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빼박..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 직전 일어난 일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하성태 기자]
▲ 재정공약회의서 만난 한- 미 정상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
ⓒ 연합뉴스 |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브리핑은 이 사안에 대해서 어제 여러 번 검토하고 여러 번 저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기자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확신이 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 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욕설·비속어 파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가운데 2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순방길에 동행 중인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확신과 충분한 검토 작업임을 강조했다(관련기사: 김은혜 "윤 대통령 발언, 우리 국회 향한 것"...'쪽팔려서' 주어는 윤 대통령? http://omn.kr/20tvu). 그럴 만했다. MBC 최초 보도 이후 김 홍보 수석이 해명에 나선 건 12시간 정도가 흐른 뒤였기 때문이었다.
해명의 진위는 둘째치더라도 이 자체로 무능의 극치다. 대통령실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그 12시간 사이 AFP 통신을 필두로 CBS, 폭스뉴스, <워싱턴 포스트> 등 서방 주요 언론들이 윤 대통령의 욕설·비속어 파문을 속속 보도했다. 국격의 추락을 막지 못한 책임은 대통령이 질 것인가, 대통령실이 질 것인가.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미국 얘기가 나올 리가 없고 바이든이라는 말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 김은혜 대변인
해명 내용은 더 가관이다. "국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 속 국회가 미국의 민주당이 아닌 야당 더불어민주당으로, 미 대통령 '바이든'은 "날리면"이란 해석으로 승화됐다. 기자 출신 김은혜 대변인이 12시간 넘도록 검토를 거친 해명치곤 황당무계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야당과 국민의 성토가 쏟아진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23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 대표기관 민주당 169명의 국회의원이 정녕 XX들입니까?"라고 쏘아붙였다. 일각에선 과거 BBK 동영상 파문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를 엄호하기 위해 대선 캠프 대변인이던 나경원 전 의원이 내세웠던 "주어 없음" 해명이 회자하기도 했다.
욕설·비속어로 미 의회와 미 대통령을 '저격'한 윤 대통령을 두고 '국내 최초 반미 대통령' 반열에 올리는 평가나 '윤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성군'이란 조롱까지 나올 정도였다.
▲ 윤 대통령은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무대에 올라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이후 윤 대통령이 행사장을 나오면서 '(미국)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고 발언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포착되었다. |
ⓒ MBC NEWS Youtube |
48초 만남 전후 주목해 보니
윤 대통령이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는 문제의 발언을 내뱉는다. 근접해서 따라붙은 방송사 카메라를 못 봤을 리 만무하다.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발언이 보도되지 않을 거라 확신했거나 보도되어도 상관없다고 여겼거나. 어찌 됐든 대통령 순방을 동행한 기자단 영상은 해당 발언이 나온 지 몇 시간 후인 22일 오전 MBC를 통해 최초 보도됐다.
윤 대통령 발언 직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자. 해당 발언은 21일(현지 시각) 저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에서 나왔다. 애초 윤 대통령은 참석 예정이 없었지만 뒤늦게 참석이 확정됐고 짧은 발언 기회도 얻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본인이 주도한 이 펀드에 총 180억 달러를 모금할 계획이라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을 들인 펀드다. 이 행사에 윤 대통령이 뒤늦게 참석해 1억 달러 공여를 약속했다. 한미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윤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된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남중국해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양국 동맹의 중요성을 상기했다. 2022.0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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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해당 글로벌펀드 예산은 미 의회가 예산을 승인해 줘야 집행이 가능하다. 백악관 브리핑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와 협의해 글로벌 펀드에 60억 달러를 더 기부하려고 한다(we're going to work — (applause) — that means we're going to work with our partners in Congress to contribute another $6 billion to the Global Fund)"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말에 대해 윤 대통령이 욕설과 비속어 섞인 말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볼 때,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란 김 대변인의 해명을 신뢰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쪽팔려서 어떡하나"의 주어가 윤 대통령이 되는 자가당착은 어떻게 돌파해낼 것인가.
국민만 고생이다
미국 중간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및 국내 경제 상황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배제 문제를 의제로 올릴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 가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미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에 관한 비속어와 욕설을 날렸고 그 파문이 미 언론을 강타했다(관련기사: "곤경에 빠진 정치초보" 윤 대통령 '비속어 파문'에 외신도 비판 http://omn.kr/20u07).
해프닝은커녕 외교 참사로 번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내놓은 해명은 안일하고 무능하다.
비단 지지율 폭락이 문제가 아니다. 미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최고 권력과 그 보좌진들의 거짓말은 국민의 분노와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여야는 물론 적잖은 국민까지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한미동맹이 본인의 언행 하나로 금이 가는 결과를 낳는다면 윤 대통령은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다. 예고됐던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과 그와 별개로 어깨를 짓누르는 경제 상황 악화를 이중으로 걱정해야 하는 국민만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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