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견공".. 이빨 드러내는 백구 '위너'의 슬픈 사연 [개st하우스]

이성훈,최민석 2022. 9. 24.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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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경기도 양주의 폐공장에서 발견돼 구조된 3살 백구 위너. 구조 당시 1살이었던 위너는 구조대원을 보면 구석에 숨고 몸을 만지려고 하면 손을 물어버리는 등 공격성을 보였다. 관찰 결과 공격적인 개가 아니라 소심한 견공이었던 위너는 강압적인 교육보다는 기다려주고 칭찬하는 방식으로 훈련한 결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보다 훨씬 많이 누그러졌다. 최민석 기자

“유기동물보호소 봉사활동을 다니며 사람을 피하거나 손을 물어버리는 문제견들을 만났어요. 어쩌다 문제견이 됐을까 눈여겨 봤는데요. 애는 사람 손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봉사자들이 마구 몸을 만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개는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고요. 아무리 좋은 의도로 예뻐해도 유기견에겐 두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유기견이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제보자 한경대학교 김지수(23)씨-

이번 사연은 어느 유기동물보호소에나 한두마리씩 있는 문제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동물단체의 도움으로 유기 및 학대 현장에서 구조된 개들은 이후 안락사 없는 단체 보호소에서 지내며 부상을 회복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대다수는 사회성을 회복하고 입양되지만 일부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극복하지 못한 채 보호소에 눌러앉고 말지요.

지난 2020년 경기도 양주의 폐공장에서 발견돼 구조된 3살 백구 위너는 보호소에 머문지 어느덧 2년째입니다. 구조 당시 1살이었던 위너는 구조대원을 보면 구석에 숨고 몸을 만지려고 하면 손을 물어버리는 등 공격성을 보였습니다. 보호소에 입소한 뒤에도 보호소 직원을 제외한 낯선 사람에게는 손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입양길이 끊기나 싶던 그때, 위너에게 제보자 지수씨가 나타납니다.

“봉사자들의 배려가 괴물을 만들 수 있어요”

유기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지수씨는 그동안 수십곳의 유기동물보호소를 방문해 견사 청소, 유기견 산책 등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경험이 쌓이자 지수씨 눈에 안타까운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보호소마다 견사 입구에 ‘주의, 사람 손을 물어버림. 만지지 말 것’이라고 적힌 문제견이 있다는 사실이었죠.

왜 어떤 유기견은 보호소의 문제견이 될까. 지수씨는 유기견과 보호소 직원, 봉사자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고, 그 결과 여러 보호소에서 반복되는 문제 상황을 발견합니다.

일단 봉사자들이 보호소를 방문합니다. 낯선 이들의 등장에 긴장한 개들은 의자 밑에 숨거나 벽 구석에 웅크리죠. 이런 상황에서 보호소 직원과 봉사자들은 ‘자꾸 만져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며 개의 몸과 얼굴을 함부로 만집니다. 당황한 개들은 으르렁거리거나 입질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제서야 보호소 직원들은 문제를 인지하고 행동교육을 시도하죠. 이미 늦었습니다. 개는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지고 공격적인 행동 패턴은 굳어진 상태입니다.

이삭애견훈련소 이찬종 소장은 “일반적으로 봉사자들은 ‘개는 자꾸 만져줘야 성격이 좋아진다’고 오해하는데 그런 잘못된 배려가 오히려 개를 괴물로 만든다”며 “봉사자가 베푼 배려가 그 개를 결론적으로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11년차 유기견 행동전문가 미애쌤도 “사람을 경계하는 개들은 스스로 다가오도록 기다려야 한다. 함부로 다가가고 만지면 오히려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고,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성을 기를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입질하는 백구, 위너와의 만남

