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시장 통제식 물가관리는 이제 그만

이광호 2022. 9. 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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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한풀 꺾일 시기로 지목된 추석 명절 이후에도 식품 가격 인상이 잇따르자 윤석열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서 행하던 '시장 통제식 물가 관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인위적인 가격 통제보다는 감세 등으로 생산자 비용 부담을 줄여, 소비자 가격을 자율적으로 낮추도록 유도하겠다던 '시장 친화적 물가 관리' 원칙을 시장 통제식 물가 관리로 급선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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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후에도 물가사승 계속되자
공정위 등 동원해 기업 압박
섣부른 통제 시장 자율성 저해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물가가 한풀 꺾일 시기로 지목된 추석 명절 이후에도 식품 가격 인상이 잇따르자 윤석열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서 행하던 ‘시장 통제식 물가 관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인위적인 가격 통제보다는 감세 등으로 생산자 비용 부담을 줄여, 소비자 가격을 자율적으로 낮추도록 유도하겠다던 ‘시장 친화적 물가 관리’ 원칙을 시장 통제식 물가 관리로 급선회한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민생물가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식품 기업의 가격 인상을 정조준했다. 추 부총리는 일각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민생 부담을 가중시키고 물가 안정 기조의 안착을 저해할 수 있다며 불공정행위 여부를 소관 부처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합동 점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한기정 공정위원장도 입을 맞춘 듯 물가 상승을 야기하는 독과점 행위와 담합 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압박했다.

정부의 엄포는 이명박 정부 시절 52개 생필품을 집중관리 품목으로 지정한 ‘MB물가지수’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풀무원 식품은 두부, 콩나물 등 10여 개 품목 153개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상을 유보했고, 서울우유와 동원F&B 등은 정부의 물가 단속 눈치를 보다 인상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오비맥주도 카스 등 맥주 출고가를 올리겠다고 밝혔다가 사흘 만에 가격 인상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레쓰비 등 20개 제품의 출고가를 올렸다가 약 한 달 만에 환원했다.

정부는 라면 등을 대상으로 담합 조사도 실시했다. 프리미엄 라면을 표방하며 출시된 ‘신라면 블랙’의 경우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담겼다’는 광고 문구를 문제 삼아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명목은 허위·과장 광고였지만 사실상 타깃은 가격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결국 농심은 출시 5개월 만에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정부가 공정위를 동원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과거 정부의 구태를 반복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개별 기업에 가격 인상을 하지 말라는 것은 월권으로 볼 여지가 많다.

식품 기업들의 최근 가격 인상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가 부담을 견디지 못한 것일 뿐인데, 식품 기업들이 마치 고물가에 편승해 부당이익을 취하는 것처럼 팔 비틀기를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의 정책적 요청을 반복하기보다 올해 상반기 밀가루 인상분 지원 등 가파른 원자재 상승에 대한 본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한 뒤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책이다.

당분간 식품 기업들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제품 가격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언젠가는 더 큰 폭의 판가 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 정부의 섣부른 시장 통제식 물가 관리가 시장의 효율성과 자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광호 유통경제부장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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