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쥐꼬리 이자' 청약통장, 금리 올려야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이자 놀이를 하는 금융상품이 있다. 주택청약통장이다. ‘1인 1통장’이란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가입자가 많아졌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2800만 명을 웃돈다. 금액으로는 20조원이 넘는다.
이런 청약통장에는 2년 이상 돈을 맡겨야 주택청약 1순위 자격(투기과열지구 기준)을 얻는다. 실제로는 훨씬 길게 목돈을 묶어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청약가점제에선 통장 가입 기간이 길수록 당첨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민간 아파트를 청약할 때 통장 가입 기간에서 만점(17점)을 받으려면 15년 이상 통장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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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00만 통장 가입자 저금리 감수
6년째 동결, 시중금리 격차 커져
법령 취지 맞춰 이자 현실화해야
」
만일 청약통장에서 시중은행 수준 이자를 준다면 가입자가 불만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청약통장 최고 금리는 연 1.8%다. 2년 이상 돈을 맡길 때 적용하는 금리다.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2.5%)보다도 상당히 낮다. 정부는 2016년 8월 이후 한 번도 청약통장 금리를 조정하지 않았다. 시중은행이 꾸준히 예금금리를 올리는 동안 청약통장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한 셈이다. 결국 청약통장 금리는 은행의 2년짜리 정기예금이나 적금보다 훨씬 낮아졌다.
원래부터 청약통장 이자가 이렇게 가입자에게 불리한 건 아니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는 연 10%의 이자를 줬다. 이후 청약통장 금리를 내리긴 했지만 대체로 한은 기준금리보다는 높게 유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한은이 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자 한때 청약통장에 돈이 몰리기도 했다. 한은 기준금리(연 2%)보다 청약통장 금리(연 4.5%)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청약통장에 연 3.3~4%의 금리를 적용했다. 당시 한은 기준금리는 현재와 같은 연 2.5%였다.
엄밀히 보면 정부가 지난 6년간 청약통장 금리를 동결한 건 법령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는 은행 정기예금 평균금리를 고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려’라는 애매한 표현이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줬다. 청약통장은 고정금리가 아니다. 수시로 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변동금리 상품이다. 금리 결정권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갖고 있다. 물론 청약통장에 있는 돈을 정부가 허튼 데 쓰는 건 아닐 것이다. 주택도시기금이란 이름으로 돈을 모아 저소득층 주거 지원 등에 사용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청약통장 금리가 낮을수록 정부는 이익을 보겠지만 가입자는 그만큼 손해를 본다. 일반 금융상품이었다면 가입자가 일찌감치 돈을 찾아 다른 투자처로 옮겼을 것이다. 그런데 청약통장은 ‘쥐꼬리’ 이자가 싫다고 상품을 해지하기가 쉽지 않다. 통장 가입 기간이 제로가 되면 지금까지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청약 자격을 완전히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다음 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속도가 심상치 않아서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 달 12일 열린다. 한은이 빅스텝을 밟으면 기준금리(연 3%)와 청약통장 금리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언젠가 좋은 집에 당첨될 것을 기대하고 저금리를 감수했던 가입자들의 생각이 바뀌는 조짐도 나타난다. 지난 7월을 고비로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서울만 놓고 보면 석 달 연속 줄었다. 2009년 주택청약종합저축 출시 이후 줄곧 증가했던 가입자 수가 감소한 건 처음이다. 최근 주요 지역에서 집값이 하락세로 접어든 영향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 등으로 신규 아파트 분양가도 비싸지고 있다. 어렵게 당첨이 되더라도 예전만큼 시세차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어설프게 분양을 받으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청약통장 가입자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일부 지역에선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도 달라졌다. 지난 21일에는 세종시를 제외한 지방의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을 일제히 풀기로 했다. 규제지역에서 벗어나면 분양권 전매제한 같은 청약 관련 규제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청약통장은 잘만 하면 이자 수익과 주택청약의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수 있는 상품이다. 현재는 청약 여건도 나빠졌고 금리도 불리하다. 두 마리는커녕 한 마리 토끼도 제대로 잡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정부가 청약 규제를 대폭 풀었으니 이번엔 청약통장 금리를 손봐야 할 때다. 이미 상당히 늦었지만 더 늦으면 곤란하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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