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태권도 사범..美 '한국어 마을' 촌장, 스탠퍼드대 교수 [속엣팅]

추인영 2022. 9. 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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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다푸나 주르(49) 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동아시아연구 센터장)는 2014년부터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촌장을 맡고 있다. 사진 도 팜 제공.


미국 미네소타주엔 ‘코리안 랭귀지 빌리지’가 있다. 모든 간판과 안내문은 한국어로 되어 있고,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어만 말해야 하는 ‘숲속의 호수’라는 이름의 한국어 마을이다. 비영리 단체 ‘콘코디아 랭귀지 빌리지’가 운영하는 14개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로,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2~4주간 몰입형 외국어 교육을 받는다. 3년 전 한국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핸드백 제조업체인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 기부로 교육 공간을 지었지만, 기숙사는 자금 부족으로 짓지 못하고 있다.


3000명 거쳐간 숲속 한국어 마을


“한국어 마을에 기숙사가 없어요. 그래서 러시아어 마을의 기숙사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죠. 한국인과 한국 기업이 관심 좀 가져주면 좋겠어요.”

다푸나 주르(49·한국명 주다희) 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스탠퍼드대 동아시아연구센터장)는 2014년부터 이곳 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 한국어로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친한파를 배출하는 프로그램인데, 한국 정부나 기업이나 이에 대한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면서다.

다프나 주르 교수가 지난해 '숲속의 호수'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이제 한국어 마을 문을 연다″는 뜻으로 커다란 열쇠를 들고 있다. 다프나 주르 교수

‘숲속의 호수’는 1999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00여명이 거쳐 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빈 자리는 많았지만, 이제는 “숲속의 호수 등록이 BTS 콘서트 티켓 사기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인들이 아니다. 주로 부모님을 졸라서 등록한다. 특히 “요즘엔 유튜브 등으로 한국어를 독학해서 오는 학생들이 많아 커리큘럼 수준을 높여야 할 상황”이라고 주르 교수는 말했다.

주르 교수의 전공은 한국 아동문학이다.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박사 과정 시절 자신이 어릴 때 읽던 책을 밤마다 두 살이던 첫째에게 읽어주다가 문득 “한국 아이들을 무슨 책을 읽으며 자랐을까”, “일제 시대엔 뭘 읽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일본강점기 어린이 잡지 자료를 찾다가 수소문 끝에 원종천 인하대 교수에게 연락했고, 원 교수는 “그런 자료는 한국에서도 찾기 어렵다”면서 일면식도 없는 외국의 학생에게 평생 모은 자료를 흔쾌히 보내줬다.


‘태권소녀’에서 韓 아동문학 박사로


그때 받은 자료가 최초의 아동 잡지 ‘어린이’와 ‘새소년’, ‘신소년’ 등이었다. 방정환, 정순철 등이 소년운동을 위해 설립한 색동회의 존재도 알게 됐다. 연구 내용을 모아 2017년 영어로 출간한 책이 지난 2월 번역본 『근대 한국 아동문학』 출간으로 이어졌다. 2019년 한국의 세계아동청소년문학연구회가 연락해와 이뤄진 일이다. 주르 교수는 “한국 사람이 내 책을 읽을 거란 생각을 못 했다”면서 “그분들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숲속의 호수'에서 장남과 함께 한 다프나 주르 교수. 주르 교수는 ″아들의 한국어 실력은 아직은 엄마보다 못하다″면서 ″대학도 안 가고 한국에서 태권도 배운다고 할 때 엄마 속을 많이 썩였는데, 요즘 아들한테 그대로 당하고 있다″며 웃었다. 다프나 주르 교수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태권도를 통해서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아버지 고향인 이스라엘로 이민 갔던 그는 중학교 때 무술영화 ‘가라데 키드’를 보고 동네 문화센터의 한 무술 수업에 등록했다. 그게 바로 태권도였다. 어머니 고향인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입대를 위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가 태권도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다. 마침 한국에서 수련 후 예루살렘에 태권도장을 차린 현지인을 만났다. 제대 후 “검은 띠를 따겠다”며 93년 12월 무작정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서 10개월간 어학연수를 마친 후 “대학 안 가냐는 엄마의 성화로” 히브리 대학에서 영문학과 동양학을 전공했다. 한국어 전공은 없어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꾸 한국이 생각났다. 97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1년 6개월간 어학연수 최고급 과정까지 마치고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문학을 공부했다. 박사 과정 중이던 2002년 지도교수를 따라 다시 방문한 한국에서 한국인 태권도 사범을 만나 결혼까지 했다.

그와 ‘숲속의 호수’를 연결해준 것도 태권도였다. 그는 2000년 태권도 사범으로 ‘숲속의 호수’에 합류한 뒤 “연구 활동도, 세계여행도 다 포기하고 숲속에서 모기에 뜯기면서” 거의 매년 여름방학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저도 여러분의 도움 덕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거든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에필로그] 94년 주르 교수의 연세대 어학당 짝꿍은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차남이었습니다. 이듬해 안식년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갔다가 다시 만난 그 친구를 통해 하태임 작가를 소개받았습니다. 동갑내기인 둘은 금방 친해져 아직까지 교류 중인데요. 주르 교수는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한 하 작가 부부를 초대해 한국 음식을 차려주고 스탠퍼드 캠퍼스 구경도 시켜줬다고 합니다. 하 작가는 “나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자랑스러운 친구”라고 했습니다.

■ 방탄 RM도 달려간 전시…정작 작가는 "오글거리고 후회" 왜

‘색띠’(컬러밴드)로 인기를 끄는 하태임(49) 작가는 “남자가 아니어서”, “오빠와 동생보다 손재주가 없어서” 위축됐던 “컴플렉스 덩어리였다”고 말한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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