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 콘서트에서 소름 끼친 이 장면
[송주연 기자]
나는 지난 여름 내내 마음앓이를 했다. 마음에 가득 찬 음울함이 밝고 활기찬 여름의 열기와 대비돼 소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번 여름이 지나는 사이, 나는 마음의 단단한 뿌리였던 외할머니를 잃었다. 아이는 내년에 기숙사에 입소해야 하는 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고, 늘 아기 같던 10살 된 반려견의 몸에선 여러 노화의 징후들이 발견됐다. 남편은 안정적인 지금의 직장을 떠나고 싶어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외할머니의 죽음과 강아지의 노화는 자연의 섭리였고, 아이와 남편의 새로운 시도는 응원해 줄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내겐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나의 원가족이 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아이의 진학과 남편의 이직은 지금 내가 꾸린 가족이 한 집에서 오순도순 지내던 시절이 끝나감을 뜻했다. 이는 익숙하고 안전했던 시간들과의 이별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여름이 끝나가던 지난 8월 28일 나는 가수 신승훈의 콘서트에 갔다. 30년 지기 팬으로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콘서트였지만,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가뜩이나 슬픈 노래가 많고 온갖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그의 노래들을 들으면 눈물을 펑펑 쏟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 가면 이 슬픔이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기도 했다.
나의 직감은 맞았다. 콘서트장에서 슬픈 노래들을 듣는 동안 눈물이 흐르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씁쓸했던 내 마음에서 달콤함이 느껴졌다. 콘서트가 끝났을 때 나는 생기를 되찾았다.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슬프지만은 않았다. 이 변화가 우리 가족을 어디로 데려가 줄지 약간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슬픈 노래가 내게 생기를 선사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을까?'
▲ 수전 케인 지음, 정미나 옮김, <비터스위트> (알에이치케이코리아, 2022) |
ⓒ 알에이치케이코리아 |
슬픔은 연민과 갈망으로 이어진다
신승훈은 콘서트를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으로 열었다. 위로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곡들이었다. 이어서 그는 히트곡들인 슬픈 노래들을 들려줬다.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가득 담은 노래들을 들으면서 자꾸만 눈물이 맺혔다.
엄밀히 말해 슬픈 음악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다. 사랑의 감정이 물 믿듯 북받쳐 오른다. 음악은 이 슬픔을 이해하는 세상 모든 영혼들과 깊은 유대감을 주고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해내고 그 뮤지션의 능력에 대한 경외감도 솟구치게 한다. (21-22쪽)
이어서 케인은 본격적으로 왜 슬픔의 순간에 사랑을 느끼는지를 분석해 들어간다. 케인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연구자료들을 취합해 내린 결론은, '슬픔은 연민을 샘솟게 하는 원천으로서, 친사회적 감정이자 유대감과 사랑의 매개체'(54쪽)라는 것이다. 슬픔을 느낄 때 우리는 자기 자신 혹은 타인을 연민하게 되고 이는 사랑과 유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슬픔은 상실을 경험할 때 주로 느끼는 감정인데 상실이란 잃어버린 무언가를 '갈망'하게 한다. 그런데 음악을 비롯한 예술작품들은 '갈망'하는 마음으로 탄생한다. 궁극적인 갈망의 대상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콘서트장과 같은 예술의 현장에서 슬픔이 집약적으로 표현될 때 숨겨 두었던 '갈망'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정점의 순간에 '완벽한 사랑'을 느낀다.
이게 바로 케인이 그리고 내가, 슬픈 노래를 들으며 사랑을 느꼈던 이유였다. 슬픔은 연민을 낳았고 옆자리 사람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친사회적 행동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함께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이 유대감은 상실의 두려움 속에 늘 갈망해오던 사랑의 감정들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권리를 박탈당한 슬픔
이처럼 슬픔은 씁쓸하지만 동시에 연민과 갈망, 친사회적 행동을 일깨우는 달콤한 감정이다. 하지만, 케인은 '긍정의 횡포'가 우리의 문화를 가득 채우면서 슬픔을 터부시해왔다고 지적한다.
케인에 따르면 미국은 서부 개척 시대부터 '풍부한 자원과 기회의 땅'이라고 스스로를 이미지화해왔다. 이민자들은 이런 '긍정적인 면'을 보고 미국을 택했고, 자본주의적 성공과 부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원래 미국 땅에 살던 원주민들의 비극과 슬픔은 물론, 외적인 성공 뒤에 가려진 내면의 고통과 슬픔을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권리를 박탈당한 슬픔" (211쪽)
하지만 콘서트장에서는 슬픔이 권리를 회복한다. 이번 콘서트에서 신승훈은 아버지를 여읜 슬픔(그는 올해 아버지를 떠나 보냈다)을 그의 노래 중 가장 처절한 슬픔을 담은 두 곡인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과 '보이지 않는 사랑'에 담아냈다.
그는 깊은 슬픔을 토해냈고, 흐느끼느라 잠시 노래를 중단하기도 했다. 나 역시 지난 6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마음껏 울었다. 조문객들을 안내하느라 장례식장에서조차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다 터져 나왔다.
▲ 20대의 신승훈과 50대의 신승훈이 함께 부른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무대 |
ⓒ 송주연 |
실컷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이렇게 함께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비로소 상실을 수용할 수 있었고, 삶의 덧없음조차 아름답게 느껴졌다. 슬픔과 연결감, 사랑이 뒤범벅된 '달콤씁쓸함'이 내게 편안함을 선사했다. 그렇게 콘서트는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힘찬 앙코르 소리와 함께 신승훈이 다시 무대에 올라와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불렀을 때 내 마음은 또 요동쳤다. 50대의 신승훈이 첫 소절을 부르자 두 번째 소절을 받아 부른 이는 바로 커다란 화면 속 20대의 신승훈이었다.
충족감에 이르는 열쇠는 자신이 한 일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 모든 슬픔과 상실과 혼동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지금도 또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여전히 본연의 당신 그대로임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339-340쪽)
케인이 책에서 의사 브레이트바트의 말을 빌어 설명한 이 대목 그대로였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무대에서 나는 본연의 나와 만났고 이런 내가 더없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그래도. (307쪽)
신승훈의 노래는 슬프지만 아름답고, 삶은 씁쓸하지만 달콤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홀로지만, 이런 감정 덕분에 서로 연결되고 사랑을 갈망하며, 또한 본연의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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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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