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건강보험과 국회의원 면책특권

입력 2022. 9. 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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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성(고려대 명예교수·사회학)


건강보험과 국회의원 면책특권,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어떤 잣대를 갖다 놓아도 비교할 만한 준거를 찾기 쉽지 않다. 언뜻 보기에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건강보험과 면책특권이 한국인의 사회 인식을 진단하는 연결고리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스탯(Kstat)의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다양한 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평가조사 리포트(2022년 7월 21일)에서 흥미로운 두 대척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대표적인 것으로 건강보험 제도가 꼽혔고, 폐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대표적인 것으로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꼽혔다. 정책의 형성과 발전 및 소멸이라는 정책 과정론 측면에서 보면 두 개의 명운이 매우 분명하게 갈린다. 건강보험 제도는 계속 진화·발전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면책특권은 하루라도 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에 대한 원인은 특별한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명하다. 건강보험은 점점 더 그 중요성이 드러나고 있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매우 성공적으로 정착한 제도다. 국민적 신뢰가 상당히 높다. 박정희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는 초기 산업화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오랜 역사성을 지니며 진화 과정을 거쳐 오고 있다.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제도로서의 효율성이나 효능감이 높다. 만약 이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각자도생의 험한 상황에서 사회 운영이 어떻게 됐을지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조사에서 분야를 통틀어 압도적인 부정적 평가를 받은, 다시 말해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제도가 면책특권이다. 사실 면책특권은 국회의 독립과 자율을 보장하며 전체 국민의 대표로서 자유롭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신분을 보장한다는 역사성 있는 제도다. 불체포특권과 함께 국회의원이 갖는 대표적 권한이며 일반 국민이 갖지 못하는 특별한 권한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종종 방탄국회의 다른 이름으로 통용되기도 하고 그 남용과 오용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조사 리포트에서도 면책특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데, 이는 현실 정치권 중 특히 국회의원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지는 까닭은 한둘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몰락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일도 아니다. 한국 정치에 가장 많이 붙어 다니는 형용사가 4류라는 사실도 이제는 크게 놀랍지 않다. 국가 미래나 국민 행복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편협한 정쟁과 과도한 집권 욕망에만 집착하고 있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 과정을 사법에 의존하는 것이다. 정치적 주요 의제나 갈등 상황이 정치적 공론 절차를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법원 판단에 맡겨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다른 표현이다. 이것은 법원이 사실상의 입법권을 가지는 것이며, 정부의 주요 정책을 법관 판단에 맡기는 일이며, 정치 세력 간의 권력 경쟁 수단으로 사법부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 어느 하나 국회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여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잇단 쌍방 송사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현상이다. 한국 사회가 유난히 고소·고발이 많은 사회라고 하더라도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 부재의 다른 표현이다. 정치판에 정치가 사라진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최근의 주요 사회기관 역할 수행 평가조사(한국리서치, 2022년 9월 13일)에 따르면 정당은 단지 5%만이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 표현하면 국민 눈에 비친 정당의 존재 이유가 5%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의료기관에 대한 72%의 긍정적 역할 수행에 대한 평가와는 아주 큰 폭의 대조를 이룬다. 정치인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는 이런 불신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를 크게 한다. 정치인들은 막말 실력을 키우지 말고 세련된 언어력을 키워야 한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국민 안위와 행복에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제도의 존속은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보험과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쏟아지는 국민의 찬사와 비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면밀하게 보아야 할 때다.

박길성(고려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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