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3社 3色의 MZ세대 공략법..K브랜드·럭셔리·리모델링으로 승부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은 Z세대의 ‘핫플’로 꼽힌다. 개점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인기는 여전하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더현대 서울’로 38만7000개가 나온다. 백화점의 자연주의 공간 ‘사운즈 포레스트’가 내부 곳곳에 등장한다. 백화점이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러 가는 장소가 아니라,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백화점 위기론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 전통적인 유통업인 백화점이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실적은 고공행진이다. ‘올드 비즈니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백화점에서 ‘아이돌 덕질’
▷‘팬덤 성지’ 된 더현대 서울
국내 백화점 3인방의 공통점은 2030세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성공 키워드는 ‘복합 공간’ ‘K-브랜드’ ‘온라인’ ‘리모델링’이다.
현대백화점은 공간 차별화와 국내 브랜드 적극 도입으로 변화를 주도한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 업계에서도 손꼽는 젊은 층 공략 모범 사례다. 더현대 서울은 글로벌 3대 명품인,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없다. 명품을 지향하는 그간의 업계 관행과는 결이 다른 행보였다.
대신 ‘리테일 테라피(쇼핑을 통한 힐링)’라는 개념을 적용했다. 더현대 서울은 영업면적 8만9100㎡의 절반을 실내조경·휴식 공간 등으로 구성했다. 또 무인 매장 ‘언커먼 스토어’, 스웨덴 최상위 SPA 브랜드 ‘아르켓’, 스니커즈 리셀 전문 ‘BGZT(번개장터)랩’ 등 기존 백화점에서 보기 힘든 매장을 입점시켜 MZ세대 소비 트렌드를 관통했다고 평가받았다. 현대백화점 분석에 따르면, 일평균 5만명으로 추산되는 더현대 서울 방문객 가운데 65% 정도는 MZ세대다.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을 선호하는 젊은 층이 몰려들자 협업 ‘러브콜’이 쏟아졌다. 다양한 임시(팝업) 행사가 그 사례다. 올해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임시 매장(팝업 스토어)은 150여개에 이른다. MZ세대 팬덤을 주 대상으로 삼은 아이돌 그룹부터 캐릭터·완성차 등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매장이 열렸다. 현대백화점 측은 “요청이 물밀듯이 이어지며 더현대 서울에서 행사를 열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패션의 ‘인큐베이터’라는 별칭을 얻으며 K-브랜드 알리기에 힘쓴 점도 주효했다.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는 기존 백화점 매장과 달리 온라인 패션 브랜드들을 집중적으로 유치해 MZ세대 ‘성지’가 됐다.
실적도 화답했다. 더현대 서울 첫해 매출액이 8000억원을 넘었고, 이 중 54% 이상이 2030 고객으로부터 나왔다. 올해 9000억원을 돌파하고 내년 1조 클럽에 가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현대백화점이 ‘혁신’의 대명사로 떠오른 건 2015년 판교점부터다. 루이비통과 까르띠에·티파니 등 100여개 명품 브랜드와 130여개로 업계 최다 업체를 입점시킨 식품관이 경쟁력 발판이 됐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식자재 전문점 ‘이탈리(EATALY)’를 비롯해 프랑스 베이커리 ‘몽상클레르’, 뉴욕 브런치 카페 ‘사라베스키친’ 등 국내에 처음 소개된 해외 맛집도 다수였다. 대구 ‘삼송빵집’이나 ‘부민옥’ 등 지역 유명 맛집도 입점했다. 판교점은 개장 첫해 4개월 동안만 영업해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한 이후 개점 5년 4개월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백화점 최단 기록이자, 서울·부산 지역 외 첫 1조원 점포였다.
현대백화점은 또한 젊은 층을 타깃으로 중고 상품(세컨드핸드) 전문 매장인 ‘세컨드 부티크’를 신촌점 유플렉스에 열기로 했다.
▶신세계는 ‘럭셔리’ 고수하며
▷리모델링 통해 젊은 층도 흡수
신세계는 ‘럭셔리’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며 젊은 층에게 다가가는 양면 전략을 쓴다. 신세계는 콧대 높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가장 많이 보유한 브랜드다. ‘에·루·샤’를 모두 보유한 점포가 강남점을 포함해 본점, 부산점, 대구점까지 4곳으로 가장 많다. 경쟁사의 경우 현대 압구정본점, 롯데 잠실점, 갤러리아 압구정본점 각 1개 점포씩인 것과 비교된다. 명품이 곧 고객 유치로 이어진다는 게 신세계 판단이다.
2000년 오픈한 강남점은 특히 3대 명품 외에 크리스챤 디올·프라다·구찌·생로랑·발렌시아가 등 주요 명품 브랜드가 총집합해 ‘명품 쇼핑에 최적화된 백화점’으로 자리 잡았다. 강남점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연매출 2조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대신 명품에 여윳돈을 쓰는 이른바 보복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본점은 우리나라 최초 백화점인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건물을 2007년 리모델링한 뒤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켜 전통성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강조한다.
신세계는 향후 신규 점포에서도 럭셔리를 내세운다는 전략이다. 광주 스타필드·백화점 개발 공사 시작 전, ‘에·루·샤’ 유치 계획부터 밝힌 게 그 방증이다.
