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가을, 음악의 계절

박지훈 입력 2022. 9. 2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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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종교부 차장


한성우 인하대 교수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분석한 언어학자다. 노래방 등록곡 2만6000여곡의 노랫말을 검토해 2018년 ‘노래의 언어’라는 책을 내놨는데, 자신의 예상을 가장 크게 벗어난 결과는 계절과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는 조사를 하기 전 이렇게 넘겨짚었다. 사계절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가을’일 거라고.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면 누구나 객쩍은 감상에 젖는 법이니까. 하지만 ‘가을’이 등장하는 노래방 등록곡은 541곡에 불과했다. 1위를 차지한 ‘봄’(1572곡)이나 3위에 랭크된 ‘겨울’(1001곡)보다 훨씬 적었다. 한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해놓았다.

“인생으로 치면 봄은 젊은 시절인데 가을부터는 ‘꺾어진 시절’이다. 이래저래 서글프면서도 마음이 바빠진다. 가을 노래가 많지 않더라도 이미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많지 않더라도 자주 듣고 자주 읊조린다. 그러니 기억 속 목록에는 훨씬 더 많은 가을 노래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가을이야말로 음악의 계절이란 뜻일 수도 있겠다. 다른 계절을 노래한 곡보다 그 수가 적으니 가을 노래는 상대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띤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음악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 왜 인간은 음악을 사랑하는가.

인간은 지구상에서 음악을 즐기고 음악을 만드는 일에도 공을 들이는 유일한 종이다. 현대인의 일상을 살피면 음악이 어떤 형태로든 귓가에 머무는 시간이 하루의 3분의 1에 달하며, 이 시간의 절반가량은 음악이 우리네 감정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인간은 한 살만 돼도 기쁜 음악과 슬픈 음악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린 모두 ‘음악적 동물’인 셈이다.

한데 진화론의 맥락에서 따지자면 이런 행동엔 종의 존폐를 결정짓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영국 물리학자 존 파웰은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책에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파트너를 유혹할 때 음악이 쓸모가 있어서다. 가령 프랑스에서 진행된 한 실험에선 어떤 남자가 기타 케이스를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성의 전화번호를 2배나 더 많이 받아냈다. 두 번째 이유는 유대감을 배가시키는 음악의 힘이다. 군대 행군에서 군가가 갖는 힘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인간 집단은 격려와 위로, 애도와 축하를 주고받을 때 끈끈해지고 단단해진다. 유대감이 강한 집단일수록 생존에 유리할 건 불문가지다. 음악은 생존에 별무소용인 뭔가가 아닌 셈이다.

청소년기는 생애 주기에서 삶과 음악이 가장 끈적끈적하게 포개지는 시기다. 이 시절 즐겨들은 곡이 ‘평생의 음악’이 된다. 유독 10대 시절에 음악에 휘둘리게 되는 이유는 뭘까. 학자들은 그즈음 겪는 희로애락의 순간 감정의 출렁거림이 상당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인생의 환절기인 청소년기에 겪는 이런저런 일들은 엄청난 호르몬 변화를 일으키고, 이런 현상은 음악이 주는 자극을 더욱 강하게 풀무질한다.

영국 심리학자 빅토리아 윌리엄슨은 저서 ‘음악이 흐르는 동안 당신은 음악이다’에서 이 지점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인생의 이 시기에 우리의 감정과 기분을 다른 방식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며, 전환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많은 사람에게 음악이 생기 있게 다가오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이 말은 음악이 생기를 띠려면 삶이 얼마간 다이내믹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인생의 노래’가 있다면 그 노래를 듣던 때 겪은 어떤 상황이 우리네 삶에 진한 무늬를 남겼기 때문이다. 가을 노래가 특별한 이유도 이 계절에 겪는 일들이 흥건한 정취를 자아내서일 거다. 한 교수의 말처럼 “가을 노래가 많지 않더라도 이미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바야흐로 그런 계절이 다가왔으니 올가을엔 자주 음악을 듣자. 누군가의 말마따나 음악은 “마음을 단련시키는 체육관”이니까.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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