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일생에 한 번은 이런 여행..신비의 쌍봉우리 '마이산'

2022. 9. 23.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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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내륙 진안군 마이산에 다녀왔다. 사진으로 자주 본 곳이지만 실제로 보고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멀리서 보면 깊은 숲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들어가면 등산의 엄두도 낼 수 없는, 특이한 지질로 생성된 나이 일 억 살의 우리의 산이다. 또한 마이산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을 판타지 세계로 인도하는 영감 충만 공간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가을엔 마이봉, 겨울엔 문필봉, 봄엔 돛대봉, 여름엔 용각봉

마이산이 있는 곳은 전라북도 진안군이다. 전라북도 최남단 지역은 아니지만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머나먼 거리감이 있고 실제로 오지 느낌도 물씬 풍기는 곳이다. 마이산은 멀리서 보면 깊은 숲을 걸어오는 말의 모습이 연상된다. 말의 눈은 보이지 않고 살짝 긴장한 귀의 모습만 보이는 모습인 것이다. 마치 고양이가 귀로 마음을 쫑긋 드러내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 모습이 너무도 신비로워 마이산을 멀리서 보거나 사진을 보면 누구나 당장 달려가고 싶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작정하고 마이산 속으로 들어가보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듯한 지질 상태를 보게 된다. 산에 오를 엄두가 쉬이 나질 않고, 실제로 오를 수 있는 탐방로도 마이산 봉우리 단 한 곳밖에 없다.

마이산은 고원 지대에 있다. 기본 해발이 평균 400m 수준으로 높아 진안고원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한반도 북쪽, 북한 영토에 있는 개마고원이 평균 높이 1340m로 한반도의 지붕이라 불리듯, 진안, 무주, 장수군에 걸쳐있는 진안고원은 남도의 납작한 지붕이라 할 만하다. 진안 고원은 남쪽 지역의 전주 지역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지만 전주에 비해 진안은 내륙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마이산은 현재 이름이 마이산으로 굳어졌지만 현지인들 또는 산꾼들 사이에서는 계절에 따라 또 다른 네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기가 뿌연 봄에는 아련하게 보이는 두 봉우리가 쌍돛배를 닮아 돛대봉으로 불린다. 여름철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부른다.

마이산은 두 개의 봉우리 중앙에 있는 고개를 기준으로 마이산 남부지역과 마이산 북부지역으로 분류한다. 북부지역은 마이산도립공원의 실질적인 정문 역할을 하는 곳으로, 산 가까운 곳에서 마이산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북부지역으로 들어가 고개를 넘어 남부지역에 도착하면, 비로소 마이산의 산동네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돌탑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 쌓였다니! 믿을 수 없는 신비의 탑 마이산 돌탑과 돌탑에 어우러져 세워진 마이산 탑사, 봉우리 바로 아래에 있는 사찰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들러 기도를 했다는 은수사, 타포니 등 마이산 특유의 지질을 보여주는 거친 역암산의 피부 등도 남부지역에서 놀라며 보게 될 장면들이다.

마이산 은수사 청실배나무

마이산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마이산은 680m 숫마이봉, 686m 암마이봉으로 이뤄져 있다. 마이산이 형성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억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산의 지질이 매우 특이하다. 보통은 땅 속의 마그마가 지표면을 조금씩 밀어 올려 산을 형성시키거나 화산이 폭발하며 생기는 게 그동안 배운 얕은 지질 상식인데, 마이산은 자갈과 모래, 진흙이 섞여 서서히 딱딱해지다가 결국 역암이라는 암석으로 완성되는 거대한 역암 덩어리다.

