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건 더 열린 정당 아닌 더 강한 정당"

김남중 2022. 9. 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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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책임정당: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이언 샤피로 지음
노시내 옮김, 후마니타스, 364쪽, 2만원
정당과 국회에 대한 대중의 실망은 깊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세계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정당을 제쳐두고 직접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저명한 민주주의 이론가 두 명이 공저한 ‘책임정당’은 정당의 결정에 대중의 참여를 확대하는 추세가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정당의 약화, 정치의 무기력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국민일보DB


민주주의를 증진한다는 논리로 정당의 후보와 지도자 선출에서 대중 참여를 확대하는 추세가 오히려 정당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통념에 반한다. 한국은 물론 세계 다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 전당대회, 국민경선, 예비선거,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시민 참여를 늘리고 대표성을 넓히는 정당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약화되고 정당이 극렬 지지자들에게 휘둘리는 현상이 강화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 직접 참여의 여파로 적극적 지지자들이 후보와 공약을 결정하고 정당이 여러 이익을 폭넓게 대표하는 능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정당에 대한 실망을 누적시켰다는 이 책의 시각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공동 저자인 이언 샤피로(예일대 정치학과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민주주의 이론가 중 한 명이다.

책은 “많은 나라에서 기성 정당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유권자의 심판은 옳다”면서 “그렇더라도 정당을 무기력하게 만들면 훨씬 더 심각한 불안정이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금 정당의 진짜 문제는 “정당이 힘이 너무 없다는 것”이라며 당 지도자 선출이 직선제 쪽으로 흘러가는 추세를 되돌려 놓고, 예비선거를 통한 후보 선출을 중단하고, 국민투표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극복하라고 조언한다.


요컨대, 정당의 무력감을 해결하겠다면서 대중에게 문호를 개방한 건 잘못된 처방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인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려고 예비선거와 당원대회를 도입했는데, 이는 당 지도부를 약하게 만들고 일관성 있는 전국적 정강 정책의 마련을 저해했다”고 비판한다. “그와 같은 개혁의 설계자들이 정당 엘리트들과 하수인들에게서 통제권을 되찾아 온 것은 옳은 일이었으나 그들은 일반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대신, 적극적 지지자들, 그리고 조직된 단체들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그래서 정당은 대통령 후보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약화됐다. 강력한 정당이었다면 버락 오바마나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현대 정치의 특성으로 ‘약한 정당’과 ‘강한 팬덤’을 꼽는 이들이 많다. 저자들은 팬덤정치, 포퓰리즘, 정치의 무책임성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열린 정당’이 아니라 ‘더 강한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당의 약화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미국과 영국의 정당 체제를 비교하는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들은 크고 강한 두 개의 정당이 경쟁하는 양당제가 최선이라고 보고 그 모범으로 영국을 꼽는다. 반면 미국 정치는 양당제지만 약한 정당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영국은 든든한 국민건강보험을 가졌으나 미국은 오바마케어를 매우 취약한 상태로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책은 오바마케어를 “대다수 유권자의 장기적인 이익에 봉사하는 정책을 정부가 법으로 제정하기 어렵게 하는 약한 정당 체계의 상흔”이라고 묘사하고,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각 정당이 분권화를 결정한 것이 정당이 약화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양당제에서 대다수 유권자의 장기적인 이익에 봉사하는 정책을 생산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는 이유는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양당제에서 협소한 유권자 층에 호소하는 일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양당제에서 두 정당은 핵심 지지층의 이익만 챙기는 일을 자제하게 된다.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두 정당은 중위 투표자를 향해 수렴되게 마련이다. 또 영국의 예처럼 극우정당이 등장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양당제보다 다당제에서 정부 지출이 더 크다는 것이 우리의 예측이다”라고 말한다. 다당제에서는 정당 연합이 불가피하며 “연정은 대다수 유권자에게 언제나 유익한 정책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보다는 자기 구성원에게 유리한 정책을 흥정하고 그 비용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책은 영국과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정당 체제를 광범위하게 비교 분석한다. 중남미 부분을 보면, 대통령중심제와 약한 정당의 결합으로 정치 체제를 분석하고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폭넓은 지지층을 고려한 공공 정책을 입안하고 이행할 수 있으려면 정당의 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하고, 정당의 규율도 완화할 것이 아니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현대 정당이 직면한 위기는 참여의 부족이나 민주주의의 부족, 대표성의 부족 등이 아니라 무기력이고 무능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또 정당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추진되는 대중 참여 강화 조치들이 초래하는 역효과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무엇보다 정당을 민주주의의 핵심 기관으로 강조하고 강한 정당을 정당 개혁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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