사진=최민석 기자

지난 4월, 지수씨는 서울의 한 유기동물보호소를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사람 손에 이빨을 드러내는 3살 백구, 위너를 발견했지요. 위너는 구조할 당시에도 구조대원의 손을 물려고 하는 등 방어적 입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보호소에 들어온 뒤에도 자신을 돌보는 직원을 제외한 외부인의 손길에 공격성을 보였습니다. 결국 다른 개들이 모두 입양 가는 지난 2년 동안 위너는 보호소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보다 못한 보호소 대표는 직접 위너의 행동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효자손, 고무장갑 등 사람 손을 닮은 물건으로 개를 쓰다듬어 조금씩 경계심을 낮추는 체계적 둔감법을 1주일이나 시도했는데요. 하지만 외부인에 대한 입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위너가 안타까웠던 지수씨는 동료 대학생들과 한가지 도전을 하기로 합니다. 행동교육 전문가를 섭외해서 위너를 비롯해 보호소의 문제견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었죠. 지수씨와 동료들은 ‘견디지마 지켜줄개!’라는 이름의 크라우드펀딩을 개설하고 온라인 모금을 진행했고, 2개월간 약 300만원의 후원금을 모읍니다. 이를 종잣돈으로 유기견 행동전문가인 미애쌤과 윤이쌤에게 의뢰해 6월 23일부터 한 달간 위너와 유기견들의 행동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교육을 받자 위너가 달라졌어요

사진=최민석 기자

미애쌤과 윤이쌤이 보호소를 방문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위너를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행동교육에는 다양한 이론이 있지요. 동물이 원하는 행동을 하면 칭찬함으로써 반복을 유도하는 긍정강화, 문제 행동을 하면 처벌하는 부정강화 등 여러 방법이 있으나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물의 성향과 환경을 파악한 뒤 그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죠.

위너는 낯선 사람을 보면 의자 밑에 숨었고, 사람이 자신을 만지려고 할 경우에만 으르렁대거나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또 간식을 건네면 천천히 다가와 얻어먹기도 했죠. 위너를 교육한 윤이쌤은 위너가 공격적인 개가 아니라 소심한 견공이므로 강압적인 교육보다는 기다려주고 칭찬하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말했습니다.

1개월의 교육 기간 동안 위너는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사람에게 다가오면 간식으로 보상받고, 사람 곁에 엎드리는 등 호감의 몸짓 신호를 보일 때에만 쓰다듬어줬습니다. 문제견 위너에게 교육은 효과 있었을까요?

위너를 직접 교육한 윤이쌤은 “1시간 만에 사람 앞에 엎드리는 교육을 완성했고 1주일 뒤에는 봉사자 손바닥 위에 얼굴을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너의 달라진 모습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지수씨였습니다. 지수씨는 “사람 손을 물던 위너가 편안한 눈빛으로 훈련에 집중하는 모습을 봤다”며 “하루빨리 경계심을 극복해서 봉사자들이 표현하는 사랑을 사랑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면 좋겠다”고 기뻐했습니다.

소심한 위너를 기다려줄 보호자를 모집합니다

지난 7월 7일, 국민일보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보호소에서 위너를 만났습니다. 이날은 위너가 담당 전문가인 윤이쌤에게 교육받은 지 2주째 되는 날이었죠. 낯선 취재진이 방문하자 위너는 3평 견사의 구석진 곳에 웅크렸습니다. 하지만 취재기자가 1m 앞에서 건네는 간식을 받아먹고, 한 봉사자가 한 움큼 사료를 건네자 아예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먹더군요. 전보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누그러진 게 분명했습니다.

이어진 행동 교육에서는 사람의 손길을 허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위너는 스스로 윤이쌤에게 다가가 곁에 엎드린 뒤 윤이쌤 손바닥 위에 턱을 올렸는데요. 개는 턱을 만져주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윤이쌤과 봉사자들이 쓰다듬어도 위너는 편안한 자세를 유지했죠. 윤이쌤은 “위너는 비록 소심하지만 행동교육 학습 속도가 빠르다”면서 “사람과 동물이 많은 보호소보다는 안정된 가정집에서 보호를 받으면 빠르게 사회성을 회복할 것”이라고 총평했습니다.

3살 백구 위너의 임시보호 혹은 입양자를 모집합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왼쪽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심한 백구, 위너를 보듬어줄 보호자를 모집합니다
-3살, 11kg 수컷(중성화 완료)
-낯선 사람을 두려워함. 강제로 만지려고 하면 방어적 입질을 함
-간식을 좋아하며, 1주일 이상 지속적으로 만난 사람을 따름
-산책을 즐기며 다른 개와 사회성이 좋음

■위너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97번째 견공입니다 (79마리 입양 완료)
위너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입양 혹은 임시보호를 희망하는 분은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www.119ark.org/bbs/board.php?bo_table=0404&wr_id=13

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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