▶북부지역, 남부지역 어디로 들어가도 마이산 전체를 볼 수 있다

숨넘어가는 508계단
우리는 진안 읍내에서 아침을 먹은 후 북부지역 정문을 통해 마이산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진안군은 지금도 여전한 시골 정서가 풀풀 풍기는 곳이다. 관광객을 집중적으로 상대하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냥 시골 모습 그대로이다. 우리는 구도심이랄 것도 없을 진안군 읍내의 오래된 길로 들어가 검색만 하면 늘 일등으로 뜨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백반을 먹었는데, 구운 김과 김치찌개, 나물 몇 가지가 밥상을 채우는 평범한 식탁이었다. 공원 정문을 지나자마자 주차장이 있다. 유명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주차비를 받지 않아 작은 감동을 받았다. 게다가 직원들의 방문객을 대하는 친근감 있는 태도, 방문객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궁금해하는 요소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센스에도 놀랐다. 특별한 여행지를 만든다는 것은 여행지의 사계절, 풍경, 매력이 좌우하는 게 사실이지만, 특히 도립공원, 국립공원의 경우 그곳을 돌보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뜻에서 마이산은 꼭 다시 한번, 그것도 한 3박 정도 일정으로 다시 찾고 말리라라는 결심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 물론 나와의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마이산 지질의 특징 가운데 타포니 지형이 있다. 절벽 표면에 구멍이 숭숭 나 있거나 동굴 모양을 한 곳을 말한다. 보통 풍화는 겉면이 깎이며 이뤄지는데 타포니는 암석 내부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 팽창하며 암석 겉면을 밀어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커다란 타포니는 수행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주차를 하며 걱정이 일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진안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강가의 독채 민박에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 그냥 여기서 뒹굴거리다 집에 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삭신을 움직일 때마다 우두둑 소리가 나는 그런 꼴이었는데, 마이산 속살로 가려면 피할 수 없는 고개 넘기를 할 생각을 하니 암담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마이산 고갯길은 두 개의 쌍봉 사이에 난 계곡이자 고개인데, 마이산 형성 과정에서 풍화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고개를 넘어가는 등산로도 있다. 기운이 펄펄하다면 걸어서 넘어가야 제 맛인데, 큰 고민 없이 우리는 등산로 대신 전기 자동차에 의지하기로 했다. 왕복 5000원을 내면 올라갈 때, 다시 내려올 때 이 문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에 의지해 고갯마루 입구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무런 감동도 없는 일반 도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길 역시 깊은 숲 터널을 지나는 코스로,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풍경을 지니고 있다. 고개 입구와 가까운 종점에 다다르면 고백, 사랑, 이성계 등 사진 촬영에 도움이 될 만한 SNS용 조형물 공원이 있다. 공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고개가 시작되는 지점이 나온다. 고갯길은 모두 데크로 조성되어 편리한 발걸음을 돕는다. 데크 계단은 고개 꼭대기를 향하는 양쪽 고갯길에 있다. 전기차 종점에서 고개 꼭대기까지 오르는 계단은 210계단 남짓, 이동 기구가 없는 은수사에서 고개 정상까지는 508계단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필자는 거의 숨 넘어가는 순간을 수차례 겪어야 했다. 508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은수사가 등장한다. 스피커에서 끝없이 스님의 독경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명 관광지 사찰 대부분이 그렇듯 은수사 역시 스님들은 수행 중인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지만 독경 소리가 마이산 절벽과 하늘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은수사는 고려 시대 때 이성계가 기도를 올리곤 했던 사찰로, 훗날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 왕이 된 점을 고려해 불당에 왕이 앉는 어좌 뒤에 꼭 따라다니는 일월오봉도를 붙여놓은 특이한 사찰이다. 은수사는 개인 소유의 사찰을 인정하는 태고종 소속인데, 워낙 유명한 관광지에 위치하고 있고, 가람을 확장할 공간도 없기 때문에 사찰과 불자들의 규모는 소박한 편이다. 그나마 산신각 하나 달랑 있던 것에 태극전, 대웅전, 요사체 등을 건립, 사찰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은수사라는 이름은 1920년 중창 때, 먼 옛날 이곳에서 이성계가 마신 물이 은처럼 맑았다는 전설에서 가져왔다. 이성계가 진안과 가까운 전주 지역 사람이고 마이산이 영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으니 이성계와 더불어 전해지는 일화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은수사에서 조금 내려가면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초소가 있는데, 이곳에 관람료를 지불해야 그 유명한 탑사와 돌탑들을 볼 수 있다. 탑사 아래에는 불교용품 판매점, 식당 건물도 있어서 작은 사하촌을 형성하고 있다.

