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구미 물싸움에..'선사시대 암각화' 보존, 비상 걸렸다

백경서 2022. 9.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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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장마로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물에 완전히 잠겨 있다. 연합뉴스.

반구대 암각화 잇따른 태풍에 '물고문'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바위그림인 ‘반구대암각화’가 최근 연이어 덮친 태풍으로 또 물에 잠겨 ‘물고문’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구미와 대구의 물싸움이 다시 시작되면서 물에서 꺼낼 방안 마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에는 거북이와 같은 동물 그림 300여 점과 고래 사냥 등 당시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나 울산시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반구대암각화는 매년 장마철마다 인근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물에 잠기고 나오길 반복하며 훼손되고 있다. 특히 최근 두 번의 태풍으로 인한 폭우에 20일정도 잠긴 상태다.

24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이날 사연댐 수위는 54.1m로 반구대암각화가 잠기는 수위인 53m보다 높은 상태다. 지난 5일 태풍 ‘힌남노’가 오기 전 수위가 46.9m로 당시 반구대암각화는 밖으로 드러나 있었지만, 폭우가 쏟아진 직후인 6일 수위가 55m로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해 잠겼다. 이어 태풍 ‘난마돌’까지 오면서 20일가량 물살을 맞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발견 6년 전 지어진 울주군 대곡천 내 사연댐 저수 구역 안에 있다. 연평균 42일가량 물에 잠기는 바람에 그림이 희미해지면서 세계유산 등재에도 발목이 잡힌 상태다.

울산시 등 암각화 보존위해 수문설치 추진

반구대암각화. [문화재청]

울산시와 환경부·문화재청·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4월 반구대암각화를 지킬 방법으로 수문 설치 카드를 꺼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최적의 방법으로 ‘사연댐 여수로 47m 지점에 폭 15m, 높이 7.3m의 수문 3개를 설치하는 방안’이 낙점되면서다. 수문 3개를 설치하면 현재 60m인 사연댐 여수로 수위가 52.2m로 낮아져 53m 높이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 침수를 막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반구대 암각화’와 사연댐.

다만 무작정 사연댐의 물을 빼내 수위를 낮추면 울산시민 식수가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 지난 4월 울산에 새 식수원이 마련될 가능성이 생겼다. 대구-구미의 13년 물싸움이 끝나는 ‘맑은 물 나눔과 상생 발전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면서다.

대구-구미-환경부가 체결한 이 협약에 따르면 대구시가 구미 해평취수장의 물을 끌어다 쓰는데 구미시가 동의하고, 울산은 기존 대구 식수원인 청도 운문댐의 물을 가져다 쓴다. 이렇게 되면 울산시민 식수가 어느 정도 보장돼 사연댐에서 물을 빼내 수위를 낮출 수 있다는 게 울산시의 설명이다.

대구·구미 물 협약 해지로 암각화 위기
하지만 3개월 뒤 민선 8기에 들어서면서 대구와 구미의 단체장이 바뀌었고, 협약이 뒤집혔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취임 후 “해평취수장 공유 협정은 주민 동의가 부족한 졸속 합의였다”며 재검토를 주장했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더는 구미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대구시는 지난달 17일 ‘맑은 물 상생 협정’을 맺은 지자체와 관계기관에 협정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따라 울산시의 사연댐 수문 설치 작업도 사실상 중단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수문 설치는 울산 시민 식수 확보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물 확보가 되지 않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다”며 “정부가 중재에 나서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꺼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시측은 “반구대 암각화는 수십 년간 침수, 노출을 반복하면서 암면의 암석이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세계유산 등재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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