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효과는 확인했지만.. '서사' 사라진 어쩌다벤져스
[이준목 기자]
▲ JTBC <뭉쳐야 찬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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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스트들의 화려한 이름값이 불러온 화제성에 비하며 정작 재미는 예전만 못하다. 조기축구를 통한 스포츠 레전드들의 '성장과 도전'이라는 프로그램 고유의 서사가 그 빛을 잃으면서 생긴 그늘이다.
지난 25일 방송된 JTBC 축구예능 <뭉쳐야 찬다2>는 지난 주에 이은 '박지성 특집' 2탄으로 안정환이 이끄는 '어쩌다벤져스'와 '팀 박지성'의 스페셜 매치가 펼쳐졌다. 박지성은 최민호, 이기광, 윤두준, 서은광, 정세운, 남우현, 조나단, 윤성빈(스켈레톤) 등 연예인과 셀럽들로 구성된 멤버들의 감독이 되어 어쩌다벤져스에 도전장을 던졌다.
어쩌다벤져스는 부상으로 경기출전이 불가능한 김요한과 김동현 대신, 최고참 이형택에게 수문장을 맡겼다. 조원우-이장군-박제언-김태술이 포백을, 강칠구-허민호가 중원에서 투볼란치를 맡았고, 2선에는 박태환-이대훈-김준현이, 최전방 원톱은 임남규가 출전했다.
어쩌다벤져스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팀답게 조직력과 피지컬 면에서 경기 초반부터 팀 박지성을 압도했다. 전반 8분 만에 위험지역에서 최민호의 패스실수를 가로챈 이대훈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침투하여 날린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을 가르며 선취골을 뽑아냈다.
기세를 탄 어쩌다벤져스는 전반 17분 골키퍼 이형택의 골킥으로 시작된 공격이 김준현의 헤더를 거쳐 곧바로 임남규의 단독찬스로 이어지며 추가골까지 뽑아냈다. 임남규는 골을 성공시킨 후 박지성이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 득점 당시 선보였던 '풍차 세리머니'를 눈앞에서 재현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코치 조원희를 골키퍼로 투입하고 조나단을 공격으로 올리며 변화를 줬다. 하지만 후반에도 어쩌다벤져스의 공세는 계속되었고 후반 4분에 오른쪽 측면에서 이대훈의 패스를 이어받은 임남규가 2번째 골을 터뜨렸다. 임남규는 이번엔 박지성의 2010년 사이타마 한일전 '산책 세리머니'를 재현해보였다.
박지성은 후반 조원희를 수비로 올리고 본인이 골키퍼로 교체 투입했다. 무릎부상으로 필드 플레이어 소화는 어려운 상황에서 점수차도 벌어진 만큼 팬서비스 차원의 출전이었다. 조원희는 이대훈의 강력한 슈팅을 머리로 막는 상황에서 하마터면 현역 시절 화제가 된 자책골을 재현할 뻔 했던 아찔한 상황을 맞이하며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박지성은 팀이 밀리는 상황에서 처음 맡아보는 골키퍼 자리임에도 임남규과 김현우의 결정적인 슈팅을 잇달아 선방하는가 하면, 드리블로 모태범의 압박을 무력화시키는 등 녹슬지않은 축구센스를 선보여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팀박지성은 어쩌다벤져스의 파상공세 속에 진영을 넘어가기도 버거울 만큼 일방적으로 밀렸다. 후반 24분에는 교체투입된 김준호가 프로 선수를 연상시키는 호쾌한 중거리슈팅으로 박지성의 선방마저 뚫어내고 쐐기골을 터뜨렸다.
팀 박지성은 경기 종반인 후반 28분, 남우현의 만회골로 영패의 굴욕은 간신히 벗어났다. 경기는 4-1 어쩌다벤져스의 여유있는 완승으로 끝났다. 박지성은 "확실히 이제는 어느 정도 수준이 아니면 상대하기 어려운 팀이 됐다"며 어쩌다벤져스를 호평했다.
상대팀 감독들이 각각 선정하는 팀 MOM(최우수선수)에서, 안정환은 만회골을 넣은 팀 박지성의 남우현을, 박지성은 1골 1도움을 기록한 '박지성의 남자' 이대훈을 다시 선택했다.
즉석에서 박지성이 이날 경기에 사용한 골키퍼 장갑에 친필 사인을 더하여 선물하는 이벤트가 마련됐다. 골키퍼인 이형택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며 잔뜩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박지성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돌연 김준호를 지목하는 반전을 선택했다. 안정환은 "은퇴하고 재미있어졌네"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박지성은 "얼마나 노력해야 얼만큼의 결과가 나오는지는 모두가 스포츠 레전드 분들이라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축구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레전드가 아니구나하고 느끼게 됐다"고 밝히며 "저 역시 다른 분야에 도전할 때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해야겠구나하는 큰 감동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출연자들은 촬영을 마친 후 너나 할 것없이 번갈아가며 박지성에게 다가와 기념사진을 요청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지성은 이날 어쩌다벤져스의 명예 구단주로 위촉됐다.
