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신당역 스토킹 살인, 막을 수 있었다

한승주 2022. 9. 2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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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저녁 서울 지하철역에서
스토킹으로 인한 참극 벌어져
피해자 신변보호 철저히 하고
가해자 처벌 수위 높여야

구속영장 기각한 법원
피해자 보호하지 않은 경찰
안일하게 대처한 교통공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평범한 저녁, 일하던 곳이었다.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야근 중 일터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전주환(31)과는 2018년 서울교통공사에 같이 입사했다. 그의 스토킹은 3년 전 시작됐다. 만남을 거부하자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불안에 떨게 한 연락이 350건을 넘었다. 두 번이나 경찰에 고소했지만,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 처음엔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두 번째는 경찰의 영장 신청조차 없었다. 남자는 버젓이 거리를 활보했다. 직위 해제된 후에는 합의를 해달라며 괴롭혔다. 그에게 내려진 검찰 구형은 9년. 내일은 1심 선고가 있는 날이다. 그런데 그날 밤 그가 내 근무지에 나타났다. 그게 끝이었다. 28년 삶의 마지막을 그렇게 맞고 말았다.

살해범 전주환은 치밀했다. 여자가 합의를 안 해주자 범행을 결심했다. 사건 11일 전인 지난 3일, 지하철 6호선 구산역 역무원 컴퓨터를 이용해 여자의 근무지와 당직 일자 등을 알아냈다. 직위 해제 상태였지만 내부망 접속은 가능했다. 범행 당일, 여자의 옛집이 있던 구산역 일대를 배회했다. 그 여자인 줄 알고 다른 여자의 뒤를 따라가기도 했다. 위치정보시스템 정보를 조작하는 앱을 설치하고, 정신과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경찰 추적에 혼선을 주고, 심신미약을 인정받기 위한 정황으로 보인다. 흉기를 들고 신당역에 저녁 7시50분쯤 도착해 여자화장실 근처에서 기다렸다. 70여분 후 역무원인 여자가 순찰을 돌기 위해 들어가자 바로 뒤따라갔다.

평일 저녁 전주환은 꽤 오랜 시간 흉기를 들고 지하철역 안에서 피해자를 기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이 행복한 서울, 여행(女幸) 화장실’이라 적힌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지나쳤으리라. 서울 지하철 역사 화장실에서, 순찰 중이던 정복을 입은 직원이 살해됐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온 나라가 경악했다. 힘 있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스토킹 처벌법 강화 등을 얘기했다. 사안마다 날을 세우던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냈다. 이런 일을 처음 본 듯 비통해하며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로 불안을 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이 모든 것이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된 패턴이라는 것을. 지난해 3월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 때도 마찬가지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끓었으나 제도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해마다 스토킹 건수는 늘고 있지만 스토커의 96%는 구속을 면하고 있다. 그사이 스토킹이 흉악 범죄로 이어지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됐으나 2021년 9월에야 시행됐다. 무려 22년이 걸렸다. 스토킹을 개인 간의 애정문제 정도로 가볍게 여겨온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겨우 법은 시행됐으나 보완해야 할 게 많다. 현행 법은 피해자가 직접 처벌을 원해야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 때문에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2차 스토킹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법무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가 원치 않아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가해자 처벌보다 더 시급한 게 피해자 신변보호다. 상상해 보자. 누군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고, 쫓아오고, 협박한다면. 당하는 사람은 불안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즉각 피해자를 가해자와 분리하고, 쉼터와 심리 상담을 제공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기간도 한국이 1개월에 불과한 반면, 영국은 최소 2년이다. 스토킹 법의 처벌 수위도 높여야 한다. 현행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는 약하다. 영국은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우리보다 20~30년 전 스토킹 법이 제정됐고 처벌 수위가 높다. 스토킹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도 필요하다.

신당역 살인사건은 국가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처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경찰, 직원 간의 스토킹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서울교통공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신당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막을 수 있었던 죽음’ ‘역무원은 국가가 죽였다’는 글이 공감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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