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OTT도 음악처럼 시청할 때마다 감독·작가에 보상해야"
OTT 업계 반발 "투자 손실 위험은 당연
손해 봐도 저작권료까지 지급하라니"
[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되는 것처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IPTV, 방송사들이 영화, 드라마를 틀 때마다 감독과 작가에게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다. 박찬욱·황동혁·윤제균 감독 등 국내 유명 감독들은 "감독으로서 저작권자로서의 위치를 돌려받고 싶다"며 공개 지지에 나섰지만, 플랫폼사들과 방송업계는 "이미 콘텐츠 저작재산권을 지닌 제작사에 돈을 냈는데 재생할 때마다 또다시 저작료를 지불하라는 것은 이중 지급"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체위, 연출자·각본가에 수익 배분 추진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문체위 소속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8월과 9월 각각 저작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정주 의원안에는 37인, 성일종 의원안에는 10인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개정안은 영상물 저작자인 총연출자와 각본을 쓴 각본가가 공중에 최종 제공하는 자인 IPTV, 케이블TV, 일반 방송사, 극장, OTT 업계 등에 수익에 비례해 보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창작자가 저작권을 양도하거나 상속해 저작재산권이 제작사 등에 양도된 경우에도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매출에 비례하기 때문에 방영 후 손실이 나도 지불해야 한다. 의원실에 따르면 유럽과 프랑스·칠레·콜롬비아 등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저작자의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유럽은 '유럽연합 디지털 단일 시장 저작권 지침'을 통해 구글,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언론간행물 등을 재사용해 획득한 수익에 대한 대가를 저작자에게 분배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정안에는 보상 범위·형태 및 보상금 결정 기준·지급방법 등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찬성 측 "유럽서 걷은 저작권료, 우리 법 미비해 못 받는다"
국내 저작권법 미비로 인해 해외에서 저작권료를 받을 수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유영주 의원은 "2020년 약 6억2500만유로(약 8261억원)가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에서 영상물 저작권료로 징수됐다"며 "우리나라는 관련 법이 없기 때문에 이 안에 있을 우리의 몫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징수된 영상물 저작권료 중 한국 저작자들의 지분율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에서 한국 연출자, 각본가를 위해 징수한 저작권료를 국내 저작자들에게 배분한 사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이 수치는 정부가 확인할 수 없다"며 "다만, 현재 법 개정과는 무관하게 베른협약 등에 따라 저작권 관련 내국민 대우 조항이 있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베른협약 제5조는 '저작자는 이 협약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에 관해 본국 이외 동맹국에서 각 법률이 현재 또는 장래에 자국민에게 부여하는 권리와 협약이 부여하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등도 지식재산권(IP) 일체 양도를 요구하는 거대 제작사들 앞에서 감독들의 지위가 낮은 만큼 충분한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특약 조항을 넣어야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스타 감독이 아닌 이상 협상력이 크게 낮다는 불만이 감독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윤제균 DGK 대표는 "DGK 회원이 500명이 넘는데 평균 연봉을 조사해보니 2000만원이 안 된다"며 "힘들고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우리가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론 도움을 받았으면 해서 저작권법 개정안 촉구에 감독조합이 앞장서게 됐다"고 밝혔다.
OTT 업계 "투자 리스크 지고, 손해 봐도 저작권료 지급하라니"
반면 OTT·유료방송·극장업계에서는 '감독을 위한 보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개정안의 파급력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자체 제작을 통해 저작권을 보유하는 음악업계와 달리 영상은 제작 과정에서 최소 수십명의 인력, 수십억원의 자본이 투입되고 이 과정에서 투자 리스크를 감내하는 제작사 등이 저작권을 확보한다"며 "적게는 수백만원부터 많게는 수억원을 내고 라이선스를 구매하는데 감독·작가들의 저작권료까지 별도로 챙기라는 것은 우리 업계에도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영화 산업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OTT업계 관계자는 "방송사가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구매협의 시 보상권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고려할 때 구매비용을 낮추고자 하게 되면 공급 협의가 어려워지고, 영상물 유통 활성화도 저해될 것"이라며 "지금도 영화보다 드라마 시리즈가 더 이득인데 독립영화 등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영화는 기피하는 경향이 짙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흥행 순위 30개 영화 중 한국 작품은 절반(16개) 수준이다. 이에 따라 대신 미국 할리우드 방식의 감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 지급 제도 등이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개정안에서 명시한 저작자에서 제외된 배우나 음악감독, 미술감독, 촬영감독 등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OTT업계 다른 관계자는 "영상저작물은 공동저작물로 각 참여자의 창작 기여도 산출이 불가능하다"며 "특정 역할에 대해서만 추가 보상을 인정한다면 제작에 참여한 다른 권리 주체들을 차별하게 되는 등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만일 모든 권리자가 보상청구권을 행사하길 원할 경우 영상물 유통 자체도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학계, 지재권 관련 법에 대한 이해 부족
학계에서는 '공정한 보상'이라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재권 관련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법인 만큼 입법을 서두르는 대신 학계와 업계가 모여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재권 전문가인 박성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화 등은 공동저작물이기 때문에 국내법이 참고로 하는 프랑스법에서도 저작자를 '연출자'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대신 '추정한다'는 표현을 쓴다"며 "또 이번 개정안은 영상물에만 공정한 보상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그보다는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저작물에도 적용될 수 있는 대원칙을 세우고 영상물 역시 이에 해당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함의를 지닌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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