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5위권 점령한 '리니지 라이크'.. 업계는 과연 탈 리니지 가능할까
"계속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어요. 시장에서 K-RPG 형태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반감은 커져가는데, 각종 개발비와 마케팅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또 아예 배제할 수도 없거든요."
최근 취재를 위해 만난 한 '리니지' 향 K-RPG 개발자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용자를 생각하고 시장 분위기를 보면 '탈 리니지'를 선택하고 싶지만, 높아진 개발비와 마케팅비 등 개발 환경을 감안하면 '리니지'류 RPG가 아닌 이상 BEP(손익분기점)를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개발자는 자사뿐만 아니라 신작 게임을 준비 중인 한국 게임사들 대부분 고민이 깊을 것이라며, 사내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과금 모델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고 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높아진 개발비, 게임사 영업익 크게 감소
지난 6월 30일, 베스파는 전 직원 105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지난해 임직원 연봉을 일괄 1200만 원 인상했던 베스파는 신규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고, 대부분의 인력을 권고사직한 후 지난 8월 1일에 있던 서울 회생 법원의 결정에 따라 현재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이 같은 사례 외에도 최근 발표되고 있는 각 게임사들의 2분기와 3분기 실적을 보면 높아진 마케팅비와 인건비로 대부분 영업익이 크게 감소하며 고전 중인 상황이다.
당장 넷마블은 지난 1분기에 적자 전환(119억 원) 했고, 2분기에는 347억 원 적자로 적자폭이 2배 이상 늘었다. 전년 대비 30% 높아진 인건비로 인한 결과다.
컴투스 또한 지난 2분기에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거뒀지만 영업익(38억 원)은 전년 대비 65.6% 뒷걸음질 쳤다. 인건비(385억 원)가 같은 기간 51% 증가하며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 주된 이유다.
또 소셜 카지노 스타트업 베이글 코드도 개발자 연봉을 최소 2300만 원 인상한 후 지난해 영업손실이 92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현상은 게임업계 채용 한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7일 서울경제가 국내 증권시장에 상장된 넷마블,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등 중견 게임사 10곳을 분석한 결과, 정규직 수가 1분기 1만 831명에서 2분기 1만 796명으로 35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게임업계 인원이 줄어든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다.
급등하고 있는 환율과 마케팅비로 '빨간불'
게임업계를 위협하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환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고로 치솟고 있는 환율은 국내 게임사들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오고 있다.
당장 글로벌 마케팅비가 1.5배 상승한 모양새다. 코로나 이후 마케팅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임사 입장에서는 환율과 비례하여 마케팅비가 상승하면서 더욱 가혹한 사업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이 부각되다 보니 해외 유명 IP(지식 재산) 가격도 대폭 상승했다. 단순 마케팅 비 상승 외에도 달러를 기준으로 결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IP 구입 가격은 2배에 육박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하던 게임사들도 비상 상황이다. 평소 달러로 계산하던 아마존 클라우드 등을 이용하던 업체는 단 기간에 국내 클라우드로 교체할 수도 없고 높아진 비용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콘솔 게임 개발사나 유통사들도 상황을 심각히 보긴 마찬가지다. 패키지를 만드는 경우 제작 비용 등이 전부 달러 결제로 시스템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1.5배 가까운 제작 비용에 역마진이 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 게임사들은 각국의 UA(User Acquisition / 유저 확보) 마케팅 비가 치솟고, 오프라인 마케팅 비도 환율과 함께 1.5배 상승하면서 운신의 폭은 더 적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라며 "일찌감치 글로벌 게임 시장에 진출해 달러로 결제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중소 게임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니지' 라이크 게임 나 홀로 승승장구.. 업계 해법은?
이렇게 게임사들의 한파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현재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은 여전히 '리니지 불패' 신화가 이어지고 있다.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TOP 5까지 '리니지'이거나 '리니지 라이크'(비슷한) 게임이 순위권을 채우고 있다. 카카오 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도 형태가 살짝 다른 리니지 게임이라고 불리고, 최근 출시해 매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히트 2'도 차별화를 강조하긴 했지만 본질을 살펴보면 '리니지'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력한 마케팅 물량으로 순위를 억지로 끌어올린 '탕탕 특공대'나 오랜기간 플랫폼을 가꿔온 '로블록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매출 10위권 내 게임들도 대부분 MMORPG(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에 확률형 아이템 뽑기를 장착한 게임들이다. 즉, K-RPG를 잘 만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K-RPG의 승승장구와 함께 이용자들의 모바일 게임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지난 6월 28일 아이지에이웍스가 운영하는 모바일인덱스의 '모바일 앱 게임 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국내 모바일 게임 전체 월간 사용자 수는 약 229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무려 10.6%나 줄어든 결과로, 시간이 갈수록 K-RPG를 포함해 모바일 게임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시장 모수가 줄어들고 게임 이용자들의 반발도 극에 달하면서 K-RPG를 바라보는 게임업계의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당장 돈 벌기엔 K-RPG가 좋지만 이용자 반발과 함께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한계가 있는 탓이다. 결국 게임성을 올리고 과금 저항도 줄이며 글로벌 진출도 용이한 프로젝트를 구성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업계인들의 하소연이다.
다행인 점은 게임사들이 아예 손 놓고 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엔씨(NC)는 최근 '포스트 리니지'를 선언한 신작 'TL'을 발표했고, 넥슨 또한 '카트라이더' 신작 등을 콘솔 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펄어비스는 메타버스를 꿈꾸는 '도깨비'를 준비 중이며, 최근 네오위즈는 'P의 거짓'으로 게임스컴에서 3관왕에 오르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윤장원 동명대 디지털공학부 교수는 "시장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게임사들이 '리니지' 류 게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울 것."이라고 운을 뗀 뒤 "그래도 지금 모바일과 PC가 통합되고 콘솔까지 합쳐질 움직임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게임성을 우선 갖추고 이후 과금력을 추가하는 식으로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 안 그러면 3년 뒤를 안심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중국에서 개발한 '원신'이라는 사례도 있고 크래프톤의 '배틀 그라운드' 같은 사례도 있다. 한국 게임사들이 해외 게임사들보다 창의적이고 기술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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