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조인들에게 '일생일대' 기회가 된 3년
[김종성 기자]
24일 첫 방송을 탄 JTBC <디엠파이어: 법의 제국>에는 이른바 법복귀족들이 등장한다. 전직 대법관인 함민헌(신구 분)의 일가족을 통해 이들이 법률 귀족임을 보여준다.
로펌 함앤리의 설립자인 함민헌은 가족들을 법률가로 양성했다. 그의 딸 함광전(이미숙 분)은 민국대 로스쿨 원장이고, 사위 한건도(송영창 분)는 함앤리의 대표변호사다. 손녀 한무률(김정 분)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이고, 또 다른 손녀 한혜률(김선아 분)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다.
한혜률은 일반적인 부장검사가 아니다. 정재계 인사를 피의자나 피고인으로 소환할 수도 있는 특수부 부장검사다. 그의 전 남편 고원경(김형묵 분)은 검사이고, 현 남편 나근우(안재욱 분)는 판사 출신 로스쿨 교수다. 제1회 방송은 나근우가 유력 대권주자로 부각돼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함민헌의 젊은 부인인 이애헌(오현경 분)만 빼면, 함민헌 3대는 법조 명문가를 이루고 있다. 이 가문의 특권적 지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리라는 점은 한혜률의 전 남편 자식인 한강백(권지우 분)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성을 쓰는 한강백 역시 로스쿨 학생이다.
▲ JTBC <디엠파이어: 법의 제국> 한 장면. |
ⓒ JTBC |
누가 봐도 법복귀족인 이 가문은 세상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나근우가 대권 주자로 주목을 받는 모습과 한혜률·나근우 부부의 일상사가 방송 화면을 타는 장면 등은 이 가문이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일반 법조인들과도 구별되는 사람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들의 화려한 면모만을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아니다. 함민헌 일가는 이른 아침에 약식 예배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부지런하고 종교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런 외형과 달리 숨겨야 할 것도 있는 사람들이다.
제1회 방송은 나근우가 로스쿨생 홍난희(주세빈 분)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장면들을 보여줬다. 이들의 밀회는 자동차 안은 물론이고 공연장 화장실에서도 일어난다. 부인 한혜률은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 있고 남편 나근우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홍난희와 단둘이 밀회를 나눈다. 법복귀족들의 어두운 실상이 이 드라마에서 다뤄지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하고, 제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라고 선언한다. 이처럼 헌법은 귀족제도를 부인하지만, 바로 그 헌법과 법률을 다루는 사람들 중에는 법복귀족이라 할 만한 그룹이 존재한다. 변호사나 판검사들 중에 그 같은 성역을 형성한 이들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법복귀족들은 정권의 기세에 눌려 그 시녀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시녀처럼 악용하는 정권 역시 그들의 협력 없이는 국가를 운영하기가 힘들다. 그들은 법조계가 정권의 행위를 사법적으로 승인하는 역할을 하도록 유도한다.
탱크와 총으로 국민을 탄압한 과거의 군사독재정권도 법복귀족들의 협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귀족들은 군대와 경찰을 직접 지휘하지는 못하지만, 군대·경찰을 지휘하는 세력의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정권은 자신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합리화시켜주는 법복귀족들에게 대가를 제공했다. 그들의 권위를 세워주고 그들의 지위를 안정시켰다. 정권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그 비호를 받거나 공조하는 법복귀족들의 세계는 외형적 양상만 조금 달라졌을 뿐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성역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그들이 선출직이 아닌 데서도 느낄 수 있다. 재벌이나 고위 성직자들과 달리 법복귀족들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판검사)이거나 나랏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변호사)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데도 그들은 민주주의적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다. 그들은 선발될 뿐 선출되지 않는다. 대법관이나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들은 법원 판결이라는 국가 사법작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데도, 그들에 대한 민주적 견제는 사실상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들의 권력과 비교하면, 그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매우 허술하다.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고도 민주국가의 운영에 깊이 개입한다는 점에서도 귀족임에 틀림없다.
대한제국 때까지만 해도 그런 법복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삼권이 분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법 분야만을 따로 다루는 귀족이 별도로 등장할 여지가 없었다.
법률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특권 집단의 출현은 대한제국 멸망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는 공식적인 귀족제도가 존재한 데다가 한국인 법조인들은 식민지인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독자적 성역을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인 법조인들이 특권을 누린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같은 특권을향유하지는 못했다.
▲ JTBC <디엠파이어: 법의 제국>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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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조인들에게 일대 기회가 된 것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미군정 시기였다. 이 3년간은 한국인 변호사와 판검사들이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미군정과의 교섭을 통해 일반 대중과 구별되는 특권을 크게 확보해 놓았다.
1947년 10월 24일자 <조선일보> 기사 '대법관 등의 선거제로 사법의 민주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군정은 고위직 법관에 한해 선거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인 법조인들의 반대로 좌절되고 말았다.
2009년에 <본질과 현상> 제18호에 실린 이국운 한동대 교수의 논문 '한국 사법제도의 구조와 법률가 집단의 곤경'은 법관선거제도가 좌절된 이유를 "(한국인 변호사 집단은) 법조 내부의 좌익 세력이 준동할 가능성을 들어 철저하게 좌절"시켰다는 말로 설명한다. 빨갱이들이 준동할지 모른다는 논리가 법관 선거제도를 좌절시킬 때 등장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법조인들은 검사의 기소권 행사에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기소배심 제도도 차단했다. 재판에 넘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검사의 판단에만 맡기도록 함으로써 법조인 전체의 이익을 도모했던 것이다.
위 논문은 전관예우 관행도 이 시기에 급속히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소수의 한국인 법조인들이 변호사와 판검사 자리를 차지함으로 인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대한민국 법복귀족 제도를 지탱하는 요인들이 미군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인 변호사들 중에는 항일투사들을 적극 변호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침략전쟁이 본격화된 1937년 이후에는 노선을 바꿔 반민족적인 길을 걷는 법조인들이 많았다.
2021년에 <법사학(法史學) 연구> 제64호에 실린 전병무 강릉원주대 연구교수의 논문 '일제하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에 관한 연구'는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가 가동되자 대부분은 이른바 중도의 길을 걷거나 친일로 나섰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파로 변신한 이들이 다수 포진했던 법조계가 해방 뒤에 미군정과 제휴하면서 일반 대중과 구별되는 특권들을 확보했다. 이것이 <디엠파이어>에 나오는 법복귀족 함민헌의 사회경제적 기초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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