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떼기만 나올 줄 알았는데 맛있다" 중학생이 만든 '기후 급식'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사봉중학교 급식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식당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날 급식 메뉴는 삼색 잔치국수와 주먹밥, 새우튀김. 평범한 급식처럼 보이지만 이 학교 3학년 학생들이 만든 ‘기후급식’이다.
이 학교는 매주 금요일을 ‘지구를 지키는 날’로 지정하고 채식 식단으로 된 ‘기후급식’을 하고 있다. 돼지고기, 닭고기 등 붉은 육류 없이 달걀, 유제품은 가능한 ‘페스코 채식’으로 이뤄진 식단이다. 전교생 351명과 교사들은 물론 교장까지 한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는다. 채식이라지만 해물 짬뽕, 오징어 가스, 치즈떡볶이 등 다양한 메뉴가 제공된다. 처음에는 “풀떼기에 밥만 나올 줄 알았다”던 학생들도 막상 급식을 먹어보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맛있다”는 반응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기후급식을 반대하던 학생들도 이날을 기다리기까지 한다고 한다.
기후급식 아이디어는 지난 학기 3학년 국어 시간 수업에서 시작됐다.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수행평가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기후급식에 대한 찬반 토론이었다. 직접 자료를 찾아보면서 필요성을 느낀 아이들이 제안했고, 두 달간 토론회를 준비해 학교 유튜브로 전교생에 생중계했다.
“육류 소비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과 “성장기 학생들에겐 맛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갈려 몇몇 학생들의 감정이 격앙될 정도로 치열한 토론이었다고 한다. 토론을 마치고 학급별로 투표한 결과 총 15개 학급 중 13개 학급이 찬성해 주 1회 기후급식이 시작됐다. 토론에 참여했던 3학년 정수인양은 “3학급도 찬성을 안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13학급이 찬성해줘서 친구들이 기후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우울할 시간도 없다”…어른들 생각 바꾸는 10대들
“어른들이 저희의 노력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은 주변 기성세대의 생각도 바꿔나가고 있다. 학교 밖에서도 채식을 실천하는 정수인 양은 채식을 시작하고 부모님과 갈등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정양은 “토론 때 조사했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 내용을 가지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그다음 날 아버지가 비건 식당에 데려다주셔서 같이 밥을 먹었거든요. 먹으면서 엄청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정양은 “어른들도 잘 설명해 드리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환경 수업’ 만들고 기후위기 논문 읽는다
10대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최근 2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선 기후위기와 관련된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연구산악대’ 활동이 인기다. 기후‧환경과는 전혀 관련 없는 비전공자들부터 대학교수까지 모여 관심 있는 주제의 논문을 읽고 의견을 나눈다. 지난 6월부터 연구산악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명은(24)씨는 기후위기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최근 숙명여대 특수대학원 기후환경융합학과에 진학했다. 김씨는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네트워킹을 하니 용기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무관심과 외면 대신 행동을 선택한 이들은 또래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우리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신도고 2학년 양소빈양은 “공부하기도 바쁜데 시간을 쪼개서 미래를 위해 힘쓰는 친구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우리가 지구를 살리는 지구 영웅들”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천권필·편광현·장윤서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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