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배우 박해수의 무대

2022. 9. 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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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세계를 누빈 배우 박해수는 멈추지 않는다. 끝장을 볼 때까지.

Q : 오랜만이죠?

A : 그러게요. 작년 11월쯤 만났죠?

Q : 당시 해수 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오징어 게임〉의 첫 해외 일정을 위해 공항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A : 신기하네요. 〈오징어 게임〉 여정의 시작점에 만났다가 마무리인 74회 에미상을 앞두고 다시 만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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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후 〈오징어 게임〉은 각종 시상식을 휩쓸고, K-콘텐츠 역사상 전례없는 인기를 누린 시리즈가 됐습니다. 그 주역으로서 어떤 소회를 느끼나요? (인터뷰 직후 열린 제74회 에미상에서 〈오징어 게임〉은 TV 드라마 감독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했다.)

A : 〈오징어 게임〉을 함께한 동료들과 1년간 세계 곳곳을 누빈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한국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게 뿌듯합니다.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라야죠.

Q : 여정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서 유독 마음에 남은 순간이 있다면요?

A : 아무래도 초반의 해외 일정들이 아닌가 해요.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처럼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에 참석했다는 게 떨리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알아보는 해외 팬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어디서나 환영받은 기분.

Q : 〈오징어 게임〉 공개 10분 전 세상에 나온 ‘복덩이’는 잘 크고 있나요?

A : 건강하게 쑥쑥 자라고 있지요. 곧 첫돌이네요. 아장아장 걷다 넘어지기도 하는데, 곧잘 일어서는 기특한 아이예요. 아이가 크는 걸 보며 시간 참 빠르구나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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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작년 인터뷰에서 SNS 계정을 만든 지 일주일 만에 팔로어 200만을 돌파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기억나는데, 지금은 그 숫자가 시시해 보일 만큼 대단한 기록을 만든 배우가 됐어요.

A : 참 신기한 일이죠. 예나 지금이나 저는 연극 무대에도 오르는 배우라 생각하거든요. 관객이 한 명뿐이라도 공연을 하고, 관객 수에 연연하지 않고 열연하던 사람인데, 별안간 이렇게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됐어요. 모든 배우가 그렇듯 저 또한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을 꿈꿨고 인기만 좇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엄청난 관심이 더욱 감사해요. 〈오징어 게임〉이 활로를 열었으니, 다음 K-콘텐츠에 힘이 되면 좋겠어요.

Q : 여전히 연극배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반갑게 들립니다. 2007년부터 13년간 17편의 연극 무대 경험이 해수 씨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해요.

A : 선배들에 비하면 제가 연극 무대에서 활동한 경력은 그리 길지 않은 편이에요.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연극이 제 연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해요. 여전히 제게 도전과 같고요. 여러모로 소중한 작업이죠. 무대에서는 발성, 호흡 등 기본기가 미숙하면 관객이 알아채기 쉽고, NG가 없어야 하니까 오로지 배우의 예술처럼 느낄 때도 있고요. 책임감도 막중하고, 무대를 떠올리면 배우로서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Q : 넷플릭스 공개 5일 만에 전 세계 순위 3위에 오른 〈수리남〉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까요. 한국 범죄 영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자 황정민, 하정우, 조우진 등 걸출한 배우가 함께 출연했죠.

A : 한마디로 쫄깃쫄깃한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대단한 배우들이 심도 깊은 연기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도미니카공화국이라는 생경하고 멋진 곳에서 촬영해 볼거리까지 갖췄어요. ‘마피아 게임’ 같은 긴장감과 유머러스한 매력도 있죠. 맵고, 짜고, 단맛이 섞인 마성의 떡볶이 같은 작품이라 소개하고 싶네요.

재킷 4백50만원, 셔츠 1백22만3천원 모두 구찌. 팬츠, 슈즈 모두 가격미정 폴로 랄프 로렌. 페도라 45만원 큐밀리너리. 시계 1천3백10만원 까르띠에.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윤종빈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A : 멋지면서도 이상한, 찌질하면서도 근사한 매력을 동시에 갖춘 팔색조 같은 인물을 연출하는 분이에요. 멋지게 엇박자를 타는 느낌. 단순히 선악으로 캐릭터를 구별하는 게 아니라, ‘강인구’(하정우)의 생존 본능을 재치로 표현하는 연출은 놀라울 정도예요. 제가 맡은 국정원 소속 ‘최창호’ 또한 단순히 애국심만 넘치는 게 아니라, 집착과 욕망이 공존하는 양면적인 매력의 캐릭터로 만드셨고요.

Q : ‘최창호’라는 인물을 구체화할 때, 가장 고민한 건 뭔가요?

A : ‘강인구’라는 민간인을 전장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당위성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단순한 애국심이 아니라, ‘최창호’의 집착도 있으리라 생각해 감독님과 오래 대화를 나눴죠. 전체적인 연기 호흡과 특정 장면에서는 말투에 변화를 주는 변주에도 몰두했어요. 사실 6부까지 통화 신이 많은데, 그 장면에 긴장감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죠.

