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민호의 예고된 비극,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준목 2022. 9. 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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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여자농구월드컵에서 충격적 패배, 농구의 암울한 현실 직면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이 2022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농구월드컵 첫 경기에서 졸전 끝에 충격적인 참패를 당했다. 단순히 한 번의 패배를 넘어 한국 여자농구의 암울한 현실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남긴 경기였다.

정선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2일 호주 시드니 슈퍼돔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중국에게 44-107, 무려 63점차로 대패했다. 승부는 이미 경기 초반에 갈렸다. 김단비-박혜진-강이슬-양인영-진안으로 베스트5를 꾸린 정선민호는 1쿼터부터 중국의 압도적인 높이에 밀려 골밑 열세와 야투 난조로 고전한 끝에 1쿼터를 11-27로 크게 뒤졌고, 2쿼터에는 20-54, 34점차까지 벌어졌다.

한국은 점수차가 벌어진 후반에 사실상 승부를 포기하고 벤치 자원들을 일찍 투입하여 경험을 쌓게 하는 데 주력했다. 중국 역시 여러 선수들을 고르게 기용하면서도 스크린 플레이와 공격 리바운드 장악을 통하여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중국의 파상공세에 밀린 한국은 3쿼터가 마무리될 때 32-80, 4쿼터에서는 44-107로 매쿼터마다 점수차가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무기력한 완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중국은 한쉬(13점-15리바운드)가 더블-더블을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양리웨이-리멍(14점)등 여러 선수들이 고르게 활약했다. 박지현(우리은행)이 14점으로 최다 득점을 올리며 고군분투했지만 정작 주포역할을 해줘야 할 강이슬이 3점, 박혜진이 2점에 그쳤고, 김단비는 무득점이었다.

중국은 평균 신장이 186cm에 이르고 190cm 이상 장신도 5명이나 되는데 비하여, 한국은 평균신장 178cm에 최장신인 박지현과 김소담이 185cm에 불과했다. 한국 여자농구는 같은 조에 속한 A조팀들중 평균 신장이 가장 낮다. 우려한대로 리바운드 싸움에에서 한국은 중국에 29-58, 정확히 두 배차이로 압도당했다.

63점차는 역대 중국전 최다 점수 차 패배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이던 지난 2020년 2월 세르비아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60-100, 40점차 패배를 불과 2년 7개월만에 다시 경신하는 굴욕을 당했다. 한국이 40분간 올린 점수가 중국이 전반 20분 동안에 올린 점수에도 못미쳤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사실 이기기 어려운 경기라는 것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한국은 팀전력의 60% 이상이라는 에이스이자 간판 센터 박지수(KB국민은행)가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이번 농구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다. 배혜윤(삼성생명), 최이샘(우리은행) 등도 부상 등으로 합류하지 못해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특히 높이에 있어서는 대표팀 역대 최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무기력하고 굴욕적인 졸전이었다는 아쉬움은 피할수 없다. 높이에서 밀린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점수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진 진짜 이유는 몸싸움과 체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지난 달 국내에서 열린 라트비아와의 평가전 2연전에서도 드러난 문제였지만, 선수들이 국제대회의 강한 몸싸움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한 우리 선수들은 초반부터 경기가 안 풀리고 점수차가 벌어지자 금세 당황하고 주눅들었다. 

그나마 박지현을 제외하고는 중국을 상대로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시도하는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박지수가 없다는 핑계만 내세우기보다, 과연 우리 여자농구만이 보여줄수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과연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것을 보여줬다고 할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이는 선수들의 나약함이나 감독의 능력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쓸만한 유망주들, 특히 장신 자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여자농구의 빈약한 인프라가 문제다. 대표팀에 대한 충분한 지원 부족도 거론해야 겠다. 농구월드컵에 나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력이 한국보다 앞설뿐 아니라 오랫동안 체계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반면 한국은 농구월드컵 한달전에 이벤트성으로 열린 라트비아와의 평가전이 전부였다. 선수들이 국제대회와 외국 선수들에 대한 생소함-두려움을 떨쳐내기에는 부족했다. 

중국전 완패 후 인터뷰에서 박지현은 "센터가 밀린다는 것은 이미 생각했지만, 오늘 외곽도 그렇고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이긴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아쉽다. 다시 잘 생각해서 준비해야할 것 같다"라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선민 감독은 "대한민국 여자농구가 어렵게 농구월드컵에 출전하게 됐는데, 전력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박지수가 빠지고, 그 공백을 대체할 수 있는 인사이드 자원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었다"라며 "선수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좋은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더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의 경기다. FIBA 세계랭킹 13위인 한국은 세계 최강 미국(1위), 벨기에(5위), 중국(7위), 푸에르토리코(17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26위)와 A조에 속했다. 다음 상대 벨기에는 중국보다 랭킹이 더 높다.

정선민 감독은 남은 경기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묻는 질문에 "코트에서 뛰는 다섯명의 선수들이 내외곽의 공간활용과 득점력에 있어서 중국전보다는 나아져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농구월드컵이나 세계 최강의 선수들과 경쟁하는 경험을 해본 선수들이 많지 않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고, 앞으로의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냉정히 말해 팀전력은 답이 없고 남은 경기도 암울한 미래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그나마 '경험과 성장'에 애써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던 정선민 감독의 표정에서는 씁쓸하고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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