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데 매력적인 남궁민표 법정활극

이준목 2022. 9. 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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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SBS 금토드라마 <천 원짜리 변호사>

[이준목 기자]

 SBS <천 원짜리 변호사>
ⓒ SBS
딱히 참신한 스토리나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보다보면 은근히 몰입하게 된다. 조금은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이라도, 뻔하고 익숙한 클리셰마저 매력으로 승화해낼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배우의 힘이 크다. SBS의 새 금토드라마 <천 원짜리 변호사>가 '남궁민표 법정활극'의 매력을 선보이며 시작부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주인공 천지훈(남궁민)은 수임료 단돈 1000원을 받으며 어려운 이들의 사건을 해결해주는 괴짜 변호사다. 천지훈은 첫 등장부터 한강 다리 위에서 투신하려던 의뢰인을 돕기 위해 직접 다리 위로 올라가는 기행을 선보인다. 사채업자에게 피해를 입어 벼랑끝까지 몰린 의뢰인은 절박한 상황에서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며 천지훈을 선임했던 것.

천지훈은 의뢰인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채업자의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쳐들어온 검사 시보 백마리(김지은)와 처음으로 마주쳤다. 때마침 돌아온 사채업자는 천지훈과 구면이었고 그가 변호사가 되기 전 검사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천지훈은 백마리가 사채업자를 체포할 경우, 의뢰인의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사채업자가 자신을 변호사로 선임하게 한 후, 영장집행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백마리의 압수수색을 저지한다. 천지훈의 목적은 사채업자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뜯어내서 의뢰인의 빚을 탕감해주려고 했던 것. 천지훈은 의뢰인의 돈을 되찾아주며 새 삶을 살기를 응원했다.

두 번째 사건은 소매치기 전과자였던 이명호(김철윤)가 출소 후 우연히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남성을 부축하려다가 남성의 지갑이 든 정장 주머니에 손이 닿았다는 이유로 소매치기범으로 몰린 사건이었다. 이명호 아내의 의뢰를 받은 천지훈은 처음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난치병에 걸린 딸을 걸고 무죄를 맹세하는 이명호의 말에 마음에 움직여 사건을 맡기로 결심했다.

천지훈은 실험삼아 일부러 공중화장실에서 이명호와 똑같은 상황을 유도하여 소매치기로 오인받아 경찰서까지 오게된다. 하지만 천지훈이 변호사라는 신분을 밝히자 그를 소매치기로만 여기던 경찰과 상대 남성 모두 태도가 180도 바뀌어 공손해진다. 현실을 체감한 천지훈은 "이게 변호사는 오해라고 풀어주고, 전과 4범은 구속이고, 너무 불공평하네"라고 지적한다.

천지훈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이명호를 구명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마침 이명호 사건을 맡은 검찰 측 담당자는 바로 백마리였다. 백마리는 이명호가 범인이라고 확신했지만, 천지훈은 백마리를 찾아와 이명호가 쓴 반성문을 찢어 버리며 법정에서 대결을 예고한다.

1, 2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법정 공방 장면이었다. 재판 당일, 천지훈은 이명호가 전과 4범이라는 이유로 소매치기로 오인받게 된 편견들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이명호를 소매치기로 신고한 남성이 증인으로 출석하자, 그가 사건 당시 CCTV를 통하여 술에 취한 상태여서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헛점을 짚어냈다.

천지훈은 이명호에게 증인 몰래 지갑을 훔치는 장면을 재연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당황하는 증인에게 천지훈은 "증인은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지갑이 소매치기를 당하는 걸 느끼지 못했다. 피고인은 절도 전과 4범이다. 현장에서 미수에 그쳐 잡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왜일까? 정말 피고인이 지갑을 훔치려고 했다면 술에 취한 증인에게 과연 들켰을까? 이 점이 우리가 가져야 말 합리적 의심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천지훈은 정작 아무 것도 들어오지않은 '빈 상자'를 추가증거로 내밀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보시다시피 아무 것도 안 들었다. 무죄를 증거할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무죄의 증거가 없으니 유죄라고 생각한다면 유죄를 추정하고 있는 거다. 누구도 전과 4범이라고 해서 그의 유죄를 추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백마리에게 "이 상자 안에 피고인이 유죄라는 증거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천지훈은 배심원들에게 "주의깊게 봐주셔야할 것은 피고인이 '지갑을 훔칠 것 같은 사람'인지가 아니다. 정말 피고인들이 지갑을 훔치려다가 붙잡힌 것인가다"라고 설득하다.

검찰은 이명호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천지훈은 마지막 변론에서 "우리 법은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유죄를 입증하라고 요구한다"고 형사법의 원칙을 강조한다.

