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시간 동안 황홀한 커피에 홀렸다..커피 오마카세가 뜬다

윤은별 2022. 9. 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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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의 부케’입니다. 해가 지는 오후에 석양을 받아 반짝이며 떨어지는 꽃의 우아함을 담은 메뉴입니다. 에티오피아 시다모 지역에서 재배된 원두로 추출한 핸드 드립 커피와 함께 디저트를 페어링해드렸습니다. 커피는 가장 뜨거울 때와 식었을 때 맛이 다르니, 시간 차를 두고 풍부하게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디저트 디시는 화이트 초콜릿으로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을 표현했습니다.”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바리스타와 마주 보는 10개 내외의 자리가 전부인 단촐한 공간. 바리스타가 커피잔 온도를 재며 커피를 내린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카페 ‘펠른’이다. 이곳 ‘커피 코스’의 세 번째 메뉴로 가장 맛있는 온도에 맞게 서빙된 핸드 드립 커피, 그리고 치즈가 눈꽃처럼 내려앉은 화려한 디저트가 함께 서빙됐다. 모두 이곳만의 ‘자체 개발’ 메뉴다. 바리스타의 설명을 들으며 커피와 디저트를 한입씩 해보니, ‘별다방’ 아메리카노만 고수하던 입맛도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로 상당히 조화로운 맛의 조합이 느껴졌다.

오마카세(맡김차림).

원래는 ‘주방장 특선’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요리사에게 온전히 메뉴를 맡기고, 요리사는 엄선된 재료로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내 하나하나 코스로 서빙하는 요리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스시 오마카세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요식 업계에서 관심이 모이는 것은 ‘커피 오마카세’라 불리는 ‘커피 코스’다. 1~2시간 동안 커피와 디저트를 코스 요리 형태로 음미하며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 일식 오마카세가 그렇듯, 바 형태 테이블에서 주로 서빙되며 메뉴는 온전히 바리스타에게 맡겨진다. 원재료나 페어링의 이유, 맛있게 즐기는 법 등 바리스타가 고객에게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하며 소통하는 것이 포인트다. 대부분 커피 코스는 그 카페에서만 즐길 수 있는 메뉴로 이뤄져 있고, 코스 역시 시즌마다 다르게 개발돼 바뀐다. 커피 코스가 이색적인 미식 경험으로 애호가를 넘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를 찾는 소비자 발길 또한 잦아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기미사 성수`에서는 보이차와 커피를 조합한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로 구성된 커피 코스를 맛볼 수 있다. (윤관식 기자)

▶어디서도 맛보지 못할 ‘커피 코스’

▷맛부터 스토리까지 독보적

커피 오마카세는 일반적인 카페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차별화된 맛과 경험으로 승부를 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펠른’이 대표적이다. 커피 오마카세가 생소하던 2019년 말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9월 기준 현재 제공되는 코스의 이름은 ‘향긋한 휴식’이다. 코스를 구성하는 네 가지 메뉴는 각각 ‘아침정원’ ‘정오의 들판’ ‘오후의 부케’ ‘새벽의 꽃잎’.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콘셉트를 잡고 커피와 디저트의 페어링을 구성해 제공한다.

‘아침정원’은 일출, 개화 등의 ‘떠오르는’ 느낌을 담은 상큼한 맛의 꽃차로 구성돼 있고, ‘정오의 들판’은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답게 원두와 라임을 조합해 맥주처럼 만든 커피 베이스 음료를 내어주는 식이다. 음료와 페어링되는 디저트도 남다르다. 마지막 메뉴인 ‘새벽의 꽃잎’에서는 더덕, 도라지, 당귀 등을 사용해 꽃의 뿌리를 닮은 디저트를 제공한다. 물론 모든 메뉴는 펠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자체 개발 메뉴다.

펠른은 1년에 두 번씩 새로운 코스를 선보인다. 매번 커피뿐 아니라 커피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 코스, 코스의 스토리텔링까지 개발해야 하다 보니 품이 많이 든다. 코스 개발에 달라붙는 직원 수만 11명에 달한다. 하나의 코스를 개발하는 데도 3개월 이상 소요되고는 한다.

커피와 차를 함께 코스로 꾸리면서 차별화를 꾀한 곳도 눈길을 끈다.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기미사 성수’다. 기미사 성수는 9월 기준 보이차와 커피를 함께 오마카세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일주일 중 딱 한 번 수요일에 두 타임만 예약제로 운영한다.

기미사 코스는 발효 보이차와 발효 원두커피 한 잔으로 시작한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기미사 코스의 핵심 메뉴. 보이차로 만든 셔벗 위에 콜드브루 커피를 부어서 먹는 디저트다. 셔벗과 셔벗 위의 과자, 크림이 모두 보이차를 기반으로 조금씩 달리 조리한 결과물이다. 낯설게 느껴지는 보이차와 커피의 조합이 의외로 상당한 ‘케미’를 보인다.

