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하나님의 꿈.. 여성·가정 회복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닐 것"

유경진 2022. 9. 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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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교회 수원캠퍼스 여성 사역 담당 김현실 목사
온누리교회 수원캠퍼스 여성사역 담당인 김현실 목사가 지난 5월 수원캠퍼스에서 열린 ‘열린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온누리교회 수원캠퍼스 제공


지난 20일 경기 용인시 온누리교회 수원캠퍼스(김소리 담당목사). 평일인데도 교회는 여성 교인들로 북적였다. 교회 3층 세미나실 밖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부들이 오전부터 나와 뜨겁게 중보기도를 하고 있었다. 2층 사무실에는 여성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역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 교회 중심엔 김현실(58) 목사가 있다. 올해로 여성사역 22년차인 김 목사는 1998년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에서 파트타임 사역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 교회에서 차세대·청년·새가족·여성 사역 등을 아우르며 전 세대를 두루 섭렵한 베테랑 사역자다. 대표적으로 서울 양재동 온누리교회 청년공동체 ‘브릿지 33+’는 2004년 김 목사가 청년 사역을 시작하면서 만든 공동체다. 또 가족을 대상으로 한 ‘아빠랑 나랑 함께하는 찬양축제’와 부모와 자녀를 위한 자존감 회복학교 ‘드림임팩트’를 기획해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가 현재 사역 중인 온누리교회 수원캠퍼스는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 곳에서는 여성 사역을 크게 ‘여성 사역팀’‘여성 예배와 모임’‘여성 스쿨’로 나뉘는데, 18개가 넘는 팀과 프로그램이 있다. 이 모든 사역을 총괄하는 이가 김 목사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중요하게 꼽는 사역은 ‘정서적 건강 여성 영성’ 프로그램이다.

“사실 교회에서 교육해도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아요. 결국 정서적인 문제까지 깊이 들어가다 보면 가족에서 형성된 인성, 즉 ‘쓴 뿌리’가 드러나게 돼요. 그 쓴 뿌리를 끊어내고 정서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표입니다.”

세미나와 매일 아침저녁 말씀묵상·기도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소그룹으로 진행된다. 참여자들은 각자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김현실 목사가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온누리교회 수원캠퍼스에서 성도들과 함께 ‘성경일독학교’ 교육을 하고 있다. 온누리교회 수원캠퍼스 제공


“(기혼)여성들은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요. 부부갈등·고부갈등·남편의 신앙·자녀 양육 등 끝이 없어요. 당연히 정서적·육체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죠. 교회 만이라도 모든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여성들을 위한 맞춤 예배를 드린다. 팬데믹 이후 매주 140여명의 여성이 참석한다. 예배가 끝나면 함께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며 한 주의 삶을 나눈다. 펜데믹 기간에는 ‘좋은 어머니 스쿨’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성경 일독 학교’도 반응이 뜨겁다.

김 목사는 처음부터 목사를 꿈꾸지 않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원인불명의 질병에 시달렸다. 우울증이었다. 소리 없이 찾아온 우울증은 불면증과 섭식장애, 천식 등으로 그를 괴롭혔다. 그랬던 그가 1990년대 초 삶의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다. 많은 가정이 모인 아파트에 살다 보니 가정이 무너지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부부갈등·가정불화·청소년들의 방황·우울증에 걸린 주부들을 보며 가정 회복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마치 하나님께서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하신 것 같았어요. 너무 안타까웠죠. 사회의 기본은 가정인데 기본이 무너지는 거잖아요.”

‘가정을 회복하라.’ 소명을 깨달은 김 목사는 1994년 장신대 신대원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한 모든 사역의 중심에는 ‘여성과 가족’이 있다. 그는 “가정은 하나님의 꿈이다. 가정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회복돼야 한다”며 “여성이 바로 서야 신앙이 바로 서고, 가정·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가 예장통합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해인 2000년은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다. 교단 뿐만 아니라 교회 성도들의 인식도 여전히 제자리였다.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교회 내 100명이 넘는 남성 교역자들 사이에 여성 목사는 김 목사뿐이었다.

숱한 차별 속에서도 그는 행여 후배 여성 목사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사역만 묵묵히 감당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고 하용조 목사의 한마디는 김 목사를 단단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하 목사님이 ‘여러분들이 각자의 사역에서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죠.(웃음)”

사역에도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김 목사는 박사과정 공부와 사역에 충실했다. 그는 여성 후배 목사들을 향해 “(사역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고, 본인의 사명과 달란트를 잘 구별해야 한다”며 “주어진 사역에 묵묵히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조언했다. 은퇴까지 6년이 남은 그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계획이라는 게 있나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제 소명인 여성과 가정의 회복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겠죠.”

수원=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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