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학은 교수 창업하면서 지분 기부..생태계 강화하는 자양분"

최은경 입력 2022. 9. 22. 17:14 수정 2022. 9. 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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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31) 김경환 성균관대 창업지원단장
김경환 성균관대 창업지원단장이 20일 경기도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로비에서 포즈를 취했다. 우상조 기자


2만7900달러(약 4000만원) vs 40만2900달러(약 5억7000만원)-. 지난 2017년 기준 한국과 미국 대학·공공 연구소의 기술 이전 계약 건당 수입이다. 특허 출원 건수 대비 기술을 이전하는 기술 이전율은 한국과 미국이 각각 35%, 40% 수준으로 5%포인트 차이에 그치지만 수입 차인 15배로 벌어진다. 기술 이전 사업화 효율성(연간 연구비 지출 대비 연간 기술 이전 수입) 역시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실험실 창업’ 늘었지만 효율성 낮아


지난 7월부터 성균관대 창업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김경환 글로벌창업대학원 창업학과 교수는 이런 격차가 생기는 이유와 국내 대학의 개선 방향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한 달간 미국 주요 대학 4곳을 방문해 실험실 창업 환경을 살펴봤다. 그는 글로벌창업대학원장과 성균관대기술지주 대표도 맡고 있다.
김경환 성균관대 창업지원단장이 20일 경기도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한국과 미국의 교수 창업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 교수는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존스홉킨스대·조지워싱턴대 등 미국의 주요 대학을 돌며 국내 대학이 벤치마킹할 점을 찾았다. 의외인 것은 이 대학들은 전반적 구성원을 위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운영하고 있지만 교수 창업을 위한 별도의 지원 제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교수 창업 시 최고경영자(CEO)나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상임직 겸직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업가정신을 강조해 기술 이전과 사업화가 활발하다.

김 교수가 현지에서 만난 UC버클리 박사 출신 이근우 진에딧 대표는 “UC버클리는 교수 창업 시 별도의 자금 지원 제도가 없어 한국의 환경과는 아주 다르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역시 여건이 비슷하다. 창업 교수를 위한 제도나 지원이 없으며 교내 연구시설을 창업에 활용할 수 없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Q : 최근 국내 대학이나 연구소 창업이 활발해졌다.
A : 기술 이전, 사업화, 실험실 창업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효율성이 낮다. 기술지주회사 등 기술 이전을 위한 조직이 많이 설치됐음에도 사업화의 질적 성장이 이뤄지지 못했다. 대학 내의 기술 사업화와 상용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교수 평가에 창업 성과 포함해야”

Q : 미국 대학은 어떻게 다른가.
A : 우선 평가 시스템이 다르다. 존스홉킨스대에서는 교수 평가 때 논문 성과가 아닌 연구 수주 성과를 더 중요하게 본다. 이 대학의 정년 보장 교수진이 약 500명인데, 연구실을 운영하는 책임교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외부 연구를 수주해 50%를 학교에 기부하고, 나머지 50%로 연구실을 운영한다. 연구실에서 일하는 박사후 연구진의 연봉은 1억원 이상이며 다른 대학의 교수진보다 인재로 평가받는다. 조지워싱턴대에서는 교수 창업 시 교수직 이외의 업무에 20% 이하로 참여하면서 수업 시간만 지키면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Q : 미국 대학의 실험실 창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A : 미국 대학 특성은 학교 교비로 창업을 지원하지 않고, 교수 창업을 했을 때 CEO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우리나라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졸업생의 역할이 컸다. 특히 스탠퍼드대는 졸업생이 교수 창업의 어마어마한 후원 세력이더라. 그 졸업생 중 창업가가 많다. 그런 선순환이 잘 돼 있다. 우리나라는 동문과 그런 연결고리가 미흡하다. 이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창업지원단 부단장이던 3년 전부터 교수가 창업하면 재정 기여 차원에서 자본금 1억원이 될 때까지 지분 7%를 학교에 기부하도록 했다. 과거에는 처음 한 번만 지분 3%를 받거나 500만원을 받는 게 전부였다.

Q : 지분 기부 사례를 소개하면.
A : 박웅양 성균관대 의대 교수를 들 수 있다. 건강검진 유전체분석 기술로 지니너스를 창업해 지난해 11월 코스닥에 상장했는데 기업 가치가 4000억원 정도다. 학교가 가진 지분은 현재 2.5% 정도다. 처음에는 교수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한 명 한 명 설득했다.

