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생활건축] 부동산계의 이케아는 사기였나
고급 디자인과 건축을 누구나 쉽게 향유하는, 이른바 건축의 민주화가 가능할까. 이런 아이디어로 필리핀에서 최초로 유니콘 기업이 된 회사가 있다. 2015년 설립한 필리핀의 건축 스타트업 회사인 ‘레볼루션 프리크레프티드(Revolution Precrafted)’다. 자하 하디드·장 누벨 등 세계적인 건축가가 디자인한 주택을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설치만 하면 된다고 홍보했다. 이른바 조립식 주택이다. 한 채당 가격은 운반비·설치비 등을 빼고 12만 달러 선이었다. 짐바브웨부터 호주까지 세계 어디서나 주문하면 60~90일 안에 집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부동산계의 이케아가 회사의 목표였다.
이 꿈 같은 프로젝트에 신뢰성을 키운 것은 CEO였다. 호세 로베르토 안토니오, 필리핀의 부동산 재벌 가문 출신인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는 셀럽이기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훌륭한 디자인이 소수의 특권층에게 국한될 필요가 없고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투자가 이어지고 주문이 잇따랐으며 회사는 유니콘에 올랐다.
그런데 2020년부터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실제로 스타 건축가가 디자인한 조립식 주택을 시장에 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택 구매자와 직원의 고발 인터뷰가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소송전에 휘말렸다. 회사의 입장은 이랬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계약 차질이 불가피하다.”
팬데믹 탓에 불발된 꿈이었을까, 애초부터 사기였을까. 최근 필리핀 검찰은 사기를 치거나 횡령하려고 한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기각시켰다. 레볼루션 측은 주택 제작에는 손 떼고 디자인만 팔겠다는 입장이니, 여하튼 부동산계의 이케아라는 포부는 꿈으로 끝났다.
국내 건설업계에서도 조립식 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최소한의 조립만 할 수 있다면 인건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터다. 현장 제작 위주의 과거 건설 공법이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토대로 가능한 것이었다면 이제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인재(人災)가 발생했을 때 강화된 처벌도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조립식 주택에도 한국만의 남다른 취향이 있는데, 우리는 모듈러 주택에 집중되어 있다. 공장에서 제작한 아파트라고 보면 된다. 표준화된 모듈의 공간, 즉 아파트 한 층 일부를 사각형 상자로 만들어 현장에서 마치 레고처럼 쌓고 연결하는 식이다. LH가 지난 19일 세종시에서 착공한 모듈러 통합공공임대주택 단지는 총 416가구 규모다. 지하 주차장 등 기초공사를 제외하고 공장에서 만든 집을 현장에서 설치하는 데 일주일이면 끝난단다. 아직 시장 규모가 작지만, 갈수록 비싸지는 인건비와 어려운 공사 환경을 생각하면 공장에서 뚝딱 만드는 집의 인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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