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사는 4인 가족인데요, '핫플'은 못 가겠습니다

이준수 2022. 9. 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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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가치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준수 기자]

언제부터인가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식당이나, 장소에 가족 단위로 가는 일이 줄었다. 내가 사는 강릉에는 유명 관광지가 많다. 경포와 초당동을 중심으로 맛집도 흔하고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선 포토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혼자서 혹은 아내와 둘이서 방문하면 즐겁고, 유쾌한 공간이다. 그러나 여덟 살, 여섯 살 두 딸을 데리고 함께 움직이기에는 부적절하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아이들
 
 인구 밀도가 높은 실내보다는 너른 공간, 숲과 산, 바다 같은 자연에 머물렀다.
ⓒ 이준수
  
아이가 제법 커서 말도 잘 듣고, 엄마 아빠가 일부러 한 명씩 전담 케어를 하며 의식적으로 예의를 차리는 축에 속하는 부류임에도 아이들은 따가운 눈총의 대상이 된다. 나는 올해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때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몹시 거슬려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커피를 쏟거나, 가게를 뛰어다니거나, 다른 사람과 부딪친 것이 아니라도 단지 아이니까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거부감을 표출하는 사람도 있었다. 눈치껏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하면 잘 받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칼로 자른 듯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돈 내고 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평온한 심리를 위해 여기에 왔는데 감히 나에게 '배려'를 요구하는 것인가! 하는 뉘앙스의 말도 들었다.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당사자에게는 무척 뼈아픈 말이었다. 어린이가 다른 어른보다 우선적으로 배려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므로 배려는 순전히 타인의 호의에 달려있었다.

어린이가 자주 돌아다니고 학원가가 형성된 동네에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반면 핫플레이스로 알려진 관광지, 미혼의 관광객이 주류인 협소한 장소, 사진 맛집으로 유명한 곳에서 어린이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줄을 서다가 살짝만 밖으로 나가도, 표지판이나 안내서에 적힌 글자를 읽으며 궁금한 걸 소리 내어 물어봐도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성인으로 단독 행동을 할 때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노골적인 적대감이었다. 날카로운 가시와 찌릿찌릿 전기 스파크가 튀는 듯한 경계에 나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렇다고 나에게 누군가의 이해나 환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므로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면서 우리 가족은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 브레이크 타임이 없는 식당을 찾게 되었다. 또 인구 밀도가 높은 실내보다는 너른 공간, 숲과 산, 바다 같은 자연에 머물렀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는 가족 단위의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조금씩은 '어린이 기피현상'를 겪기라도 한 걸까?

논란이 된 '애티켓' 광고
 
 애티켓 광고
ⓒ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유튜브 캡처
 
지난 5월 한 광고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작한 '애티켓' 광고인데,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식당, 공원, 직장 편으로 나눠 제작된 광고의 요지는 '아이는 성장 중이므로 너그럽게 봐달라, 괜찮다고 먼저 말해주세요'이다.

광고는 각종 커뮤니티에서 '부모가 먼저 사과하는 장면을 넣었어야 한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저출산과 관계없는 얘기다' 등으로 반감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육아휴직을 신청해 아이를 돌보는 나는 '애티켓' 광고가 정곡을 찌른 것만 같았다. 다소 뻔한 캠페인일 수도 있다. 아직 어른들의 도움과 이해가 필요한 어린이를 배려해줍시다, 라는 메시지. 그런데 그 배려와 인정이 저출산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접근이 신선하고 고마웠다. 

이론적으로 맞고, 안 맞고의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했던 것은 왜일까. 그건 마치 내가 현역으로 육군 병장 만기 제대를 했을 때 누군가가 "고생했다. 안 다치고 잘 돌아왔다", "장병들 덕분에 두 다리 뻗고 지낸다"와 같은 덕담을 건넸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식상한 멘트인 줄 아는데, 2년 간 첩첩산중 인제 가리산에서 지낸 세월이 다소 속상한 것도 맞는데, 이상하게도 누가 나의 노고를 알아봐 주면 고마웠다. 국방의 의무 기간이 헛되지 않았던 것 같아서 기운이 났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감정적으로 주눅 드는 날들이 많았다. 나름 민폐 끼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마치 죄지은 사람 마냥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작아지는 느낌을 받을 때면 힘이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올해는 직장에 나가지 않고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다 보니, 양육자로서의 자아가 더 커진 탓도 있을 것이다. 

존중과 배려가 일상이 된다면

오은영 박사는 지난 5월 MBC 100분 토론에 나와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한 존중과 인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양육을 하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굉장히 높은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약간 더 지원해준다고 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 십 수년간 한국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강원도 소속 부부교사인 나와 아내는 저출산의 여파를 교육 현장에서 여실히 절감하고 있다. 2009년 첫 발령을 받은 이래 강원도 농어촌 지역에서는 빠른 속도로 학교와 학급 수가 줄었다. 특히 나는 삼척시 탄광촌 벽지 학교에서 4년 간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인근 학교가 통폐합되는 등 해마다 학령인구가 주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출산율 0.8명인 시대에 교실에 들어찬 스무 명 가량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귀한 보물을 어렵사리 모아놓은 것만 같다. 나도 교사이자, 두 명의 자녀를 키우는 초등학생 학부모이므로 교실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귀하게 나고 자랐는지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학부모가 상담하러 교실에 들르면 우선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리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바쁘고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이를 키우는 사람끼리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대화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진심이기도 해서 나보다 육아 경력이 많은 분께는 도리어 내가 비법이나 요령을 알려달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서로 존중과 배려를 담아 상담을 마치고 나면 학교에서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물씬 생겨난다.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 육아를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다. 

립서비스나 인사 치레라도 좋다. 마치 문자 메시지 끝에 예의상 웃는 이모티콘을 붙이듯 형식적으로나마 실수한 어린이에게 "괜찮다", "다친 데는 없니?"라고 물어봐주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틀에 박힌 형식에서 용기를 얻고, 쉽게 감사해지기도 하니까. 그리고 당연한 말씀이지만 육아 책임자인 부모로서도 꾸준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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