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차수벽은 뭘 모르는 소리..지하주차장을 없애야 한다 [남택이 고발한다]

남택 2022. 9. 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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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태풍 '힌남노' 폭우로 잠긴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실종됐던 주민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지난 6일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참사를 비롯해 각종 수해가 발생할 때마다 '실종자가 에어포켓 속에서 생존해 골든타임 안에 살아 나올 것'이란 기대가 가득하다. 마치 조금만 서두르면 실종자를 구조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듯하다. 실제로 지하주차장 천정을 보면 큰 보와 작은 보가 우물 정(井)자로 돼 있어 물이 차오르더라도 정(井)자의 네모 칸마다 에어포켓이 생길 것만 같다. 네모로 구획이 되는 건 맞지만 그 안엔 조명이나 소방 감지기 등을 위한 매입 박스와 관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그 파이프를 통해 공기가 빠져나가면 물은 끝까지 차오른다. 그러니 지하주차장에 물이 완전히 차오른 상태에서 누군가 생환하기를 바라는 건 기적을 바란다는 것과 같다. 이번에 포항 지하주차장에서 살아 나온 두 사람은 정말로 천운 속에 생환한 거다.

지하 공간에 물이 찼을 때 실제론 에어포켓이 생기기 쉽지 않다. 배관(노란색)을 통해 공기가 빠져나가면 물이 끝까지 차오르기 때문이다. [남택 페이스북 캡처]

이런 사정을 모르는 채 최근의 수해 이후 마치 차수판이 대단한 재난 예방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본다. 하지만 물이 차수판 높이를 일단 넘기만 하면 지하주차장엔 오히려 침수지역 물이 모두 쏟아져 들어와 버린다. 이번 참사에서 확인됐듯이, 지하 공간은 애초에 침수에 지극히 취약하다. 쉽게 물이 찬다는 게 아니라 빠져나가기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포항 침수 참사로 희생된 7명 중 6명도 차 밖에서 발견됐다. 차에서 빠져나오고도 끝내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한 걸 보면 폭우가 쏟아질 때 물이 얼마나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차수판을 높이 올리면 된다고? 자, 이 질문에 대한 잔인한 답은 이거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인근의 다른 아파트나 대형건물 지하주차장 차수판 높이보다 10㎝만 더 차수판을 높이면 폭우나 강 범람 때 넘치는 물은 우리 아파트가 아니라 다 그리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게 과연 정답일까. 또 사람 무릎 높이 정도의 차수판은 사람이 얼마든지 넘을 수 있기에 대피가 가능하겠지만 주차장 입구에 차수판을 설치하면 지하의 차량은 한 대도 못 나가게 돼 결국 근본적 대책은 못 된다.

침수된 포항 인덕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생존자는 천정의 파이프에 매달린 채 그 위의 공간에서 숨을 쉬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지켰다. [뉴시스]

지하에 배수구와 배수펌프가 있으니 괜찮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역시 누수 대비용이지 이번 포항 참사 때처럼 폭우로 쏟아져 들어오는 침수 대비용은 아니다. 또 통상 지하 제일 아래에 전기실이 위치하기에 물이 차면 감전 위험은 물론 침수로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도 처음의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발전기실에 물이 차 펌프를 돌리지 못한 탓이 아니었나. 이번 포항 때처럼 대형 침수 피해 등이 발생하면 대책을 마련한다면서 근본적 해결보다 규제가 또 다른 규제를 낳는 식으로 시민을 억압해왔다. 매번 또 다른 위험에 노출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마땅한 대비책이 없다. 그러니 허술한 대비책 얘기만 자꾸 반복할 게 아니라 아예 이참에 우리가 주거생활의 필수로 여기는 지하주차장을 다시금 생각해봤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하주차장은 주차를 위해 우리의 안전을 일부 포기한 것일 뿐 결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공간은 아니다. 우리가 통상 건축을 하는 서울 대지의 지질은 5~10m 사이에서 지하수위가 확인된다. 지하 3층 정도만 내려가도 물속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어디든 좀 낮은 곳에 땅만 파면 우물이 생기던 그런 곳에 우리가 지하주차장이 달린 아파트를 짓고 산다.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땅을 깊이 파야 하는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은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땅을 깊게 파는 것일 뿐 건축 공법상으론 오히려 무리수에 가깝다.

서울 삼성동에 현대차그룹이 만들고 있는 글로벌비지니스센터(GBC) 공사 현장. 지상 105층, 지하 7층으로 건설된다. 중앙포토

건물의 지하주차장을 가 보면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을 많이 볼 수 있다. 지하 토압에 대비하는 거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압 때문인 경우가 많다. 건물 올리느라 땅을 팔 때도 흙 무너지는 것보다 물 막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지하 5, 6층까지 파 내려가면 부력 탓에 이를 고정하는 앵커를 추가로 박기도 한다. 초고층 오피스 빌딩뿐 아니라 웬만한 도심 아파트와 백화점만 가도 지하 5, 6층 지하주차장을 흔히 볼 수 있기에 우린 이게 당연한 줄 알고 이용한다. 그런데 실은 이런 깊이의 지하주차장은 한국에만 이례적으로 많다. 이 정도 높이로 파 내려가는 차수 공법은 유럽의 토목회사들이 중동 등에서 개발하고 세계적으로 수요가 없어서 쓰기 어려웠던 신기술을 30여년전 부터 한국만 수요가 폭발해 비싼 기술비와 장비를 들여와 사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 눈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이 지하 5, 6층 주차장인 셈이다.

이 모든 게 법과 규제 탓이다. 온 사회가 주차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법으로 주차 공간 설치를 의무화한 탓에 세계에 유례없는 지하 6, 7층 깊이를 늘려왔다. 지자체에 따라 제각각 다르지만 대략 지상 공간을 영위하려고 그 공간의 절반쯤은 차를 위해 쓴다. 집에 2평짜리 방이 없어 노모는 모실 수 없어도 지하에 차를 누일 4평 공간은 확보하고 사는 꼴이니 이쯤 되면 사람이 먼저인지 차가 먼저인지 모를 지경이다. 모두 규제가 만든 환경이다.

지난해 8월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아파트 단지 앞에 생긴 대형 싱크홀. 근처에서 진행 중인 지하철 8호선 공사에 따른 지반 약화가 원인으로 추정됐다. 뉴스1

비단 침수 위험뿐만이 아니라 지하주차장 확보를 위한 지하 난개발도 생각해볼 문제다. 지하공간은 일견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듯 보이지만 환경유지와 안전을 위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새로 건축할 때도 공사기간과 비용이 더 들어간다. 특히 미래에 재건축을 할 때 철거에도 거대한 매몰비용이 들어가는 등 큰 제약을 남긴다. 생각만큼 효율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요즘은 대규모 건물을 공사할 땐 지하 안전영향평가를 받긴 한다. 하지만 용적률·건폐율로 개발 제한하는 지상과 달리 지하는 그런 수단이 전혀 없이 마구 개발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런 난개발로 지하수위가 변하고 지하환경이 변해 싱크홀이 생긴다. 또 어딘가 만들어진 대규모 지하 공간은 이번에 경험한 것처럼 침수나 범람 시 물이 차올라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이 된다.

차량의 소유만 줄여도 지하 공간의 대부분은 필요 없는 것이니 우리의 거주환경은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 법부터 바꾸고 규제부터 늘리는 방법보다는 우리의 생활패턴과 사고방식의 전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택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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