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자연, 노동없이 소출없다..잡초가 채찍인셈
가뭄 심할 때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 텃밭 물주기
며칠 전 오랜만에 몸을 좀 심하게 썼더니 몸살이 난 모양이다. 며칠 동안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오랜만에 아파보니 그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했던 것이 큰 복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농업과 관련한 보조금(직불금 등)을 받으려면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농업경영체 등록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거기에 어떤 필지에 어떤 작물을 심었다는 것을 등록하게 되어 있다. 공장 뒤편으로 500평정도 되는 농지에 오미자를 심었다고 신고했는데 그동안 관리를 못해서 잡목들이 우거졌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와서 보고는 농업경영체를 유지하려면 그 밭을 쓸 수 있는 상태로 정리하라기에 엔진톱과 예초기를 들고 정리하다가 몸살이 났다.
몸살도 나고 돈은 좀 들었어도 묵혀놨던 밭을 정리 하니 훤하니 보기가 좋다. 내년 봄에 이 밭에 감자를 심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남원시 아영면)이 해발 500미터 내외의 고랭지라 감자, 포도, 사과, 배추, 상추 등이 잘 되고 맛도 좋다.
그 중에 감자와 포도는 단연 맛이 탁월하다. 남원 시내에 있는 마트에서도 ‘아영 감자’와 ‘아영 포도’는 별도로 진열해 놓고 값을 더 받을 정도로 지역 내에서 품질을 알아준다.
내년 봄에 이 밭에 감자 심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그동안도 감자나 오미자도 심어보고 참나무에 표고 종균을 주입하여 버섯농사를 짓기도 했었다. 하지만 작물 심을 생각에 가슴이 설렜던 적은 없다. 이상한 일이다.
텃밭 농사라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농사라는 것이 생물을 다루는 것이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소출이 나지 않는다. 소출이 적은 것이 아니라 전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농촌으로 이사 온 후 얼마 안됐을 때 고구마를 심은 적이 있다. 처음 얼마간은 밭을 돌보다가 힘에 부쳐 방치하자 금방 잡초로 뒤덮였다.
나중에 수확시기가 되서 그래도 얼마간은 고구마가 들었으려니 하고 밭을 뒤집었는데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알았다. 농사라는 것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금년 봄부터 농사짓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장 옆 빈 터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풋고추, 꽈리고추, 가지, 오이, 호박을 심었다. 그 주변에는 각종 유실수(자두 살구 사과 체리 배 앵두 등)를 심었다.
금년 봄 한참 가뭄이 심할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제일먼저 한 일이 텃밭으로 달려가 물주는 일이었다. 작물 하나하나에 물을 주자면 30분 이상이 걸렸지만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조그만 텃밭에서 매일매일 고추, 오이, 가지 등이 쏟아져 나왔다. 여름 내내 금방 밭에서 딴 야채들로 식탁이 풍성해졌다. 더운 여름날 입맛 없을 때 풋고추 몇 개 따다가 새우젓을 살짝 올려서 한 입 베어 물면 밥 한 그릇이 금방 없어졌다.
텃밭에서 나온 소출의 대부분은 서울 어머니에게 보내드렸다. 어머니는 서울로 배달된 채소들이 아들이 농사지은 것이라는 사실에 신기해 하셨다고 들었다. 서울에서 살 때는 거실 전구 하나 갈아 끼우는 것도 어설펐던 아들이 농사지었다고 보내온 채소들을 받아들고 신기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여름에 무럭무럭 커가는 작물들을 보면서 농사짓는 재미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생활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작년까지는 전혀 끌리지 않던 농사일이 올해 들어 갑자기 하고 싶어진 것이라든가 내년에 감자 심을 생각에 가슴이 설레는 것을 보면 모든 일에는 적합 한 때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당분간은 그동안 해 오던 식품을 제조하는 일과 농사일을 병행할 생각이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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