물론 MZ세대를 끌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신세계는 최근 강남점 5층에 3306㎡ 규모의 영패션 전문관을 국내 고급 캐주얼 의류 브랜드 위주로 재단장했다. 25~35세 소비자를 겨냥해 14개 디자이너 브랜드를 들여놨다. ‘렉토’ ‘샵아모멘토’ ‘베이스레인지’ ‘던스트’ ‘노프라미스’ ‘킨더살몬’ ‘W컨셉’ 같은 브랜드가 처음으로 입점했다. 이 중 절반은 신세계백화점 단독 입점 조건이다.
대전신세계는 ‘젊은 신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신세계백화점 13개 점포 중 2030 소비자 수와 매출 비중이 각각 50%, 45%로 가장 높다. 카이스트 연구진과 손잡고 만든 과학관 ‘신세계 넥스페리움’, 상권 최초의 실내 스포츠 테마파크 ‘스포츠 몬스터’,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4200t 수조의 아쿠아리움 등 기존 백화점에서 보기 힘들던 다양한 콘텐츠로 젊은 층을 끌어들였다.
신세계의 또 다른 변신 키워드는 ‘온라인’이다. 올해 2·4분기 온라인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2% 성장했다. ▲여행·자기 계발 등 모바일 앱 콘텐츠 ▲업계 최초 자체 캐릭터를 활용한 대체불가토큰(NFT) 등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는 올해를 디지털 전환의 원년으로 삼고 온·오프라인 통합 미래형 백화점의 성장 방향을 제시한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유통 업계 최초로 도입한 전자책 서비스 ‘신박서재’, 뮤직 큐레이션 ‘지니뮤직 라운지’, 제철음식 레시피 ‘계절과 식탁’ 등도 이런 전략 아래 추진됐다.
업계 최초로 백화점 모바일 앱에서 해외 패션쇼 생중계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열린 이태리 밀란과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의 럭셔리 브랜드 현지 패션쇼를 백화점 모바일 앱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매출로는 롯데가 강자
▷럭셔리 지향은 ‘글쎄’
롯데백화점은 덩치로는 단연 최고다. 2021년 기준 롯데백화점은 11조7740억원, 신세계백화점은 9조6360억원, 현대백화점은 8조4800억원 순이다. 3대 백화점의 연간 총매출은 30조원에 육박한다. 점포 숫자는 롯데가 32개로 현대(16개)와 신세계(13개)를 압도한다.
최근 롯데백화점은 부쩍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분위기다. 젊은 층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은 경쟁사와 같다. 그러나 럭셔리로 가야 할지, ‘친근함’을 더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듯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럭셔리’를 지향하지만, 소비자 인식 속에는 ‘대중적’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일단 롯데백화점은 리뉴얼로 변화를 줄 듯 보인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 9월 1일 지하 1층~지상 1층에 뷰티관을 재단장 오픈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신규 브랜드 30개를 포함해 총 83개 뷰티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았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3월부터 본점 전체 재단장을 순차 진행 중이다. 1979년 개장 이후 첫 대대적인 변화다. ‘절제된 우아함’을 리뉴얼 콘셉트로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를 자문에 참여시키는 등 유명 설계사와 함께 인테리어를 진행한다.
2019년 리빙관, 2021년 여성 패션, 남성 패션, 골프 매장 등을 바꿨다. 젊은 고객 층에 인기 있는 ‘탬버린즈’ ‘샬롯틸버리’ ‘V&A’ 같은 라이징 브랜드는 물론 버버리 뷰티·구찌 뷰티 등의 럭셔리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입점시켰다.
재단장 효과는 컸다. 명품 라인을 강화한 남성 패션관은 재단장 이후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신장했다.
백화점 빅3 ‘광주 대첩’
호남 상권 선점 경쟁…현대백 가장 먼저 출사표
광주는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인데도 유통 소외지였다. 광주에 관심이 쏟아진 건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광주를 방문해 ‘복합 쇼핑몰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이후다.
광주는 대형 백화점 3사가 전부 뛰어든 시장이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현대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8월 광주에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을 잇는 ‘더현대 광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신세계도 최근 기존의 광주신세계를 확장하고 스타필드 광주를 짓겠다고 나섰다. 검토 단계라는 롯데는 최근 광주를 방문해 복합 쇼핑몰 부지를 알아보며 ‘대형 프로젝트’를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광주 쇼핑 수요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광주는 대규모 복합 쇼핑몰 없이 광주신세계와 롯데백화점이 진출해 있다. 이 중 광주신세계가 지역 유통 업계에서는 압도적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다. 백화점 진출 소식에 ‘갈 곳 없던’ 광주 젊은 세대의 기대감이 특히 높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젊은 소비층이 백화점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화점 ‘광주대첩’도 3사 3색이 될 듯 보인다.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현대백화점은 ‘미래형 문화 복합몰’을 내세웠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성공 노하우를 가져오겠다는 계산이다. 현대백화점은 과거 광주 대표 백화점이었던 송원백화점을 위탁 운영한 경험을 활용한다. 송원백화점은 광주신세계와 롯데백화점 광주점이 생기며 지난 2013년 광주 지역에서 철수했다.
신세계는 광주에서 입지가 확고하다. 지난해 광주신세계는 매출액 7652억원으로 매출 기준 전체 12위를 기록했다. 1위부터 11위까지 백화점 빅3의 서울과 수도권 매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성과라는 평가다. 신세계는 오랜 기간 광주 지역에서 터를 닦아둔 만큼 시장 장악을 자신한다. 롯데백화점 광주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3069억원으로 광주신세계에 한참 뒤처진다. 롯데는 광주권 선두 주자인 신세계는 물론, 공격적인 현대백화점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6호 (2022.09.21~2022.09.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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