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韓 엘리트 스포츠..그뒤엔 文정부 '정치 개입' 있었다 [성백유가 고발한다]
지금 한국은 일본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엘리트 스포츠 정책 얘기다. 일본은 지난 1964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16개를 따면서 미국·소련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자국 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스포츠의 강자로 부상한 이후 강세를 이어갔다. 1968 멕시코시티올림픽 3위, 1972 뮌헨올림픽 5위,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도 5위였다. 그런데 1988 서울올림픽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답은 바로 엘리트 체육에 대한 지원 감소다. 1970년대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사회 체육,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 저변 확대를 강조하면서 일반 대중의 엘리트 체육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었다. 1984 LA 올림픽 7위, 서울올림픽 14위(금메달 4개)로 성적이 계속 부진했던 배경이다.
그랬던 일본이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 때 부활했다. 금메달 27개로 미국·중국에 이어 다시 3위에 올랐다. 이게 가능했던 배경 역시 정책 변화에 있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 국가 주도 엘리트 체육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지원을 늘렸다.
이번엔 한국. 한국은 88 서울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해 올림픽 무대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제쳤다. 이후 1992 바르셀로나, 1996 애틀랜타, 2002 시드니에서도 계속 일본을 압도했다. 하지만 2006 아테네올림픽에서 다시 순위가 역전했다. 일본이 5위로 한국(9위)을 앞서나갔다. 직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로 16위였다.
과거엔 금메달 유망주가 은메달만 따도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최근 우리 사회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메달 색 정도가 아니라 아예 4위, 5위 등 메달권에서 밀려나도 선수들이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을 보면 박수를 친다. 이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있다.
대한체육회의 한 간부는 최근 내게 "언제까지 4위, 5위 했다고 박수를 쳐야 할까요?"라고 질문 아닌 질문을 했다. 비단 올림픽뿐만이 아니라 최근 열린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단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걸 걱정해서 나온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7월 27일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일본 아이치 현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일본에 0:3으로 졌다. 지난해 3월 일본에 0:3으로 진 데 이어서 연속으로 완패했다. 올해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도 쇼트트랙에서만 겨우 금메달 2개를 따 종합 14위를 기록했다. 불과 4년 전인 2018 평창올림픽(7위) 때 스키·봅슬레이 등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땄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평창올림픽은 우리가 개최국이었다고? 이 대회를 제외하더라도 2014 소치올림픽(13위, 금메달 3개), 2010 밴쿠버올림픽(5위, 금메달 6개), 2006 토리노올림픽(7위, 금메달 6개)에 비해도 목표 달성에 분명 실패했다. 앞서 언급한 2020 도쿄올림픽 역시 최근 하계올림픽 가운데 가장 성적이 저조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스포츠계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자성이나 비판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심지어 도쿄올림픽에서는 4강에 오르고 메달은 못 딴 여자 배구의 선전에 ‘아름다운 패배’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누구라도 성적 얘기를 꺼낼라치면 "시대가 바뀌었다"며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대중이 직접 하는 사회 체육이 더 중요하다"는, 이른바 '개념 있는' 셀럽들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압도했다. "국가대표 성적에 국민이 왜 과도하게 관심을 갖느냐"거나 아예 "성적 지상주의에서 탈피하라"는 식의 정치적 뉘앙스의 훈계도 이어졌다.
한번 생각해보자. 국가대표란 무엇인가. 대표로 선발돼 태극 마크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스포츠 스타들은 그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위선양을 한다’는 자긍심에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국민 역시 국위선양을 위해 노력한 그들의 활약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대동단결했다. 태극 마크 앞에서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모두 하나가 됐다. 과도한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지만 엘리트 체육은 분명 이런 순기능이 있었다. 바로 이게 지금 무너지고 있다. 인구 절벽에 따른 선수층 감소나 국민 의식 변화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위에 정치권의 삐뚤어진 인식과 특정 진영의 밥그릇 챙기기 탓에 정책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에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협회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사회 체육 활성화가 그 취지다. 위원장은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과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공동으로 맡고, 이 분야 전문가인 위원들이 개혁을 이끌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때 이 위원회가 체육계의 전면에 나섰다. 스포츠와 아무 상관 없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과 가까운 친정부 여성인권가가 스포츠혁신위원장 자리에 앉았다. 또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은 전 여가부 차관이 차지했다. 진보 진영 인사들이 주요 직책에 포진한 스포츠혁신위는 기존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완전히 무시한 채 억지 개혁을 시도했다.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다며 주중 대회 금지 등을 문체부와 교육부에 권고했다. 현장을 무시한 위원회의 권고로 선수들만 피해를 봤다. 대부분의 종목은 시설이 부족해 주말 대회를 못한다. 학생 선수와 학부모, 관련 전문가 모두 현실성 없는 권고라고 외쳤지만 무시당했다. 이 과정에서 탁구의 신유빈 선수와 김나영 선수는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지난 7월 윔블던테니스 대회 14세부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조세혁 선수 역시 학교 수업과 국제대회 참가를 병행하기 어려워 중학교 과정을 포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엘리트 체육을 얼마나 백안시했는지는 2018 아시안게임 뒤 국회 국정감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야구대표팀 선동열 감독을 불렀다. 손혜원 의원 등 당시 여당 의원들은 선수 선발이 불공정했다며 조리돌림 식으로 몰아세웠다. 금메달을 딴 우승 감독을 말이다.
정부 입장이 이러니 체육계가 대기업 지원을 끌어내기 어려웠다. 정치권이 "엘리트 체육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제기하니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는 '회장 모시기'가 어려웠다.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등은 회장 없이 한두 해를 보내기도 했다.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는 스포츠혁신위 권고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2002 월드컵 때 국민 모두 붉은색 셔츠를 입고 외치던 ‘대한민국’을 재현할 수 있도록 새 정부의 올바른 정책을 기대한다. 잘 나가던 일본 스포츠가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다시 강해지기까지 2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궤도를 이탈한 한국 스포츠가 반드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성백유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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