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프레임' 탈출할 수 있을까 [이현상의 시시각각]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고, 보수는 부패하지만 능력이 있다는 이미지가 한때 있었다. 그러나 지난 대선의 프레임은 반대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후보에게 무능 낙인을 찍었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의 비도덕성을 파고들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그 대결구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아직 대선 연장전을 치르고 있다.
당 대표가 기소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총공격하고 있다. '정쟁' 정도가 아닌 '전쟁' 수준이다. 이번에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포격 대상이다. 코너에 몰린 야당에 외교 일선의 대통령 비판을 자제하는 매너를 기대하긴 어렵다. 매끄럽지 못한 대통령의 조문 과정을 난타하는 전선에는 탁현민 전 청와대 비서관이 앞장서 있다. '의전 전문가'답게 문구를 조문록 왼쪽 면에 적느냐, 오른쪽에 적느냐까지 시비를 걸었다. 이만하면 스토커 수준이다. 오죽하면 주한 영국대사가 "장례식장에 참석한 것 자체가 조문"이라고 말리고 나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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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은 실수와 미숙함이 빚는 논란
이번 영·미 순방서도 그대로 반복
야당 트집 탓말고 내부 점검부터
」
문제는 이런 치졸한 공격마저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빌미를 대통령실과 정부가 자꾸 제공한다는 점이다. 보통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내치에서 까먹은 점수를 벌충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이번까지 포함한 두 번의 순방에선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잦은 실수와 부주의 등으로 정치 초보 대통령의 미숙함만 부각됐다. 이런 역효과를 반드시 야당 공격 탓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조문 누락 논란은 대통령실이 조금만 더 주의했다면 피했을 사달이다. 전용기 도착 공항에서 시내까지 60여㎞의 거리, 참배 인파로 혼잡한 교통 상황, 200여 명의 각국 정상급 인사에 대한 복잡한 의전 등을 생각하면 더 서둘렀어야 했다. 기본 중 기본 업무를 소홀히 했다고밖엔 볼 수 없다.
한·일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 회동도 성과를 거론하기엔 민망하다. 대통령실은 조율이 덜 끝난 한·일 양자회담 개최를 공식화하는 우를 저질렀다. 성과 조급증 탓에 외교의 기초 기술인 포커페이스를 잃었다. 반면에 일본은 자국 언론에 회담 무산 가능성을 흘리며 주도권을 잡았다. 결국 우리 대통령이 일본 총리가 회의하는 건물을 찾아갔다. 애걸복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다. 아무리 급해도 의연함을 잃은 외교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과의 48초 회동을 했다. 통역까지 곁들인 그 짧은 만남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한·미 통화 스와프 같은 현안이 얼마나 '밀도 있게' 전달됐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당초부터 11월 중간선거와 미국 내 인플레이션 등을 고려했을 때 회담 성과 전망이 밝지는 않았다. 이 점을 도외시한 채 대통령실이 기대를 너무 부풀린 측면도 없지 않다. 짧은 회동은 바이든의 일정 축소 때문에 벌어진 의외의 일이지만, 어쨌거나 부담은 윤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비속어 구사 논란에 회동 자체가 묻히는 양상이다.
대통령 주변의 도덕성 강조를 위해 즐겨 인용되는 명언이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심조차 받아선 안 된다"는 문장이다. 추문에 휩싸인 아내와 이혼하면서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이다. 사실 여기엔 반전이 있다. 카이사르는 추문의 당사자였던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를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력 가문의 일원인 그가 호민관으로 선출되는 일을 돕기까지 했다. 정치 9단 카이사르의 진면목이다.
무능 프레임의 덫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이런 능수능란함이 필요하다. 이걸 포용이라고 포장해도 좋다. 이상적 목표를 위해 현실적 수단을 구하는 것이 정치다. 혼자 못한다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금 대통령 곁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내부 이견자 하나 제대로 품지 못하는 솜씨와 도량이라면 기대가 난망이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을 의심받는다.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은 무능을 의심받을 권리조차 없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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