마이산이 자연이 만든 풍광이라면 돌탑, 탑사, 은수사 등은 사람이 만든 세상이다. 일 년에 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는 탑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산길, 사찰 입구, 자갈이 많은 하천 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모습이 돌탑이다. 누군가 자신의 소원을 빌며 돌멩이 몇 개 쌓으면 또 누군가가 그곳을 지나다 그 위에 자신의 소원을 올린다. 돌을 올리다 보면 커다란 소원 탑으로 확대되기도 하고 실수 또는 가벼운 바람에 무너지기도 한다. 또 때로는 절묘한 자세를 유지하며 오랜 세월 지내기도 한다. 한국에 돌탑이 유독 많은 것은 뿌리 깊이 자리한 소박한 기복문화 때문이다. 돌멩이 몇 개 쌓아 올리며 자식, 가족, 건강, 시험 등 세상이 주는 온갖 숙제의 무난한 완수를 기원하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 문화 또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필자도 여행 중 숱하게 많은 돌탑을 보았고, 나 또한 수많은 돌탑을 쌓아보았다. 보통 사람들이 쌓는 돌탑의 돌은 많아야 열 개, 적을 경우 한두 개로 끝난다. 그러나 마이산은 달랐다.

▶숱한 영감을 던져주는 마이산 돌탑과 탑사

마이산 돌탑군 앞에 서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 많은 돌탑을 전부 사람 손으로 쌓았다고? 그리고 몇 백 년이 흘렀고, 그새 한반도를 때린 태풍이 몇 개 인데 그 형태를 지속하고 있다고?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마이산 돌탑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80여 기가 세워져 있다. 원래 108기의 돌탑을 만들었으나 어쩐 일인지 지금은 80여 기만 제 모습으로 간직한 채 보전되고 있다. 이 대단하고 불가사의한 돌탑은 누가 쌓았을까. 아마도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쌓았거나, 처음에는 한 사람이 쌓다 제자를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작업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작은 돌탑이라도 쌓아본 사람이라면 이는 혼자서 해야 할 일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들여 쌓은 돌탑이 무너지는 이유는 누군가 그 위에 자신의 소원을 돌과 함께 올려놓다 실수하기 때문이다. 마이산 돌탑에는 수많은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제발 돌탑에 손을 대거나 다른 돌을 올리지 말아달라’는 읍소들이다. 아마도 기존 돌탑에 자신의 소원을 올리려다 공든탑을 무너트린 참사가 적지 않게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읍소문들이다.

마이산 탑사(사진 진안군청)
그동안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곳에 돌탑을 쌓은 사람은 이갑룡이라는 처사다. 그는 스님은 아니었지만 수행을 위해 나이 25세에 마이산에 입산, 솔잎을 먹으며 지내다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고 만불탑을 쌓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평생 108기의 탑을 쌓았다고 한다. 혼자 쌓았든 여럿이 쌓았든 사람의 손이 자연석과 만나 완성된 탑이라는 점에서 마이산 돌탑은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단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역사적, 문화적 특이점을 근거로 CNN 등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여행 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별 세 개 만점을 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마이산 돌탑이 소중한 걸 안다면 돌탑 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수행하듯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성의는 보일 필요가 있다. 수백 년을 버틴 돌탑이니 앞으로도 굳건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진동 하나에도 신경 쓰는 문화적 수행 태도가 필요하다. 돌탑은 이제 불탑이 되어버렸다. 이갑룡의 손자가 돌탑 주변의 가람들을 구입해 태고종에 입교, 태고종 마이산탑사로 창건했으니, 신의 계시를 받은 점, 그 어떤 수행보다 값진 평생의 수행을 통해 대업을 이룬 점,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절을 지어 완성했다는 점 등과 연결해 보면 80여 기의 돌탑은 이제 어엿한 불탑이 되어 여행자와 불자들의 소원탑이 된 것이다.

돌탑은 언덕 꼭대기 대웅전 뒤에 있는 천지탑까지는 보아야 한다. 부부탑이라고도 불리는 천지탑은 돌탑 전체를 조정하는 돌탑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주변에 다섯 기의 수직 탑이 세워져 있는데, 바로 천지탑을 보호하는 오행탑이다. 숱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돌탑과 탑사에서 역시 수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여행자 개인의 마음이 정교하고 굳건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돌탑이 주는 자비로운 선물이 아닐까?

