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은행나무와 함께 살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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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침 산책길 중간중간 은행나무 아래로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그(녀)와 함께 걷던 은행나무길도 조금씩 줄어드니, 어쩌면 우리는 은행나무에 대한 호감을 하나씩 잊고 불쾌감만 남긴 건 아닌지.
3억5000만년 전부터 지구에 살던 은행나무는 인류가 멸종하면 함께 멸종할 나무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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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침 산책길 중간중간 은행나무 아래로 은행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몇 개는 이미 보행자에게 밟혀 짓이겨진 상태였다. 올해 첫 은행 낙하. 공원주의자는 필연적으로 공원 산책자라 연휴 내내 동네를 걸었기에 명확히 첫날이었다. 첫 벼베기는 뉴스거리지만 첫 은행 낙하는 걱정거리다. 앞으로 한 달여 서울 시내 은행나무 가로수 10만6000그루 중 암나무 2만8349그루를 향한 민원이 쇄도할 테다. 이유는 의도치 않게 은행을 밟을 때 드는 뭉클한 불쾌감과 덮쳐드는 구리구리 고약한 냄새. 거기다 신발에 찰싹 달라붙는 찐득함까지.
주요 지점별 집중 청소는 기본이고, 진동수확기와 고소차를 활용해 미리 채취하거나 그물망을 설치해야 한다. 종자를 못 맺게 하는 약제도 시험하고, 일부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는 무리한 일도 하지만 자연의 힘을 공공의 힘으로 완벽히 막긴 어렵다. 주민이나 상인분이 살살 쓸어 모아주셔도 감읍하고, 떨어진 은행을 가져가신다면 큰절도 할 판이다.
하나 이젠 은행 줍는 어르신도 없다. 입사 초 ‘은행 털기 행사’에 구름같이 모인 인파가 신기했는데, 은행을 물에 담가 말랑말랑한 껍질을 벗기는 그 힘들고 냄새나고 피부염을 무릅쓴 일을 감내할 사람도 사라졌다. 어머니 재촉으로 아버지를 모시러 간 선술집 탁자에 올려졌던 새초롬한 안줏거리도 이젠 귀하다. 이메일과 문자 덕분에 손편지에 넣어 보내던 노오란 은행잎도 잊혔고, 그걸 갈피에 끼워 넣을 책은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 그(녀)와 함께 걷던 은행나무길도 조금씩 줄어드니, 어쩌면 우리는 은행나무에 대한 호감을 하나씩 잊고 불쾌감만 남긴 건 아닌지.
3억5000만년 전부터 지구에 살던 은행나무는 인류가 멸종하면 함께 멸종할 나무로 꼽힌다. 자연에 살지 못하고 오로지 인간 근처에 살기 때문이다. 두 번의 대멸종으로 씨앗을 옮겨주던 매개 동물도 모두 사라져 은행나무에겐 사람이 유일한 친구다. 오래 함께 살 궁리가 필요한 때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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