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46억, 공단 직원 주머니로..'전결 시스템' 악용

정진용 2022. 9. 27.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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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관리 업무 담당 팀장, 46억 횡령
지급 정지 풀고 계좌 명의 변경까지
뒤늦게 특별감사 나선 복지부
강원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46억원을 횡령해 해외로 도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단 내부에서 발생한 금융 사고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직원은 본인이 결재하면 상사까지 자동 결재되는 ‘위임전결 시스템’을 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특별감사에 나섰다. 복지부는 25일 “건보공단에 대해 관련 부서 합동 감사반을 공단 현지에 파견해 내달 7일까지 2주간 특별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국회 국정감사, 그리고 27일 열리는 조규홍 복지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3달 걸쳐 1억→3억→42억…갈수록 커진 횡령 금액

건보공단 재정관리실 채권관리 업무 담당 직원 최모씨가 돈을 빼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부터다. 최씨는 건보공단 재정관리실 팀장(3급)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횡령한 돈은 채권압류 등으로 지급 보류됐던 요양 급여비용이다. 건보공단은 사무장병원 등 의료법 위반 혐의가 있는 요양기관을 적발하면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최씨는 채권자 계좌정보를 조작해 본인 계좌로 입금되도록 했다.

빼돌린 금액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피의자가 해당 업무를 맡기 시작한 건 지난해 1월1일이었다. 건보공단은 이 기간을 전수 조사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4월부터 7월까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총 1억원을 본인 계좌로 송금했다. 지난 16일에는 3억원을, 21일에는 42억원을 본인 계좌로 입금시켰다.

보건복지부.   쿠키뉴스 자료사진

지급 정지 풀고, 계좌 명의 변경까지…팀장 전결 사안이었던 채권 관리 업무

건보공단은 42억원이 빠져나간 다음날인 23일, 지급보류액 점검 과정에서 횡령을 확인했다. 최씨 업무담당 기간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여 다른 횡령 사실도 알게 됐다. 건보 공단은 최씨를 원주경찰서에 즉시 형사 고발하고 계좌를 동결 조치했다. 내부 회의를 거쳐 지난 23일 오후 해당 조사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최씨는 이미 지난 16일 가족과 해외여행을 간다며 휴가를 낸 상태였다. 현재 해외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26일 “최씨가 본인 명의의 여러 은행 계좌로 돈을 나눠 송금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일부는 이미 돈이 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휴가를 내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독일에 간다’고 얘기해서 독일에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며 “현재 어느 국가에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위임전결 시스템에 대해서는 “모든 공공기관에서는 이사장이 다 결재할 수 없기 때문에 업무 중요성에 따라서 부장전결, 팀장전결 등으로 나누는 위임전결 시스템을 시행한다”면서 “3급 이상부터 결재권이 있다. 채권관리 업무는 팀장전결 사안에 해당했다”고 설명했다.

“국민 재산 관리하는 건보공단, 어처구니 없는 사고”

46억원은 공단 내부에서 발생한 금융 범죄 중 가장 큰 규모의 액수다. 지난해에는 공단 직원이 공단이 발주하는 사업 입찰 관련으로 총 1억9000만원의 뇌물을 받아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2008~2011년 공단 직원 8명이 보험료 과오납 환급금, 경매배당금, 요양비 공금, 보험료 등을 횡령해 5억1000만원을 가로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먼저 중요한 것은 경찰이 최씨에 대해 적색수배를 요청하고 여권 무효화 조치도 신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색 수배는 현지 사법당국이 피의자 신병을 확보해 국내로 송환할 수 잇는 인터폴 최고 등급 수배다. 아울러 여권 무효화 조치를 하면 그가 머무는 국가에서 강제 추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건보공단의 안일한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승 연구위원은 “직원 한 명이 지급 정지를 풀고, 계좌 명의도 바꾸는 전결권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라며 “국민이 성실히 납부한 보험료, 즉 전국민 재산을 관리감독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은행, 오스템인플란트, 강동구청 등 최근 민관을 가리지 않고 횡령 사건이 잇따랐다. 건보공단도 ‘우리는 아니겠지’라는 무사안일주의가 있었던 것”이라며 “사람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자체 감사에서는 왜 이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는지, 시스템적으로 발생한 공간이 메워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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