▶남부지역에 꼭 가봐야 하는 이유

마이산 남부지역은 꼭 가봐야 할 지점이다. 이곳에 마이산 쌍봉 중 등산이 가능한 해발 687.4m의 암마이봉(봉두봉)이 있는데, 얼핏 등산은 불가할 것 같은 느낌을 걷어버리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정상에 서서 수마이봉, 탑사 등 마이산의 명소들을 구경할 수 있다. 암마이봉까지 오르기가 힘들거나 귀찮은 사람은 정상 대신 나봉암 꼭대기에 위치한 비룡대 전망대를 애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룡대를 가느니 차라리 암마이봉을 찍고 내려오는 게 낫겠다는 체험자들도 많이 있다. 사실 가볍게 올라가 시원한 전경을 보기에 비룡대만한 곳도 없다. 날씨 맑은 날에는 평균 해발 400m 진안고원의 서늘한 풍경을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 단 수마이산 봉우리와 암마이산 봉우리를 제대로 보려면 역시 암마이산 등산에 도전해 보는 게 좋다.

남부지역 초입에는 고금당 나옹암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 금당사가 있었다고 하여 그 남은 가람을 고금당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에 있는 나옹암은 고려 때 승려였던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수행했다 해서 나옹암이라 불렀다. 나옹선사는 훗날 고려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그 유명한 보우대사, 무학대사 등 공력 높은 제자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건축물들은 비교적 한국적이고 평범하지만 지붕이 황금색인 등 이국적 풍경 때문에 마이산 남부지역 주차장을 통해 마이산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들르게 되는 조용한 명소이다. 실제 금당사도 이곳 남부지역에 위치해 있다. 금당사는 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단,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지금 고금당 자리에서 현재 위치로 이동, 그 뒤로 중건 작업에 열중, 오늘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300년 된 대웅전, 극락전, 지장전, 삼성각, 대방 등 고풍스러운 가람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으며 석탑, 목불좌상, 괘불탱 등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찰 마당에는 널찍한 연못과 보살 입상 등이 세워져 있어서 소원 빌기와 명상의 발길을 옮기기에 그만이다.

▶진안 가위박물관

마이산에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위박물관을 보는 순간, 마이산의 모습이 가위 손잡이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안 가위박물관은 진안군 용담댐 건설 때 수몰된 지역에서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가위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 이후 한반도 가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전 세계 가위 수집이라는 일로 확대됐으며, 그렇게 모인 가위의 양과 종류가 너무도 많아지자 결국 박물관을 세워 시민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간단하고 어설픈 시골 박물관이 아니다. 사실 처음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화려한 서양 가위, 환상적인 동양가위, 한국의 가위, 진안 지역의 가위 등 수많은 가위의 종류를 보며 점차 빠져들고 말았다. 또한 가위 전시뿐 아니라, 가위의 과학, 인물과 얽힌 가위 스토리, 황새를 닮은 가위, 난파선 가위 등 멋, 해학이 담긴 가위 디자인과 유명 인물과 특별한 가위의 인연 등도 소개하고 있어서 놀라움은 더욱 커진다. 이 밖에도 포도가위, 캘리그라프가위, 바이킹가위, 야전병원가위, 아르누보가위, 빅토리아앤티크가위 등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가위 이야기 또한 색다른 상식거리로 손색없다. 2층 기획 전시실에서는 가위 보관 및 거치대, 기능 가위의 종류 등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가위들을 선보이고 있어서 친근감을 더해준다.

마이산을 떠나기 전 정문 근처 호수에 있는 사양제에 잠시 앉았다. 마이산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는 전망에 넒은 호수, 얕은 능선을 가득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꽃들, 분수, 야간 조명 등 그야말로 도립 공원의 아름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곳이다. 마이산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여행길이었다. 특이한 지질과 신비로운 돌탑, 다소 거친 풍경의 질감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나누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를 내 인생에 비추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자연은 때로 뜻밖의 화두를 던져주기도 한다. 마이산의 그것은 꽤 묵직했고 긴 여운을 남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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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북부주차장 전북 진안군 진안읍 마이산로 127

마이산 남부주차장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0-21

[글 이영근 사진 안동수(다큐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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