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촉발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태업 아닌 태업' 유행?

명순영 2022. 9. 23. 05: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신드롬이 전 세계 직장인을 뒤흔들고 있다. ‘Quiet quitting’을 직역하면 ‘조용하게 직장을 그만둔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안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 방식을 의미한다.

▶구인난에 초과근무 일상化

‘조용한 사직’ 열풍은 뉴욕에 거주하는 엔지니어(자이드펠린 @Zaidleppelin)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짤막한 영상을 계기로 시작됐다. 자이드펠린은 영상에서 “최근 ‘조용한 사직’이라는 용어를 배웠다”며 “일이 곧 삶이 아니며(Work is NOT your life),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성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Your worth is not defined by your productive output)”고 말했다. 이 영상은 400만 건 가깝게 조회됐다. 미국에서 ‘조용한 사직’ 현상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노동시장은 극심한 구인난에 시달려왔다. 코로나 유행 초기에 해고된 노동자들이 완전히 은퇴해버린 영향이 적지 않았다. 아울러 육아 등 돌봄 노동 등으로 근로자의 노동 시장 복귀는 더디기만 했다. 높은 실업수당에 취해 고용시장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노동자도 부지기수였다. 문제는 남은 직원들. 이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과 함께 초과 근무 등 심각한 노동환경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CNN은 전문가 멘트를 인용해 고용주가 코로나19 이후 일어난 대량 사직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남은 직원에게 추가 업무가 부과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항공업은 노동력 부족으로 남은 인력이 고생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히며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항공수요 회복으로 일터로 돌아가고 있지만, 늘어난 수요만큼 인력이 회복되지 않아 노동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더군다나 노동자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탓에 실질적인 임금 하락을 겪고 있다. 기본 근무 시간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초과 근무까지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조용한 사직’은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 매체 ‘더힐’은 “조용한 사직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MZ세대가 주도한다”며 “코로나19 대유행이 초래한 ‘대퇴직(Great Resignation)’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조용한 사직은 미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지난해 중국 젊은층 사이에서는 ‘탕핑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고 최소한의 벌이로만 생계를 유지하자는 생활 태도를 뜻한다. 중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과 청년층의 박탈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사회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의미를 담았다는 해석도 나왔다. 국내에서도 회사 생활에만 매진하지 않겠다는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단어가 적지 않다. 미래보다 현재를 즐기는 ‘욜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일과 삶의 균형을 따지는 ‘워라밸’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은 “미국에서의 조용한 사직 현상은 한국에서 이미 진행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문화가 오랜 기간 자리 잡은 가운데, 이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일각에서는 조용한 사직은 태만, 낮은 업무 몰입도, 의욕부진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데 ‘조용한 사직’은 조직 내에서 ‘빠르게’ 도태되는 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은 ‘조용한 사직’ 문화가 생산성을 낮출 수 있다고 우려하는 한편, 다각도로 업무 몰입도를 끌어올리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9 to 6’이라는 획일적인 출퇴근 근무형태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4주 160시간 내에서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선택해서 일할 수 있는 자율근무제를 적용 중이다.

‘복지부동’이라는 단어가 상징처럼 돼 버린 공무원 사회도 변하고 있다. 정부는 원격근무가 가능한 장소와 시간을 확대하고, 민원이 몰리는 근무시간 외 나머지 시간은 유연근무를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이끄는 등 젊은 공무원의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 명순영 기자 사진 유튜브 갈무리,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47호 (22.09.27)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