Q : 우리나라는 왜 실험실 창업 선순환이 안 된다고 보나.
A : 문화적인 차이가 크다. 자발적 기부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성공한 뒤에도 학교에 기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교수가 창업한다고 해도 학교의 지원이 따로 없는 데도 내가 성공할 수 있게 학교에서 도와줬다고 생각하더라. 또 교수 창업의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원생들도 창업으로 가기 어렵다. 교수들의 연구 결과로 제자가 창업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에서 그런 사례가 많았다. 경영이나 시장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제자가 CEO를, 교수가 CTO를 맡는 시스템이다.


졸업생 후원으로 선순환 구축

Q : 창업 환경도, 문화도 많이 다른 미국에서 배울 교훈은 뭘까.
A : 제도적으로는 우리나라 교수 창업 환경이 미국보다 좋다. 그런데도 왜 창업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는 평가에서 찾을 수 있다. 승급 평가를 연구 중심으로 한다. 연구 논문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등 양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평가한다. 존스홉킨스대는 기술 이전과 창업 이력, 연구비 수주 규모 등에 무게를 두고 평가하더라.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면 좋은 학생을 데려올 수 있고 그러면 연구 결과도 좋아진다. 우리도 이런 선순환 구조로 가야 한다.

Q : 그렇다면 국내 대학이 무엇을 바꿔야 하나.
A : 대학 구성원이 창업에 대해 긍정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학생·교수·연구원이 창업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실패했을 때 받을 불이익을 두려워한다. 창업이 우리 사회의 일자리 창출,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스탠퍼드대는 교수 창업을 제도적으로 장려하진 않지만 창업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도 않는다. 교수가 개발한 기술로 창업하면 기술 이전료를 받지 않나. 우리나라도 그런 제도가 있지만 교수들이 창업을 하지 않으니 돌아가지 않는다.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장이 20일 경기도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산학협력센터 내 교수 창업 기업인 히포티앤씨에서 제품을 시연하고 있다. 히포티앤씨는 정태명 소프트웨어학과 교수가 창업한 디지털치료제 스타트업으로 CES2022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우상조 기자

Q : 현지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은.
A : 이진형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의학과 교수가 ‘한국 대학의 창업은 너무 관 주도인 것 같다. 창업이란 단어보다 이노베이션, 즉 혁신이라는 말을 쓰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이노베이션 안에 스타트업이나 창업, 변화, 새로움이 다 포함되는 거다. 그런 미국 대학의 인식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미국과는 여건이 다르기에 장기적으로 생태계가 구축됐을 때는 모르지만 현재 시점에서 제도를 똑같이 따라갈 수는 없다. 가령 교수 창업 초기 지원이 있었기에 실패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 예전보다 더 많은 교수가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허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부분만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손실보다 얻는 게 더 많다고 본다.

Q :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A : 8년 전 설립한 글로벌창업대학원 졸업생 130명 중 60%가 창업했다. 생존율이 90% 이상이다. 창업지원단은 출범한 지 6년 정도 됐다. 현재까지는 재정적 여력이 크지 않아 정부 사업비 등으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창업 시스템이 구축되면 교수 창업 기업이 벌어들인 돈으로 학교의 재정 일부를 충당하려고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는 등록금 의존율이 15% 이하라고 한다. 나머지는 기술 이전료 등으로 충당한다. 우리나라 주요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60% 이상이다. 대학은 기부를 못 받으니 돈을 벌어서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돈이 대학 창업 인프라에 또 재투자되면 선순환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Q : 한국 대학은 어디쯤 와 있나.
A : 씨를 뿌리는 단계까지는 온 것 같다. 교수들이 이제 창업으로 눈을 돌리고, 성공했을 때 대학에 기부하고 그런 문화가 조금씩 싹트는 중이다. 다섯 번이나 창업한 배현민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더라. 입증이라는 게 창업해서 소비자가 받아들이면 제대로 된 기술을 개발했다고 보는 거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교수들이 많아져야 한다.

Q : 결론적으로 한국 지원 제도는 상대적으로 풍부한데 성과가 낮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A : 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제도 확립과 문화적 측면에서 창업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창업 지원 제도보다 기업가정신을 비롯한 교육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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