'박지성 효과'에 힘입어 <뭉찬2>의 시청률은 최근 2주간 상승곡선을 그렸다. 18일 방송분이 6.1%로 그전 주에 비하여 무려 1%가 올랐고, 25일 방송된 2편은 다시 0.7% 상승한 6.8%(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박지성이 출연하기 전까지 <뭉찬>이 동시간대 1위는 지켰지만 한때 시청률이 4-5%대까지 하락하며 정체된 것을 감안하면 뚜렷한 반등이었다. 예능에 자주 출연하지는 않지만 나오기만 하면 흥행 보증수표로 꼽히는 박지성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하지만 이는 <뭉찬>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만들어낸 매력이라기보다는 게스트의 화제성에 기댄 단발성 효과에 가깝다. <뭉찬>은 지난 8월을 전후로 방영 1주년을 넘기며 국내와 해외의 여러 거물급 축구스타들을 연이어 초청하며 놀라운 섭외력을 과시했지만, 정작 프로그램 초기의 기획의도에서는 벗어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뭉찬2>의 시작은 축구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종목 스타들을 발굴'한다는 것, 그리고 '조기축구계의 전국 제패 도전'이었다. 방송 초반에는 이런 컨셉트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이장군(카바디), 박제언(노르딕 복합), 강칠구(스키점프), 김현우(레슬링), 김준현(스켈레톤), 허민호(트라이애슬론), 이지환(가라테) 등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숨겨진 매력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주목받으며 많은 화제를 자아냈다.
문제는 방송이 점점 길어지고 주전과 벤치의 실력차가 벌어지면서 비롯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전에서 밀려난 김동현, 이형택, 박태환, 김태술, 이지환 등은 사실상 방송분량에서도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며 존재감이 애매해졌다. 그나마 김동현과 이형택은 예능적인 장면에서라도 간간이 활약하고 있다면, 그마저도 없는 비주전 멤버들은 비중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부상 때문에 지난 3월에 잠정 하차했던 맏형 윤동식은 반년이 지나도록 아예 방송에서 거취에 대한 언급 자체도 없을 만큼, 지난 시즌1의 진종오-이봉주 때처럼 '토사구팽'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시작부터 전국제패라는 무리한 목표를 제시했던 초기의 방향성이 흐릿해지면서 어쩌다벤져스 고유의 성장 서사가 실종된 것도 아쉬움을 주고 있다. 시즌1의 경우, 자신의 분야에서는 레전드지만 축구라는 새로운 분야에서는 초보에 불과했던 '축알못'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조금씩 하나의 팀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재미와 감동을 안겨줬다. 시즌1의 어쩌다FC는 두 번의 조기축구 대회에 도전하며 4강과 준우승이라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어쩌다벤져스는 말로는 전국제패를 내세웠지만 정작 그 구체적인 구현 방식이나 동기부여에 대한 뚜렷한 당위성이 보이지 않는다. 시즌1의 어쩌다FC는 그나마 나이가 많은 은퇴 선수들이 주축이었다면, 어쩌다벤져스는 연령대가 크게 내려가면서 은퇴한 지 얼마안되거나 한 현역 선수들도 다수다. 일반인들로 구성된 대부분의 조기축구팀들에 비하여 어쩌다벤져스는 피지컬 자체에서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 반면, 정작 팀으로서의 매력이나 성장 과정은 전작만큼의 흡인력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 중 부상자까지 속출하며 본업이 따로있는 현역 선수들을 무리하게 위험에 몰아넣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존 선수들이 축구로 성장해가는 모습보다는, 이미 축구수준이 어느 정도 갖춰졌거나 선출 경력까지 있는 선수들을 외부에서 수혈해오는 패턴을 거듭하며 어쩌다벤져스만의 철학과 정체성도 흐릿해졌다.
또한 <뭉찬2>가 야심차게 내세웠던 '전국 도장깨기'는 몇 번이나 중단되었다가 방영 1년여가 되도록 고작 두 번 경기를 치르는 데 그쳤다. 제작진이 섭외한 상대팀들이 과연 도장깨기라고 할 정도로 그 지역의 대표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뭉찬>의 성공 이후 스포츠 예능의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는 SBS <골때리는 그녀들>이나 JTBC <최강야구>, 채널A <강철볼-피구전쟁> 같은 프로그램들은 승부에 있어서 만큼은 진지한 다큐 분위기와 구체적인 미션(슈퍼리그 우승, 7할대 승률, 피구 국가대표 도전) 등 실제 프로경기 같은 확실한 '진정성'과 '연속성 있는 서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에 비하여 <뭉찬>은 몇 달간 단발성 게스트에만 의존하며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안봤다가 다시 봐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만큼 방송 내용이나 팀분위기 모두 매너리즘에 빠진 기색이 역력하다. 굳이 '어쩌다벤져스'로 더 보여줄 이야기가 남아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슬슬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거나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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