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출로 350억弗 번 정유사..횡재세로 토해낼라 '전전긍긍'

오현길 2022. 9. 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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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호황에 수출효자 등극했지만
초과이익 세금 부과 요구 목소리
마이너스 정제마진 실적 부진 우려
하반기 전망 어두운데 부담 가중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올해 들어 정유사들이 석유제품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350억달러, 한화로 약 48조원에 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경유 수출액이 승용차 수출액을 3000만달러나 앞서면서 반도체에 이어 수출 품목 2위에 올랐다.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출 효자가 됐지만 정유사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현상으로 세계 경기 침체가 우려되면서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급락, 연말에는 적자를 걱정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기업들에게 초과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것도 부담이다. 국내에서도 횡재세를 걷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원유 시추(試錐)에 기반한 메이저 기업들과 원유를 사와서 정제해 되파는 국내 정유사들은 근본적으로 수익구조가 다르지만, 들리지 않는 메아리다.

수출 효자 된 정유사…"지원은 못해 줄 망정"

2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경유, 휘발유, 항공유(등유) 등 3개 품목의 수출액은 350억1086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64억7006만달러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경유 수출액은 182억4921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4.0%나 급증했으며, 휘발유는 87.0% 증가한 87억2284만달러를 달성했다. 항공유도 포스트 코로나 수요 확대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4.9%나 뛴 80억3881만달러에 달했다. 나프나나 기초유분, 윤활유도 수출 규모를 키우고 있다.

고유가 호황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매제가 됐다. 글로벌 석유 제품의 수요 증가, 고유가에 따른 수출 단가 상승, 정제 마진 확대가 복합적으로 어울러진 결과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거듭하고, 정제마진이 급락하면서 하반기 실적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상반기 배럴당 30달러에 육박하던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지난 13일 배럴당 7.28달러에서 16일 -2.95달러까지 급락했다. 2020년 9월 이후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석유제품 판매가격에서 원유 도입비용을 뺀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공장을 돌릴 수록 손해를 본다는 의미다.

8주 연속 하락했던 국내 주유소의 경유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주간 단위 휘발유 가격은 9주째 소폭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8월 다섯째 주(8.28∼9.1)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주보다 3.5원 내린 L당 1740.3원, 경유는 지난주보다 1원 오른 1844.6원으로 집계됐다. 4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문호남 기자 munonam@

최근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쿼터 확대 움직임도 정제마진을 끌어내리고 있다. 중국석유화학공업연합회는 석유제품 수출량을 늘리면 중국 경기 부양에 기여할 수 있다며 1500만t 규모의 수출 쿼터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국제유가도 달러 강세 흐름에 약세를 보인다. 2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28달러(1.49%) 하락한 배럴당 84.4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긴축 우려가 유가에 반영되는 모양새다.

고환율도 부담이다. 정유사들은 원유 매입 자금을 일정 시점 이후 현시점의 환율로 환산해 대금을 지급하는 만큼 환율이 오르면 환차손이 발생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치솟은 상황에서 정제마진까지 내려가며 이중고 상황"이라며 "지난해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실적 악화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 ‘횡재세’ 도입 속도…韓 상황은?

하반기 적자를 우려해야 될 처지에 놓였지만 예기치 않은 고유가에 ‘횡재’를 한 에너지 기업에게 추가 세금을 거두자는 목소리는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지구가 불타고 가계부가 쪼그라드는 가운데 화석연료 업계는 보조금과 횡재이익으로 수천억달러의 돈방석에 앉았다"며 "모든 선진국에 화석연료 회사들의 횡재이익에 대한 세금 부과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는 발전사와 에너지 기업에 195조원에 이르는 횡재세를 걷겠다며 벼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석유·천연가스 회사를 상대로 초과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계획을 확정했다. 미국도 이윤율이 10%를 초과하는 대형 에너지사를 대상으로 42% 세율(가산세율 21% 추가)을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 의회에서 논의 중이다.

국내도 횡재세를 도입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정유사를 겨냥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정유사와 은행에 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불리려 해선 안된다"고 지적하는 등 횡재세 도입에 대해 야권 뿐만 아니라 여당도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횡재세는 아니라더라도 기금 조성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횡재세는 과세대상, 과세표준, 세율 등 논란의 소지가 있고 국내 실정에도 맞지 않아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기금 출연이나 사회공헌 강화 등으로 사회적 요구가 옮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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