다. CCC나 그보다 한 단계 낮은 CCC-도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CC는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정도를 나타낸다. 즉,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상당해 사실상 국가 부도가 발생했거나 매우 가까운 상태라는 뜻이다.

비트코인 가격 하락, 경제적 성과 부진에도 나입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재정을 사용해 비트코인 매입을 지속, 흔히 말하는 ‘저가 매수 물타기’를 주장했다. 향후 가격 상승을 대비해 매수를 늘려, 단위 매수 가격을 낮추면서 손해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투자 방식이다. ‘저가 매수 물타기’는 수익이 날 때까지 버틴다는 뜻으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시행하려면 투자자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가상화폐가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구사해서는 곤란한 전략이다. 추후 가격이 오르더라도 수익이 나지 않는 사이에 다른 자산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의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위험도가 더욱 높다. 무엇보다 한 국가를 이끄는 대통령이 이런 방식으로 정책을 펼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이론과 실증 분석으로 검증되지 않은 경제 정책을 국가 지도자의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실험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위험한 일이다. 엘살바도르의 비극이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며 국민 재산을 관리할 때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7호 (2022.09.28~2022.10.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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