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② 우상혁 인터뷰] "바심이 버티고 있어 안타깝다고? 그가 있어 내가 성장했다"

이은경 2022. 9. 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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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유진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결승전 도중 환하게 웃고 있는 우상혁.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우상혁과의 인터뷰는 훈련 중 잠시 시간을 내 전화로 이뤄졌다. 경기 중에는 격렬한 세리머니를 하고 늘 밝게 웃는 ‘스마일 점퍼’ 우상혁은 인터뷰할 때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말을 골랐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하게 말했다.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쓴 그는 “높이뛰기가 너무 재미있고 운동을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국제대회에 계속 참가하느라 해외에 오래 머물다가 9월 초 귀국했다. 훈련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한국에 오자마자 계속 훈련하고 있다. 마지막 다이아몬드리그 대회를 잘 못 해서(로잔 다이아몬드리그 2m15·공동 8위)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10월 열리는 전국체전을 준비 중이다. 올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체전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고 싶다.”

-세계 무대 경쟁자들에 비해 키(1m88㎝)가 크지 않다. 또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양 발 크기가 다른 짝발이다. 국내 최고 전문가조차도 ‘우상혁은 안 될 거다’라고 평가했다던데.

“물론 나한테 직접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가 있으니 나도 그런 말들을 전해들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자극받았고 동기부여가 됐다. ‘한국 선수는 왜 안 돼?’ ‘신체조건이 완벽하지 않으면 왜 안 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도 스테판 홀름(스웨덴 1m81㎝)처럼 키가 크지 않은데도 국제대회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홀름 같은 선수가 내 롤모델이었다.”

카타르의 무타즈 에사 바심. AP=연합뉴스

-우상혁이 지금까지 대단한 결과를 보여줬지만, 사실 바심이라는 존재가 너무 거대해 보인다. ‘왜 하필 역사적인 선수가 동시대에 있나’라고 원망한 적은 없나.

“나는 바심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높이뛰기는 무조건 밀고 당기는 게 있어야 한다. 앞서 가는 선수가 있으면 그를 추월하고, 거기서 자극받고 이런 게 반복돼야 발전한다. 그게 보이지 않아도 선수들끼리는 느낌으로 안다.”

-선수 커리어에서 ‘이때 내 실력이 크게 늘었다’라고 생각하는 시점이 있나.

“2019년 12월 김도균 코치님(육상대표팀 수직도약 코치)를 만난 이후다. 이전까지 나는 욕심히 과한 선수였다. 높이뛰기는 욕심이 과하면 다친다. 2019년 1월 부상을 당했고, 그게 슬럼프의 시작이었다. 코치님이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챙겨주셨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넘치는 의욕을 절제하도록 해줬다. 김도균 코치님을 만난 이후로 부상이 없다. 코치님과 훈련한 3년이 3개월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훈련했다. 3년간 정체됐던 내 기록을 2021년 6월 깨면서부터 포텐셜이 터진 것 같다.“

세계선수권 각오 밝히는 우상혁 (영종도=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리는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높이뛰기 우상혁이 30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출국하기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6.30 ka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도쿄 올림픽 4위에 오르면서 말 그대로 스타가 됐다. 그때 나름의 성취감을 느꼈을 텐데 흐트러짐없이 올 시즌 더 발전했다는 게 대단하다.

“도쿄 올림픽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만족감은 그 순간뿐이다. 결국 메달을 못 땄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남은 3년 파리 올림픽까지 달리자고 생각했다. 3년은 생각보다 짧다. 벌써 2년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곧 1년 앞으로 올 거다. 김도균 코치님은 도쿄 올림픽을 마치고 ‘2m35를 한 번 뛴 걸로 만족하면 안 된다. 평균적인 기록을 좋게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에 숫자 238이 들어간다. 개인적인 목표 기록이 2m38이라는 뜻인가.

“앞서 말했듯이 한 번의 기록이 깨지는 것보다 평균치를 유지하면서 목표 기록을 달성하는 게 구체적인 목표다. 잘 준비하면 무조건 기록이 깨진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그 이상의 목표도 생각하고 있다. 지금처럼 꾸준히 준비하다 보면 내년 시즌에도 2m38을 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높이뛰기가 재미있고, 달리기가 재미있고, 운동이 재미있다.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있지 않을까?(웃음)”

-인스타그램에 일상복을 잘 입는 ‘남친룩 사진’이 많아 화제가 됐다. 옷은 어느 부분을 신경써서 입는지.

“그냥 마음에 드는 게 보이면 사고, 주로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다. 지금은 푸마와 스폰서 계약을 해서 거기서 보내주시는 옷 위주로 꾸민다.”

-한국의 육상 선수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계약했다는 자체로 대단히 상징적인 일인데.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자부심을 느낀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줬으니 책임감도 있다. 더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릴 때 ‘한국 육상에 대단한 선배가 있었다면 내가 따라갔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후배들이 나를 보고 따라올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높이뛰기 우상혁, 가뿐하게 2m 32 통과 (나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한국육상 최초 세계대회 금메달리스트 우상혁(국군체육부대)이 4일 전남 나주종합스포츠파크 육상경기장에서 열린 2022 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 출전하고 있다. 2022.5.4 iso6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수영의 황선우와 응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던데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지.

“그냥 안부 인사 하는 사이다. 나중에 한번 보자는 말만 했다. 황선우는 어린 친구지만 배울 점이 많다. 나는 어릴 때 국제대회에 많이 나가서 경험을 쌓았다. 덕분에 성장했다고 믿고 있다. 경험이 진짜 중요한데, 황선우는 국제대회 경험이 거의 없는데도 올림픽에서 아시아신기록을 냈다. 아시아신기록이 기초 종목에서 얼마나 힘든 건지 알기 때문에 ‘진짜 멋있다, 리스펙트(존경) 한다’, 이렇게 응원 메시지를 내가 먼저 보냈다.”

-육상과 수영이 한국 선수에게 얼마나 힘든 종목인지 사람들이 진짜 속사정은 잘 모르지 않나.

“육상 국제 대회에 나가면 말 그대로 ‘그사세’다. 그들이 사는 세상, 그들만의 리그다. 올해 유럽 대회에 계속 참가하면서 느낀 게 많다. ‘아, 유럽 잔치구나. 우리가 낄 수 없는 자리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고, 더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 육상은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들 했다. 난 듣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흔들리니까 아예 안 들으려고 했다. 난 내가 안 될 거라고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의욕이 과한 게 문제였지(웃음). 나는 운동하는 게 행복하다. 물론 노는 것도 즐겁고 행복하겠지만, 그건 나이 먹고도 할 수 있다. 선수 시절의 행복은 돈 주고도 살 수가 없다. 내가 남은 선수 생활 동안 대회를 몇 개나 뛸 수 있을까 계산해보니 많아야 50경기 정도? 100경기보다는 확실히 적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

[올림픽] 우상혁, 4위를 명 받았습니다. (도쿄=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국군체육부대)이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선에서 마지막 시도 실패 후 경례하고 있다. 2021.8.1 xy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거수경례 세리머니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제 전역(9월 2일자)했다. 앞으로는 못 보는 건가.

“외국 선수들도 그걸 묻더라. 그래서 ‘전역했지만 내 트레이드 마크라서 밀고 나갈 거야’라고 답해줬다. 바심도, 지안 마르코 탬베리도 독특한 세리머니가 있다. 거수경례 세리머니로 많이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군인 신분이 아니어도 할 생각이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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