송인영 기미사 대표는 “‘발효’라는 테마로 커피 코스를 준비하면서 여러 차를 커피와 조합해본 결과 보이차가 가장 잘 어울려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논현동의 ‘구테로이테’는 보다 대중적인 커피 오마카세를 지향한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민트, 귀리우유 등을 각기 달리 넣은 3가지 음료를 차례로 제공한다. 구테로이테 코스 메뉴는 1만원대부터 시작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로 커피 코스를 즐길 수 있게 했다. 구테로이테 역시 계절별로 다른 구성의 코스를 제공한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카페 ‘펠른’은 바리스타와 소통하며 메뉴를 서빙하는 ‘커피 오마카세’를 제공한다. (윤관식 기자)

▶소비자 취향 세분화, 전문화돼

▷커피도 단순한 ‘후식’ 아닌 ‘메인’

커피 오마카세. 많게는 1인당 7만원 이상의 비용으로 책정돼 있다. 아직 국내 소비자에게 카페의 인식은 음료의 맛보다는 자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터라, 선뜻 내기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평일 오후까지 만석에 주말이면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붐빈다. 왜일까.

무엇보다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전문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커피 애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도 흔한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외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음료를 찾으려 한다는 이야기다. 서명석 구테로이테 대표는 “커피 코스를 통해 소비자들은 맥주 샘플러처럼 다양한 에스프레소 메뉴를 한 번에 맛보면서 자신의 몰랐던 커피 취향을 찾아간다. 다양해지는 개인 취향에 맞추는 전략이 F&B 시장 전반의 트렌드인 상황이다. 카페 역시 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커피 오마카세가 좋은 농장에서 나온 좋은 원두만을 강조하기보다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음료 개발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파인 다이닝’이 인기를 끌었듯, ‘파인 커피’가 그 뒤를 잇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커피를 단순히 식사 후 입가심하는 후식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의 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경험해보고자 하는 소비자 욕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박성호 펠른 대표는 “기념일에 파인 다이닝 등의 좋은 식당을 예약해서 가듯,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를 위해 좋은 카페를 예약해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고 소개한다.

커피 오마카세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경험인 것도 한몫한다.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드립하고 음료를 제조하며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인스타그래머블’하다. 일식 오마카세의 가격이 저녁 기준 1인당 20만원은 거뜬히 넘는 것을 감안하면, 2만~7만원 정도로 오마카세를 경험할 수 있는 커피 코스는 오히려 ‘저렴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지점이다.

송인영 대표는 “커피 코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대부분 커피 업계에 있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주 손님이었다. 그런데 올여름부터는 입소문이 나면서 ‘이색 요식 체험’을 해보려는 일반 소비자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 박성호 펠른 대표

“압도적인 맛으로 우위 노려…최종 목표는 유통 브랜드”

서울 연남동에서 펠른을 운영하는 박성호 대표. 1992년생인 그는 ‘커피 오마카세’라는 개념이 드물던 2019년 말, 연남동 한편에 ‘겁 없이’ 매장을 열었다. 동시에 코로나19 한파까지 찾아왔다. ‘이대로 망하나’ 싶을 때쯤부터 반응이 왔다. 지금은 13명의 직원을 두고, 가맹점을 확장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

Q ‘커피 오마카세’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A 처음에는 에스프레소 바 형태로만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의외로 커피와 페어링한 디저트의 반응이 좋더라. 잘 매칭해서 오마카세처럼 코스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식스센스’ 등 방송을 타면서 ‘붐업’이 됐다.

Q 창업 초기에 비해 비슷한 코스 요리를 서비스하는 카페가 여럿 생겼는데.

A 펠른만의 강점이 있다. 시작부터 요식 업계 최고 전문가들만 데려왔다. 유명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등에서 일하던 디저트 전문 셰프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아무리 유명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더라도 레스토랑인 이상 디저트는 상대적으로 식사 메뉴에 밀릴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디저트가 핵심 메뉴고, 손님들에게 직접 메뉴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 여기서 느끼는 직업 만족도가 높다. 또한 펠른은 자체 로스터리를 인천에 갖고 있어 원두 수급의 품질도 좋다.

Q ‘브랜드화’가 애초 목표였다면 여러 업종 중 카페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식음료는 가장 쉽게 설득되는 고객 경험이다. 디올, 구찌 같은 각종 명품 브랜드가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여는 이유가 무엇일까. 먹고 마시는 것은 가장 쉽게 설득되는 고객 경험이기 때문이다. 식음료 중에서도 커피는 가장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더 맛있는 고품질 커피에 대한 수요 역시 높다. 주요 기업들이 커피를 매개로 고객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더욱 많아질 거라고 봤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현재 매장을 3호점까지 냈다. 아이오닉, 포르쉐 등의 자동차 브랜드와도 협업이 예정돼 있다. 이를 통해 최종 목표인 ‘제품 유통’을 위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펠른의 목표는 펠른이라는 브랜드의 제품을 시장에 유통하는 것이다. 상품화를 추진 중인 대표적인 제품이 펠른의 시그니처 음료인 ‘위스키 더치’다. 위스키의 숙성 방식과 동일하게 오크통에 숙성해 질감이 위스키와 비슷한 커피다.

[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6호 (2022.09.21~2022.09.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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