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원화가치, '위기급'은 아니지만..하락속도 59國 중 6위
실질 원화가치가 2012년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금융위기 때만큼 저평가되진 않았지만 하락 속도가 문제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59개국 가운데 6번째로 통화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100.21이다. 2012년 9월 99.71 이후 약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실질실효환율은 물가와 교역 비중을 따져 각국 통화가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가지는지 나타내는 통계다. 2010년 수치를 100으로 기준 삼아 오르내림을 보여준다. 숫자가 커질수록 실질적 통화가치가 올라갔다는 의미다.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명목 환율로 보면, 26일 미국 달러당 원화가치는 1431.3원으로 마감하며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9년 3월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견줘 구매력까지 따진 실질실효환율로 본다면 2012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직 ‘위기급’은 아니다.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나 교역 비중 등을 고려한 실효환율의 절하폭은 크지 않았으며 긴 시계에서 봐도 평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원화) 상황은 주요국 통화와 약세 현상이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같이 가고 있다. 과거 양상과는 지금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하락 속도다. 올 8월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4.99% 내렸다. BIS가 실질실효환율을 집계하는 59개국 통화(국가 단위가 아닌 유로화 제외) 중 한국 원화의 하락 속도가 6번째로 빨랐다. 한국보다 통화가치가 더 많이 내린 나라는 일본(-15.8%), 터키(-13.26%), 헝가리(-9.8%), 프랑스(-5.42%), 핀란드(-5.02%) 등 단 5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이 돈줄 죄기, 금리 인상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후 한국 외환시장이 그만큼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외환ㆍ통화 당국은 국민연금과의 통화스와프, 조선업계 선물환 매도 지원 등 외환보유액ㆍ외국환평형기금을 총동원해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이날도 원화 값은 20원 넘게 추락(환율은 상승)하며 약세를 이어갔다.
달러 가뭄 현상을 더 심화시킬 요인만 쌓여있다. 한ㆍ미 금리 역전(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현상)이 내년까지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주력 수출 산업 경기가 꺾이고 원자재 비용 부담은 늘면서 무역수지 적자는 날로 확대되는 중이다. 1869조원(올 2분기 말 기준)으로 차오른 가계 빚도 원화 투매를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가계부채 폭탄이 터질 위험에 한은이 금리를 크게 올리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모두 단기간에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역수지 적자와 장기외채 비중 등을 고려하면 원ㆍ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원화가치 하락) 가능성이 우세하다”며 “원ㆍ달러 환율의 레벨은 지난 금융위기 수준이지만, 대내외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연내 분위기 반전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극심한 외환시장 불안이 실물경기 침체 ‘예고편’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현기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강화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대됨에 따라 금융시장의 불안정한 흐름이 연장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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