Q : ‘최창호’를 위해 몸으로 부딪친 일화도 있나요? 영화 〈유령〉의 ‘다카하라 카이토’를 준비하며 백 퍼센트 일본어로 말해야 하는 모든 대사를 단 열흘 만에 외우고, 〈오징어 게임〉의 ‘조상우’를 위해 서울대학교 학생을 붙잡고 인터뷰했다고 들었어요.

A : 국정원에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건 불가능하겠더라고요.(웃음) 대신 작품과 고유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어요. 저는 1인 2역을 했거든요. 극 중 ‘최창호’가 변장해서 ‘구상만’이라는 인물이 되는데, 두 인물을 다르게 보여주고자 했어요. ‘구상만’은 가래침도 뱉고 건들대는 인물이라 ‘최창호’와 행동부터 말투 등 사소한 부분까지 다르게 표현하고자 했죠.

Q : 이렇게 정중한 해수 씨를 마주하고 있는 입장에서 ‘구상만’ 같은 인물은 상상이 안 가네요. 실제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는 건 배우 일의 매력이기도 하겠죠?

A : 점점 저도 취향이 생기고, 배우로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걸 구분하며 자기 복제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장기가 생기지만 반대로 색다른 캐릭터에 도전하는 건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도전이죠. 제게 배우란 재밌는 놀이이자, 어려운 직업인 것 같아요.

Q : 데뷔 16년 차인 지금, 새로 느끼는 연기의 재미가 있다면요?

A : 부쩍 더 재밌어졌어요. 전에는 고통스럽게 준비하기도 했거든요.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방식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맡은 캐릭터를 관찰하고 구체화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더라고요. 정면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옆에서도 보고, 뒤틀어도 보며 접근하는 거죠. 입체적으로.

셔츠 가격미정 드리스 반 노튼 by 분더샵 맨. 팬츠 가격미정 보테가 베네타. 팔찌 1천70만원 까르띠에. 샴페인 7만5천원 룩 벨레어 럭스.

Q : 예를 들면요?

A : 대본만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거리로 사람 구경을 나선다든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전시회를 가고, 훌쩍 바다를 보러 떠나는 일이요. 연기에 매몰돼 스트레스만 받는 것보다 숨통도 트고 생각을 전환하며 알게 되는 게 있으니까요.

Q : 배우 이희준, 작가 쿤과 함께 결성한 ‘드로잉 보이즈 클럽’도 생각 전환의 일종일까요? 〈키아프 서울 2022〉에 함께 그린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어요.

A : 비슷해요. 좋아하는 형들과 술 한잔 기울이다 나온 얘기가 현실이 됐어요. 시야를 넓힌달까?

Q : 시야를 넓힌다는 건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기도 한가요?

A : 그런 것 같아요. 더 나은 연기를 하기 위한 시도예요. 그림을 그리며 깨달은 게 있거든요. 저는 얼굴을 그릴 때 늘 직선으로 표현했는데, 이제는 약간 지그재그 무늬로 그리게 됐어요. 얼굴이 직선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눈이 꼭 동그라미일 필요도 없고요. 이렇게 새로운 활동을 통해 사람을, 사물을,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거죠. 더 잘하고 싶어 그림도 그리며 열심히 놀고 있달까요.(웃음)

Q : 다른 취미도 있나요?

A : 여행? 자연을 보며 전작의 인물을 털어내고, 새로 만나겠다고 다짐하기도 하고요.

Q : 즐겨 듣는 음악은요?

A : 영화 OST를 좋아해요. 가사가 없는 오리지널 스코어도 종종 듣고요.

Q : 결국 모든 게 연기와 연관되네요.

A :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결국 다 연기로 돌아오는 것 같네요.(웃음) 그래도 요즘은 대본만 보는 게 아니라 영감을 찾아 다른 활동도 하니까 좀 달라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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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는 건 큰 변화 아닌가요?

A : 얼마 전까지는 제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선배 배우들을 보며 느낀 게 많거든요. 조우진 선배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굉장히 가정적인 분인데, 쉬는 날이면 딸과 수영장에서 피부가 새까매지도록 온종일 놀아주더라고요. 신나게 웃으면서요. 선배는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영감도 얻고, 새로운 환경에서 대본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피부로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올해는 유독 배운 게 많아요.

Q : 축배를 들어도 될 만큼 한 해를 꽉 채워 보냈어요. 배우로서 지금과 같은 관심이 적당한 시기에 왔다고 보나요?

A : 적당한 때 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물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요. 하던 대로,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유영하는 게 제 방식이 아닐까 해요. 물살을 타지 않는 고래처럼요. 배우로서 아직 도전하는 단계라 생각해요. 책임감과 자신감이 교차하는 시기랄까? 더 잘하고 싶은 열의도 커졌고, 배우로서 무르익을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욕심도 생겨요. 우선 차기작 〈유령〉과 현재 촬영 중인 영화 〈대홍수〉를 잘 마무리해야죠.

Q : 어디로 가고 싶나요?

A : 고민 중이에요. 저는 연극으로 출발해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며 지금과 같은 인지도가 생겼잖아요. 주변의 감사한 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는 계기기도 해서 감사하지만, 엄청난 인기를 누리거나 커다란 집을 사는 게 배우의 종착지는 아니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연기와 작품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이 문화와 예술이 가진 힘을 전파하고 싶어요. 그래도 배우가 되겠다고 이 바다로 나왔으니 끝까지 가봐야죠.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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