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화, 제2라운드

임상균 2022. 9.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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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저출산·인구 소멸은 이미 20년 격차로 일본 따라가
최근 통화 약세 불구 수출 부진-무역 적자도 '닮은꼴'
10년 전 日 전자 산업 쇼크..이젠 韓 제조업 차례 아닌지
“무서울 정도로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2015년 국내 최고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경종을 울렸다. ‘일본화(Japanization)’였다.

조동철 당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구 발표에서 한국과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그래프를 그대로 겹쳐서 보여줬다. 정확히 한국이 20년 뒤처져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었다. 연도별 출산율, 노인부양비율 등도 20년 시차만 있을 뿐 같은 모양새였다.

KDI의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됐다. 10여년 전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금리, GDP 갭 등 20년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는 경제지표가 속속 나왔고, 현재는 세계 최악의 출생률에 시달리고 있다.

이때만 해도 ‘사회구조적’ 일본화만 걱정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든든한 수출제조업이 있으니 경제 전체는 괜찮다고 위안을 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버팀목이던 수출제조업마저 일본의 전철을 밟는 조짐이다. 통화 가치 약세가 지속되는데도 수출이 살아나질 않고 되레 무역 적자가 심화되는 현상을 10년의 시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

2012년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공격적 양적 완화에 나섰다. 2011년 달러당 70엔대였던 엔화 가치는 일본은행이 엄청난 돈을 뿌려대자 2015년 120엔대까지 급락했다. 엔 약세를 유도하면 제조업 수출이 늘어나고, 기업이 임금을 올리면 개인 소득과 소비가 활발해지는 선순환을 기대했다.

결과는 엇나갔다. 흑자를 이어오던 무역수지가 2011년 처음 2조6000억엔대 적자를 보더니 2012년 6조9000억엔, 2013년 11조5000억엔, 2014년 12조8000억엔으로 급증했다. 수출은 별 반응이 없고 에너지, 곡물 등 수입만 늘어난 결과였다.

수출이 2011년 65조엔에서 2015년 75조엔으로 4년 새 15% 정도 증가했지만 2008년 기록한 역대 최고치 84조엔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수출제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대거 옮긴 것도 있지만 파나소닉, 히타치, 도시바 등 주력 전자 업체가 한·중 경쟁사에 밀린 영향이 더 컸다. 메모리반도체 대표 업체인 엘피다는 2013년 파산해 결국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로 피인수됐다. 당시 일본 전자 산업의 동반 몰락은 ‘쇼크’에 가까웠다. 조선, 철강 등 일본의 중후장대 산업은 진작 무너진 상황이었다.

망가진 무역수지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후 적자와 흑자를 오가더니 올해는 역사적 엔저에도 7월까지 10조엔에 가까운 적자를 내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올 들어 역대급 원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연속 무역 적자가 확실시된다. 25년 만이다. 10년 전 일본과 마찬가지로 원 약세가 수출 산업에 도움을 못 주고 수입만 급증시킨 결과다. 전 세계 수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이후 2%대 중후반에 머물러 있다.

가뜩이나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자동차·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한국 첨단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마저 차단되고 있다. ‘일본화’ 제2라운드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6호 (2022.09.21~2022.09.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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