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나무 조각으로..재불작가 김기주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다

윤은별 2022. 9. 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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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엠나임에서 10월 30일까지 전시
갤러리엠나인 제공

네모 반듯한 정사각형 나무 조각이 캔버스 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모자이크 같기도 하고, 바둑판 같기도 하다. 잘 깎여 정렬된 모습이 얼핏 보면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이미지를 준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조각마다 모양새가 다르다. 빛이 어느 곳에 닿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도 달리 보인다. 청년 재불작가 김기주의 ‘Assortiment(조합)’ 연작이다.

김 작가가 갤러리엠나인에서 10월 한 달간 전시 중인 ‘조합’ 연작은 소나무를 소재로 했다. 같은 소나무를 반듯하게 잘라, 1800도의 열을 내는 토치를 사용해 불에 태웠다. 거뭇하게 불탄 조각은 다 같은 모양이 아니다. 조각의 원래 위치가 나무의 어느 부분이었느냐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나이테의 폭이나 경도도 각기 다르고, 뿌리에 가까웠는지 멀었는지에 따라서도 형질이 다르다.

김 작가는 불탄 나무 조각의 인위적 정렬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매경이코노미는 김 작가와 만나 ‘조합’을 비롯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물었다.

Q. ‘조합’ 연작에 대해 소개한다면.

A. 소나무를 재료로, 태웠다. 나무를 불에 태우면 나무의 물성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물성에 따라 많이 타거나, 검게 되거나, 색이 옅어지기도 한다. 그 위에 염색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같은 소나무 조각이더라도 나이테는 염색이 덜 되고, 무른 부분은 염색이 잘된다. 이를 통해 자연의 물성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었다. 자연의 모습 그 자체를 그리거나 모방하는 게 아니라, 물성에 대해 연구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묻고 싶었다.

Q. 모자이크 같은 모습이 인상적인데.

A. 수직선과 수평선이 작품에서 중요하다. 직선은 자연에서 찾기 힘든 선이다. 인간의 개입, 인위성의 상징이다. 나무 조각을 붙이기 전에 가로선과 세로선을 긋고 그 안의 공간에 조각을 붙였다. 인간이 만든 틀 안에 자연의 물성을 두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그렇게 인위적인 모습으로 붙였지만, 빛의 반사 등에 따라 비춰지는 나무 하나하나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인간의 개입에도 자연의 물성은 온전히 살아 있다.

김기주 작가/ 1983년생/ 파리8대학 학석사/ 2020~2021년 재불청년작가협회 회장/ 2022년 파리 소나무회 회원/ 프랑스 파리에서 그룹전 13회, 개인전 1회

Q. 작업 기간은 어떻게 됐나.

A. ‘조합’을 처음 구상한 지는 10년이 넘은 것 같다. 한국과 프랑스를 넘나들며 작업을 해왔다.

Q.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A. 성장 배경 영향이 크다. 김해에서 자랐다. 주변이 다 논밭이었다. 숲이 많아서 거기서 놀며 자란 게 내 어린 시절이다. 그렇게 자연과 함께 자라다, 프랑스에 가보니 숲과 공원이 너무 많았다. 자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프랑스에서 접한 조경과 건축물에서 시작됐다. 프랑스식 조경은 인위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원에 있는 나무 하나도 네모반듯하게 잘라서 꾸며놓는다. 인간이 개입하는 자연의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Q. 앞선 작품도 자연과 관련이 있나.

A. 앞서 작업한 ‘회랑’과 ‘설치’ 연작 모두 자연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이 중 ‘설치’는 슈퍼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양파, 고구마, 감자 등을 심어서 자라는 생명력을 보는 작품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식물이라기보다는 소비하는 대상으로만 여긴다. 이런 식물을 생명력의 대상으로 다시 조명하는 취지였다.

Q. 프랑스에선 어떤 계기로 작품 활동을 펼치게 됐나.

A. 한국에서는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나왔다. 교직보다는 미술을 좀 더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 근대미술의 중심인 프랑스로 가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게 됐다.

Q. ‘조합’ 연작에서 이배 작가의 숯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A. 이배 작가의 작업실에서 3년 정도 일을 했었다. 작업실에서 허드렛일을 주로 했는데, 작가 정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작가의 지속적인 작품 활동에 대한 중요성이다. 작가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매일 작업실 나가서 작업해야 한다, 지속성이 있어야 작가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말씀이 와닿았다.

Q. ‘조합’의 관람 포인트는.

A. 이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 사람마다 자연과 인간 간의 관계나 자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개개인이 가진 자연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이 궁금하다.

Q. 앞으로의 작품 활동은.

A. ‘조합’ 연작에 집중하고 있다. 이 연작을 어떻게 확장성 있게 확대해나갈지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연작의 작품이 수직과 수평, 인위적인 모습이 강했다면, 인간의 개입 강도를 조절해서 좀 더 자연의 이미지가 강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볼까 한다.

[윤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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