천지훈은 "우리 법은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 원칙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켜줄 것이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이명호를 변호했다.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재판부는 이명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풀려난 이명호는 천지훈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수술을 마친 딸 소미가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천지훈은 이명호가 구금기간만큼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하며 딸의 병원비 문제까지 해결해준다.

또다시 천지훈에게 패배한 백마리는 "이명호가 정말 소매치기를 안했다고 생각하냐. 본인도 했다고 생각하면서 이명호의 상황이 안타까워서 도와주려고 한 것 아니냐"고 질문하다. 천지훈은 정색하며 "질문이 유치한 것 아니냐. 검사님이나 저냐 진실을 스스로 정의할 수는 없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할 뿐, 이번엔 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고 받아친다.

항소를 포기한 백마리는 검사 시보를 마치고 검찰청을 떠나 할아버지 백현무(이덕화 분)가 운영하는 한국 최대 로펌 '백'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백현무는 재판 과정에서 눈여겨본 천지훈의 사무실로 백마리를 보내 시보 생활을 하길 권한다.

백마리는 허름한 사무실과 얄미운 천지훈의 얼굴을 확인하고 기겁하고, 천지훈 역시 백마리의 등장에 당황하며 시보 채용을 꺼린다. 백마리는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와 애원했지만, 백현무는 "딱 두달만 일해보라"고 설득한다. 백마리가 왜 하필 그곳에 보내려고 하는자 백현무는 "우리 백에는 없는 변호사니까"라고 답하고 비로소 백마리는 마음을 돌린다. 천지훈과 백마리는 시보 채용을 둘러싸고 티격태격 신경전을 벌인다.

한편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아파트 경비원 김만복(김정호)에게 갑질을 일삼던 주민 천영배(김형묵)는 김만복이 자신의 차량을 리어카로 흠집 냈다는 누명을 씌워 변상을 요구한 것. 이 사건을 목격한 김만복의 손자 건우(박재준)는 천지훈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건우의 딱한 사정을 들은 천지훈은 본래 수임료에 해당하는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의 반 토막만 받고 기꺼이 사건 해결에 착수했다.

하지만 김만복은 입주민에게 소송을 건 경비원을 써줄 곳은 없는 현실을 우려하여 천지훈의 도움을 거절한다. 때마침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천영배와 마주친 천지훈은 비매너 주차에 발렛파킹까지 요구하는 그를 보고 능글맞은 언변으로 도발하여 일부러 소란을 일으킨다. 천지훈은 사고의 발단이 된 리어카를 직접 운전하겠다고 나서서 보란듯이 리어카를 천영배의 차에 부딪혀 차량 범퍼를 박살낸다.

이로서 김만복 사건의 빌미가 되었던 작은 흠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이제 사건은 천지훈과 천영배간의 문제로 구도가 바뀐다. 격분하는 천영배를 앞에 두고 천지훈은 즉석에서 백마리를 자신의 변호사로 채용하며 "이거 해결하면 시보로 채용 시켜주겠다"는 돌발 제안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다. 당황하여 천지훈의 등뒤에 육두문자를 날리는 백마리와, 유유히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 천지훈의 모습이 흥미진진한 미래를 예고했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첫 주부터 8%대(전국 평균 8.5%, 수도권 8.8%, 2049세대 3.1%)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고 2회에서는 최고 시청률이 12.7%(이하 닐슨코리아 기준)로 주말 미니시리즈 전체 1위에 등극하며 또다른 히트작의 탄생을 예고했다. 1.6%의 저조한 시청률로 마감했던 전작 <오늘의 웹툰>의 부진을 단숨에 만회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법정드라마의 흥행불패 공식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단돈 천원에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척척 해결해주는 갓성비 최강 변호사 천지훈은 법조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구원자'에 더 가까운 캐릭터다.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에 가가운 인물에 설득력과 공감대를 불어넣은 것은 역시 남궁민의 연기력이다. <스토브리그> <닥터 프리즈너> <검은 태양> 등의 전작들을 통해 증명된, 삐딱하고 괴팍하지만 정의를 추구하는 반영웅의 캐릭터는 믿고보는 '궁민배우' 남궁민표 활극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특히 1, 2회의 하이라이트가 된 소매치기 누명을 쓴 의뢰인의 법정공방 신에서 남궁민의 걸출한 연기력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오로지 천지훈의 능수능란한 언변만으로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가야하는 어려운 장면이었음에도 남궁민은 엄청나게 많은 대사량과 어려운 법정 용어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면서 천지훈만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칫 뻔하고 진부할 수 있는 히어로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것도 능력이다. 천지훈은 능글맞고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법의 본질과 취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것은 물론, 전과자나 경비원같은 약자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시선을 꼬집는 인물이다. 천지훈이 날리는 통쾌한 사회적 일침들은, 유쾌한 법정활극을 넘어서 시청자들에게 생각해볼 만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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