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의 酒저리]여주 고구마향 한 가득 증류소주에 담다

구은모 2022. 9. 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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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기 여주 '국순당 여주명주'①
사토질땅서 자라 전분 함유량 높아 술 빚기에 적합
국순당·여주시·고구마농가, 전통주 문화 복원 뜻 모아 설립
잡미 덜한 신선한 고구마로 빚고 상압증류 거쳐 풍부한 향 특징
전통 옹기 숙성 통해 부드러움과 깊이 감 더해
국순당 여주명주 증류소 전경

[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이중환은 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서 사람 살기 좋은 고장으로 강변마을 몇 곳을 들었다. 대동강변의 평양과 소양강변의 춘천 그리고 남한강 줄기인 여강이 흐르는 경기도 여주가 나머지 한 곳이다. 여주는 외곽의 산은 거칠지만, 내부는 평지가 완만히 펼쳐져 있고, 그 중심을 남한강이 관통한다. 비옥한 토지에 가려지는 곳 없이 햇살이 두루두루 내리니 살 만한 고장으로 꼽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조선 왕실이 이곳에서 직영으로 자채(紫彩)쌀을 재배해 먹은 일도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러한 좋은 자연조건이 비단 벼농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니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구마다. 여주 남한강변에는 사토질 땅이 넓게 펼쳐져 있어 양질의 고구마를 재배하기에 알맞다. 물 빠짐이 좋은 사토질 땅에서 자란 여주 고구마는 착색이 좋고 육질이 치밀하며, 특히 수확기인 8~9월의 일교차가 큰 기후로 전분 함유량이 높다. 한반도 어느 지역에서나 잘 자라는 고구마지만 여주의 고구마가 높은 품질을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구마는 일반적으로 밤고구마와 물고구마로 나뉘는데, 물기가 적고 퍽퍽한 느낌의 고구마를 밤고구마라 하고, 물이 많고 물컹한 고구마를 물고구마라고 부른다. 보통 전분 함유량이 23~25%이면 밤고구마, 18~19%이면 물고구마로 분류하는데, 물기가 적은 밤고구마는 전분 함유량이 높아 술로 빚어 발효했을 때 알코올 전환율이 높고 향이 진하다.

전분 함유량 높은 최상급 여주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 증류소주 려'

‘국순당 여주명주’의 싹이 튼 것도 바로 여주 지역 고구마의 이러한 특징 때문이었다. 여주시와 여주 고구마 농가는 정성 들여 재배한 고구마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국순당에 고구마를 활용한 전통주 사업을 제안했고, 이러한 제안은 마침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주류 개발을 통해 지역 전통주 문화를 복원하고 농촌과의 상생 경영 모델을 구축하고자 했던 국순당과도 이해가 맞아떨어지며 구체화됐다.

그렇게 여주시와 고구마 농가는 원료인 고구마를 제공하고, 국순당은 제품 개발과 마케팅, 유통 등을 담당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 2011년 4월 공동출자한 농업회사법인 국순당 여주명주를 설립했다. 이후 여주명주는 2012년 여주시 강천면에 증류소를 세워 2013년부터 본격적인 증류를 시작했고, 2016년 9월 첫 제품인 고구마 증류소주 ‘려(驪)’를 세상에 선보였다.

려는 여주명주가 자리 잡고 있는 여주(驪州)의 려와 한반도에서 증류소주가 처음 제조되기 시작된 고려(高麗)의 려에서 따온 이름이다. 여주의 려는 가라말(검은 말)을 의미하는데, 쌀 소주와 비교해 향이나 풍미가 한층 강한 고구마 소주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제품 라벨에도 강인함을 상징하는 검은 말을 담았다.

고구마 증류소주의 원재료인 고구마를 쪄낸 후 꺼내고 있는 모습.

좋은 증류주, 원재료 특성 오롯이 품어야

박용구 국순당 여주명주 대표는 좋은 증류주는 원재료의 특성을 잘 담고, 지역과 기술에 기반한 차별성과 다양한 맛의 개성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주명주는 기존 쌀 소주 중심의 증류식 소주와 달리 여주 지역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고구마라는 재료를 사용해 좋은 제법과 숙성으로 깊이와 품격 있는 술을 빚고 있다”며 “이렇게 만든 려를 통해 증류식 소주 시장을 넓히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구마 증류소주 려는 고구마만 사용해 만드는 술이다. 술을 빚는 데는 회사 설립에 참여한 24명의 농민의 밭에서 갓 수확한 고구마 중에서 상처 없이 좋은 고구마를 선별해 들이는데, 잡미를 없애고 고구마 특유의 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수확 직후 7일 이내 신선한 제품만 사용한다. 박 대표는 “우리가 평소에 먹는 고구마는 큐어링 저장이란 과정을 통해 당도를 높인 뒤 먹는다”며 “단맛이 높아지면 쪄서 먹을 때는 맛있지만 술을 빚으면 향이 줄어 이곳에선 갓 수확한 신선한 고구마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선별한 고구마는 섬유질이 많아 쓴맛을 내는 양쪽 끝단을 2~3cm씩 일일이 수작업으로 절단해 품질이 좋은 몸통 부분만 사용하는데, 이 또한 술의 향을 배가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준비를 마친 고구마는 세척해 500kg 단위로 쪄낸 뒤 25도(℃) 수준으로 식히는 냉각과정을 거쳐 분쇄기로 으깬다. 으깬 고구마는 3000리터 크기의 담금조로 옮겨져 교반이 이뤄지고, 이후 1만5000리터 규모의 저장조로 옮겨져 효모와 함께 일정 기간 발효과정을 거친다.

발효를 마친 술은 파이프를 타고 5톤짜리 황동 증류기로 이동한다. 고구마 증류소주 려는 상압증류 방식을 사용해 증류가 이뤄지는데, 일상 속 상압(1기압)에서 증류하는 상압증류는 다양한 아로마성 물질이 함께 증류돼 향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낮은 기압에서 증류하는 감압증류는 낮은 온도에서 증류가 이뤄져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증류를 마친 원액은 술이 숨 쉴 수 있게 유약을 바르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불에서 구워낸 옹기에 담겨 숙성에 들어간다. 옹기에 담겨 숙성과정을 거친 술을 알코올의 거친 맛이 누그러지고, 고구마 특유의 달콤하면서 향긋한 맛과 향이 더욱 깊어지고 노련해진다. 그렇게 18개월 이상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낸 술만이 비로소 세상에 내어진다. 박 대표는 “좋은 증류식 소주는 부드러움과 조화로운 맛을 위해 첨가물 같은 쉬운 방법보다 시간이 만들어 주는 숙성을 한다”며 “증류식 소주가 오래 익으면 익을수록 가치를 더해간다는 것은 누구나 마셔보면 알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순당 여주명주 숙성실 내 옹기.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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